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천지일보 2019.6.24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천지일보 2019.6.24

동성애자들 중에서는 동성애를 벗어나고자 노력하는 이들이 있지만, 어려움이 많다. 일반인들은 그 상황을 잘 알지 못해 선뜻 공감하지 못하기도 한다. 이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가 담긴 생생한 수기를 연재하고자 한다.

제 인생에는 조금 특별한 사연이 있습니다. 저는 어렸을 적부터 여자보다는 남자라는 존재에 대해 애정과 설레임을 느꼈습니다. 호기심이었을 수도 있고,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는, 조금 위험한 모험이라고 생각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린 시절, 저는 그것이 제게 타고난 것이며, 나중에 남들과 다른 멋진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도 가지며 살았습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교회에 다니던 저는, 육체와 정신이 성장함과 동시에 여러 사람들을 통해 예수님의 참사랑을 알아가게 됐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남몰래 누리는 음행과 쾌락에 눈이 먼 자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는 동성애와 욕정이 예수님을 기쁘게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고는 있었지만, 중독 같이 헤어나오지 못하는 쾌락의 이중생활과 함께 점점 고뇌에 빠져들게 됐습니다.

저는 20대부터 교회에서 청년부 활동을 해왔습니다. 찬양이 좋았고, 목청껏 기도하는 청년부 선배들을 보며, 저도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를 드렀습니다. 한 철야 금요예배 때 저는 고요하고 비밀스러운 마음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짧은 찰나에 제가 계속 갈구하던 동성에가 ‘죄’라는 명확한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가복음 4장의 ‘씨 뿌리는 비유’의 이야기에 나오는 바 같이 돌밭 같은 제 마음에 말씀과 기도 생활이 뿌리 내리지 못한 채, 저는 이전보다 더 깊이 죄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여전히 찬양의 멜로디에 감동되어 눈물을 흘리고, 간간이 진정으로 예배를 드렸지만 저의 이중생활은 계속 됐습니다. 그리고 불과 수년 전 까지 저는 크리스천이면서, 직장인이었고, 동성애자였습니다. 누구도 제게 동성애자라는 굴레를 씌운 적이 없고, 수군댄 적도 없지만, 그것은 스스로 규정한 제 모습이었습니다.

업무에서 받는 스트레스나 외로움을 육체의 욕정으로 해소하고, 낯선 만남을 갈구하고, 채워지지 않는 허무한 행위들에 사로잡혀 살던 저는 그 시절의 삼정을 뼛속 깊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쉽게 이해 할 수 없는 살을 에는 듯한 허망한 고통이었습니다. (다음호에 이어서) (제공: 홀리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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