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고종 승하 100주년, 왜곡된 평가 바로잡아야
[사설] 고종 승하 100주년, 왜곡된 평가 바로잡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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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100주년인 올해는 고종 승하 100주년이기도 하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는 21일 사적 제207호 남양주 홍릉(洪陵)에서 대한제국 고종황제 100주기 제향을 봉행한다. 조선왕릉 제향은 역대 왕과 왕비의 돌아가신 날에 지내는 제사(기신제)로, 지금까지 600여년을 이어온 왕실 제례 문화다. 홍릉은 고종과 명성황후를 합장한 무덤이다. 

1919년 1월 21일 고종이 덕수궁 함녕전(咸寧殿)에서 세상을 떠났다. 고종 건강에 특별한 이상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던 까닭에 장안에서는 곧 독살설이 돌았다. 고종 붕어 소식을 듣고 상경한 영남 유림 김황이 쓴 ‘기미일기’에도 민씨 척족으로부터 직접 들은 독살설이 기록돼 있다. 내용인즉 이완용 등이 내시 2명에게 식혜를 올리게 했고 이후 아홉 구멍에서 피가 나오고 새벽에 갑자기 붕어했다는 것이다. 

고종 독살설은 전국으로 퍼져 나가 3.1운동의 기폭제가 됐다. 나라를 잃고 어버이 같은 군주마저 잃은 국민의 한이 3.1 독립만세 운동을 계기로 터져 나온 것이었다. 고종 사후 고종에 대한 평가는 대체적으로 박하다. 힘없는 나라의 무능한 군주 정도로 평가된다. 그러나 고종이 국권이 흔들리는 나라의 자주 독립을 위해 애쓰고 애민정신을 실천한 흔적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황실 내탕금으로 국내 자본 활성화를 위해 은행을 만들고, 선교사들이 외국 자본으로 여학교를 만들자 황실자본을 들여 고등여학교를 만드는 등 민족정기를 고취시키고 자주 국가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 애썼다. 또 외세가 대한제국의 자주성을 훼손하려 들자 헤이그 밀사를 파견하는 등 자주 독립을 위해 피눈물 나는 노력을 기울였다. 

패망한 나라의 힘없고 무능한 군주로만 알려진 고종에 대한 평가는 2000년 이후 급반전됐다. 연구가들은 그간의 상식을 뒤집고 그가 현명하고 의지가 굳은 개혁군주였다고 발표했지만 이 같은 연구결과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망국의 치욕을 군주 한 사람의 탓으로 돌리는 것도 옳지 않고, 군주에게 책임이 없다 할 수도 없다. 그러나 3.1운동이 고종 승하와 직접 관련이 있는 만큼 3.1운동 100주년인 올해엔 고종에 대한 왜곡된 평가를 바로잡는 노력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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