2017년 월간 글마루에서 연재한 ‘다시 보는 백제사’ 시리즈를 천지일보 온라인을 통해 선보입니다. 우리의 역사를 알고 더욱 깊이 이해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과거 연재시기와 현재 노출되는 기사의 계절, 시간 상 시점이 다소 다른 점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글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사진 글마루
비극의 현장 명복을 비는 가람 용암사
용암사는 옥천읍 삼청리의 장령산 서북쪽 기슭에있다. 신라 진흥왕 13(552)년 천축국에 갔다가 귀국한 의신조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의신조사는 신라의 고승이다. <속리산대법주사 본말사기>에 보면 ‘의신조사가 진흥왕 14(553)년 법주사를 창건할 때 서역에 구법여행을 하고 돌아와 흰 노새에 불경을 싣고 와서 머물렀으므로 법보를 모셨다는 뜻에서 법주사로 부르게 되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 사전으로 본다면 용암사가 법주사보다 1년 먼저 창건된 것이다. 이 시기는 신라와 백제 간 치열한 전쟁이 그칠 새가 없었다. 조사는 수 없이 죽은 전사들의 영혼을 위무하고 싸움 없는 국토를 만들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용암사의 주 예배 대상은 대웅전 뒤편의 신라 마애여래입상이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마의태자가 조성했다고 한다. 양식으로 보아 통일신라 성대 작품으로 추정되며 유려한 조각이 주목된다. 이쯤이면 국가지정 문화유산인데 아직도 충북도유형문화재(17호)로 남아있다.
마애불상은 연꽃대좌 위에 두 발을 벌리고 선 입상으로 높이가 3m나 된다. 머리는 소발이며 육계가 있고 양 귀는 늘어져 어깨에 닿았다. 눈은 가늘고 길게 표현되었고 입은 경직되어 침울한 얼굴이다. 우견편단의 법의는 아래로 내려오면서 U자 모양을 이룬다. 본래 채색을 한 듯 입술과 법의, 연화대좌 등에 붉은색이 남아 있다.
용암사에는 또 쌍탑이 보존되어 있다. 자연석 암반 위에 2층 기단을 쌓고 3층 탑신을 올린 일반형 석탑이며 보물 제1338호로 지정되어 있다. 동쪽에 있는 것이 4.3m, 서쪽에 있는 것이 4.1m로 규모가 비슷하고 형식은 같다.
<향수> 정지용의 시혼 연면한 예술혼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옥천이 낳은 시인 고(故) 정지용의 유명한 시 <향수>의 일부분이다. 그는 한국 현대시의 새로운 시대를 개척한 선구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지용과 같은 시기 활동한 시인 고 김기림은 ‘한국의 현대시가 지용에서 비롯되었다’고 평하기도 했다.
그는 옥천읍 죽향리 하계마을에서 태어났다. 1929년 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한 뒤에는 휘문고보 영어과 교사로 부임하여 해방이 될 때까지 재임하였다. 1930년에는 박용철, 김영랑 등과 함께 동인지 <시문학>을 발간하고, 1933년에는 순수문학을 지향하는 김기림, 이효석, 이종명 등과 함께 9인회를 결성하며 한국 시단을 대표하는 인물로 떠올랐다.
해방 이후에는 이화여자대학교의 교수로 봉직하기도 했다. 또 경향신문의 편집주간으로 활동했다. 1946년 2월에 시집 <지용시선(芝溶詩選)>을 발간했으며 1947년에는 서울대학교에서 시경(詩經)을 강의하기도 했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난 뒤에는 김기림, 박영희 등과 함께 서대문형무소에 수용되었다. 이후 북한군에 의해 납북되었다가 사망하였다.
정지용 생가는 옥천구읍사거리에서 수북 방향으로 청석교 건너에 있다. 생가 앞 청석교 아래는 여전히 그의 시 <향수>에 등장하는 실개천이 흐르고 있다. 향수가 떠오르는 고향의 정경이다.
정지용 생가에는 벽마다 고인의 주옥같은 시를 걸어놓았다.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어 도란도란거리는 곳” 등 <향수>의 시어에 따라 방안에 배치된 소품 질화로와 등잔이 그윽한 한국의 정취를 떠올리게 한다.
한편 정지용의 시혼을 기리는 ‘지용제’는 1988년 시인의 작품이 해금(解禁)되자 그의 시를 아끼고 사랑하는 문인들과 제자들이 지용회(芝溶會)를 결성한 뒤 그해 5월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처음 막을 올렸다. 지용제는 1989년부터 옥천으로 옮겨 와 시인의 생일인 5월 15일을 전후해 해마다 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