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28일 새벽 화재가 발생해 54가구 중 21가구가 불에 타 잿더미가 된 서울 서초구 비닐하우스촌 산청마을 주민은 당장 갈 곳이 없게 됐다. ⓒ천지일보(뉴스천지)

화재로 보금자리 잃은 서초 비닐하우스촌 산청마을 주민

[천지일보=장요한 기자] “건질 게 아무것도 없네… 아무것도 없어.”

지난달 28일 새벽 2시 40분경 방화 때문에 화재가 발생한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산160번지. 검게 그을린 부엌도구들과 옷가지 그리고 추운 겨울을 보내려고 쌓아둔 연탄은 이제 쓸 수 없게 됐다.

53가구 120여 명이 사는 이곳은 서리풀공원 언덕에 있는 무허가 비닐하우스촌인 산청마을이다. 비닐과 합판 등으로 지은 집은 화재 위험성에 노출돼 있었던 터라 순식간에 불이 번져 잿더미가 됐다.

몸만 간신히 빠져나온 주민은 자신들의 짐을 챙기기에 앞서 이웃을 흔들어 깨워 불구덩이에서 함께 나왔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21가구가 전소해 당장 50여 명은 갈 곳이 없는 처지다.

지난 3일 이모(48) 씨는 그릇 하나라도 쓸 수 있을까 싶어 불에 탄 잿더미 속을 살펴봤지만 가슴을 쓸어내려야만 했다. 쓸 만한 게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 씨는 고등학교 3학년에 올라가는 아들이 제일 걱정이다. 틈만 나면 서점을 들를 정도로 책을 좋아하던 아들이 아끼는 책과 교과서, 그동안 받은 상장이 모두 타버렸기 때문이다. 빈 가방을 멘 채 등교해야 하는 아들을 보내는 부모의 마음은 답답하기만 하다.

IMF 당시 남편 사업이 망해 빚더미에 앉자 그때부터 일을 시작했다는 이 씨는 “그때보다 지금이 더 하다”라며 “아무것도 없다. 기가 막히고 속이 상한다”고 울음을 삼켰다.

소중한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은 동네 주민의 비좁은 방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다. 같은 처지에 있는 다른 구의 비닐하우스촌 주민과 몇몇 시민단체의 도움으로 그나마 끼니를 거르지 않고 있다. 

식사하러 마을 경로당을 찾은 한무선(72) 할아버지는 화재 당시 급한 마음에 틀니를 놓고 나와 건더기를 건져낸 국에 밥을 말아 허기만 달랬다. 이곳에 23년째 거주한 손영배(61) 씨는 “추운 겨울은 다가오고 당장 갈 곳도 없어 답답하기만 한데 집도 짓지 말라고 하면 어떻게 하라는 말이냐”고 탄식했다.

이들은 ‘산청마을 화재피해 복구 대책위원회(대책위)’를 구성해 담당 서초구청에 대책 마련을 요청했지만, 서초구청은 아무런 대답이 없다. 대책위 김재필 씨는 “잔해 처리는 고사하고 일체의 건물 복구를 위한 자재 반입을 못 하게 하고 있다”라며 “구청에 계속 대책 마련을 촉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초구청은 현재 이곳이 공원지역인데다 개인 소유지이고 무허가 건축물이어서 새로 건물을 지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후원 문의) 02-525-6889, 후원계좌 국민은행 086602-04-110204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