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강은영 기자]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정의기억연대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고(故) 김복동 할머니의 영결식을 열고 있다. 영결식에 참석한 시민들이 헌화를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2.1
[천지일보=강은영 기자]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정의기억연대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고(故) 김복동 할머니의 영결식을 열고 있다. 영결식에 참석한 시민들이 헌화를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2.1

 

일본 대사관서 영결식 엄수

추운 날씨에도 1000명 참석

운구차, 장지 망향의 동산으로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나비 되어 평화로운 세상에서 훨훨 날으소서.’

세계를 누비며 일본군 ‘위안부’ 성노예 피해를 증언하고, 일본 정부에 사과를 요구한 여성인권운동가였던 고(故) 김복동 할머니의 마지막 가는 길은 외롭지 않았다. 김복동 할머니의 발인식이 엄수된 1일 오전 두 팔을 높게 들고 나비들과 함께 활짝 웃고 있는 고인의 그림을 필두로 추모객들이 서울 종로구의 구(舊) 일본대사관 앞에 도착했다.

27년째 일본군 성노예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수요집회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던 김 할머니가 이번엔 운구차를 타고 자신의 영결식에 참석했다.

[천지일보=강은영 기자] 1일 오전 8시30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고(故) 김복동 할머니의 노제가 시작됐다. 김 할머니의 영정이 앞서고 운구차와 시민들이 뒤를 따르고 있다. 서울광장 노제는 서울 시청광장을 시작으로 광화문, 안국역을 지나 일본대사관까지 행진을 이어간다. 
[천지일보=강은영 기자] 1일 오전 8시30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고(故) 김복동 할머니의 노제가 시작됐다. 김 할머니의 영정이 앞서고 운구차와 시민들이 뒤를 따르고 있다. 서울광장 노제는 서울 시청광장을 시작으로 광화문, 안국역을 지나 일본대사관까지 행진을 이어간다. 

 

앞서 오전 6시 30분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진행된 발인 후 오전 8시 30분 서울광장을 출발한 추모 행렬이 이곳에서 김 할머니와 만났다. ‘김복동님의 뜻을 새겨 여성폭력 근절을 위해 열심히 싸워가겠습니다’ ‘일본군 성노예 사료화 건립’ ‘일본군 성노예 진상규명’ 등이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든 청소년, 대학생, 여성단체 등 추모객들은 검은색 옷을 입고, 눈물이 그렁그렁 한 모습이었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살을 에는 영하 7도의 추위도 이들의 슬픔을 이기진 못했다. 추모객들은 노란 나비를 든 손이 빨개지고 발을 동동 구를지언정 숙연한 모습으로 영결식에 임했다. 추위에 코가 빨개진 외국인도 노란나비와 할머니의 생전 메시지가 적힌 엽서 들고 고인을 추모했다.

‘여성인권운동가 김복동 시민장 장례위원회’ 주관으로 거행된 영결식에는 1000여명이 추모객이 참석했다. 이 자리엔 다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와 진선미 여성부 장관 등도 참석해 고인이 가는 길을 배웅했다.

김복동 할머니의 삶을 그린 듯한 판소리 공연팀 바닥소리의 ‘상여소리’ 공연이 시작되자 추모객들의 훌쩍이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이어 묵념, 할머니의 추모 영상 상영, 할머니 소개와 추모사가 이어졌다.

[천지일보=강은영 기자] 1일 오전 10시30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정의기억연대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고(故) 김복동 할머니의 영결식을 열고 있다. ⓒ천지일보 2019.2.1
[천지일보=강은영 기자] 1일 오전 10시30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정의기억연대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고(故) 김복동 할머니의 영결식을 열고 있다. ⓒ천지일보 2019.2.1

“순덕이, 저승 가면 아픈 줄 모르겠다. 그자. 열심히 살았어. 나도 곧 따라갈 테니 우짜든지 가서 잘 살길 바라네. 잘 가요.”

김복동 할머니가 생전에 고(故) 이순덕 할머니의 영정 사진을 보고 눈물을 훔치던 장면이 추모 영상에 상영되자 추모객들의 눈물을 훔치던 손길이 더욱 바빠졌다.

이후 권미경 연세대학교의료원노동조합 위원장은 추모사에서 “할머니가 예뻐하시던 제 딸이 올해 14살이 됐다. 교복을 입은 뒷모습을 보니 할머니가 일본군에 끌려갔던 나이가 14살이라는 게 떠올라 가슴이 아팠다”며 “진통제도 듣지 않는 고통에 힘들어하던 할머니가 ‘엄마, 엄마, 너무 아파’라고 울부짖을 때 손을 잡아드리는 것밖에 할 수 없어 답답했다”고 말하며 눈물을 닦았다. 이어 “오랜 세월 동안 모진 상처 잘 견디고 싸웠다. 할머니가 늘 원하신 것처럼 어머니가 꼭 안고 머리 쓰다듬어주는 그곳으로 가시길 바란다”며 오열했다.

[천지일보=강은영 기자]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정의기억연대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고(故) 김복동 할머니의 영결식을 열고 있다.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대표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2.1
[천지일보=강은영 기자]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정의기억연대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고(故) 김복동 할머니의 영결식을 열고 있다.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대표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2.1

상주를 맡은 윤미향 정의기억연대(정의연) 대표는 “지난 오일장 내내 김복동 할머니가 걸어온 길을 뒤따르고자 열심히 날갯짓하는 수많은 나비를 볼 수 있었다. 추모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김 할머니가 전쟁과 한국사회의 가부장적인 선입견을 모두 이겨내고 마침내 죽음도 딛고 일어서서 전국 곳곳에서 희망의 나비로 살아나셨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윤 대표는 “다음 주 수요일 김복동 할머니는 이곳(수요시위 장소)에 앉아서 평화와 인권이 필요한 곳에 준엄한 목소리로, 격려의 목소리로 우리와 함께할 것”이라며 “일본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생존자 수가 0이 돼서 안심할 때 수백, 수천, 수십만의 나비들이 한목소리로 ‘범죄를 저지른 자를 처벌하고 피해자 인권을 회복시키라’고 외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수요집회에 시간 날 때마다 참석해왔다는 김민지(18, 경기도 광주시 장지동)양은 “할머니가 너무 힘드셨으니까 다 잊고 행복하게 편히 가셨으면 좋겠다”며 “현재 23명의 할머니만 생존해 계시다. 우리 세대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끝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도 함께 할머니의 뜻을 따라 일본 정부의 공식적 사과와 배상을 받아낼 때까지 함께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족과 함께 영결식에 온 가이선(13, 경기도 양평군)군은 “김복동 할머니가 죽기 전까지 일본 정부에게 반드시 사과를 받아내겠다고 말씀하시고 돌아가셨다”며 “일본 정부에게 공식 사과를 받기 위해 우리가 노력할 테니 하늘에서 행복하셨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할머니 사랑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헌화를 마지막으로 11시 30분께 영결식은 마무리됐다. 김 할머니의 관을 실은 운구차는 장지인 충남 천안 국립 망향의 동산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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