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성폭력 피해자들이 여전히 침묵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전쟁 성폭력 피해자들이 여전히 침묵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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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임혜지 기자] 이숙진 이화여자대학교 교수가 24일 오후 서울 명동 향린교회에서 열린 평화와 신학 창립 포럼에서 발제하고 있다. 이날 포럼은 ‘한국전쟁과 트라우마’란 주제로 진행됐다. ⓒ천지일보 2019.6.24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이숙진 이화여자대학교 교수가 24일 오후 서울 명동 향린교회에서 열린 평화와 신학 창립 포럼에서 발제하고 있다. 이날 포럼은 ‘한국전쟁과 트라우마’란 주제로 진행됐다. ⓒ천지일보 2019.6.24

24일 ‘평화와신학’ 창립 포럼

“침묵하는 사회적 분위기 견고”

“교회, 기억공동체로 거듭나야”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침묵의 카르텔’. 특정 집단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문제에 대해 약속한 듯 입을 닫는 현상을 말한다. 수많은 전시 여성 피해자가 피해 증언을 하지 않는 원인은 ‘침묵의 카르텔’이며 아직도 많은 이들이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연구공동체 ‘평화와신학’은 24일 오후 서울 명동 향린교회에서 한국전쟁과 트라우마를 주제로 창립 포럼을 개최했다.

포럼에는 이숙진 이화여대 교수, 한백교회 이상철 목사, 배근주 데니슨대학교 교수, 새길교회 정경일 목사가 각각 ▲말하는 주체와 기억 공동체: 48년 체제와 여성 ▲48년 체제와 한국전쟁, 그날 이후 살아남은 ‘빗금 그어진 주체($)’들을 향한 레퀴엠 ▲미국의 잊어버린 전쟁에 대한 기억: 한국전쟁과 트랜스내셔널 트라우마 ▲역사적 트라우마와 모든 죽은 이를 위한 애도를 주제로 발제했다.

이 자리에서 이숙진 이화여대 교수는 한국 근현대사 속 제주4.3부터 한국전쟁, 민간인학살, 보도연맹학살, 군의문사, 광주5.18 등과 같은 비극적인 사건 뒤에 수많은 여성 피해자가 있었지만 이들이 침묵하는 점에 대해 주목했다.

이 교수는 “제주 출신 작가 한림화는 10여년에 걸쳐 제주 4.3 경험자들을 인터뷰하고 방대한 자료를 모았지만, 피해 여성 당사자는 물론이고 현장을 목격한 여성들은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고 한다”며 “이뿐 아니라 한국전쟁 중 미군과 한국 남성들에 의해 자행된 전시 강간이나 베트남전쟁 때 한국군에 의한 집단 성폭력 사건 피해자들도 지금까지 침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여성들은 왜 피해에 대해 침묵할까? 이 교수는 침묵을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견고한 카르텔을 형성했고 여성들의 증언을 막고 있다고 분석했다.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평화와 신학이 24일 오후 서울 명동 향린교회에서 ‘한국전쟁과 트라우마’란 주제로 창립 포럼을 열고 있다. ⓒ천지일보 2019.6.24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평화와 신학이 24일 오후 서울 명동 향린교회에서 ‘한국전쟁과 트라우마’란 주제로 창립 포럼을 열고 있다. ⓒ천지일보 2019.6.24

그는 일례로 보스니아 공화국 내전 상황을 설명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당시 기독교계 세르비아 민병대는 ‘이슬람의 씨를 말려라’라는 모토아래 인종말살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보스니아 전역에서 계획적으로 부녀자를 성폭행하고 낙태 불가능 시점까지 군 수용소에 감금했다. 2만여명의 피해여성은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으며 전쟁 종결 후에도 전쟁 피해자로 공식 인정을 받지 못했다. 수백 명에 달하는 성폭행범들은 지금도 세르비아와 보스니아에서 선량한 시민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살아남은 피해 여성들은 성폭력의 ‘트라우마’로 일상이 전장이 됐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또 이 교수는 5.18 당시 성폭력 피해를 지난해 처음으로 고백한 한 여성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왜 그동안 여성들의 피해를 말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우리가 지금껏 말을 안 했겠냐. 전체 투쟁이 중요하다고 하니까 우리 얘기를 내세우지 못 한 거지”라고 답변한 것과 관련해 “왜 성폭력 피해자 여성들이 ‘말하는 주체’가 되지 못했는지 가늠할 수 있는 답변”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계엄군에게 성범죄를 당한 여성을 수치로 여겨 침묵을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부터 같은 민족끼리 그럴 리가 없다며 피해자의 말을 믿지 않는 사회 관계자들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의 증언을 막고 있는 침묵의 카르텔은 단단하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견고한 침묵의 카르텔을 깨기 위해선 증언자의 증언을 경청할 ‘듣는 공동체’가 필요하다”면서 “실제 영화 ‘아이캔스피크’의 실제 모델이 된 김복동 할머니가 유엔에서 전 세계 사람들에게 당당한 주체로 서서 피해를 증언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를 지지하고 위로했던 듣는 공동체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교회를 향해 “한국교회가 평화를 꿈꾼다면 고통스럽지만 한국개신교가 가담했던 폭력의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며 “한국교회는 피해와 고통을 증언하는 말하는 주체를 세우고 ‘기억공동체’로 거듭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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