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 2018.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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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은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교단연합기구로 활동해왔던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가 창립 30주년을 맞는다. 한기총이 걸어온 길은 한국교회 주류 교단들의 발자취와 맥을 함께한다. 보수진영이 주를 이룬 한국교회에서 한기총이 남긴 역사적인 족적을 살펴보며, 무소불위 권력집단에서 몰락을 앞둔 현재까지 원인과 실태를 진단한다.

유력 목회자들로 설립된 한기총

창립 당시 교세로 韓교회 대표

 

역대 정권과 유착 관계 속 발전

잦은 내분… 대외 이미지 추락

정관계 인사 방문 명분도 상실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올해도 정관계 인사들은 한기총을 향해 ‘관례적으로’ 발걸음을 했다.

지난달 14일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당대표가 한기총을 내방했다. 이 자리에는 더불어민주당 송기헌‧박찬대‧김성환 의원들이 동석했다. 앞서 1일에는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가 한기총을 찾았다. 바른미래당 이준석 최고위원도 발걸음을 함께했다.

그런가 하면 미국 측 인사도 한기총을 찾았다. 지난 8월 21일에는 해리 해리스 미국 대사가 한기총을 내방했다. 민갑룡 경찰청장도 그달 10일 한기총을 방문해 엄기호 대표회장과 환담을 가졌다. 지난 7월에는 청와대 이용선 시민사회수석이 한기총을 내방해 엄기호 대표회장을 만났다. 4월에는 바른미래당 박주선·유승민 공동대표와 당시 자유한국당 김문수·안철수 서울시장 예비 후보가 각각 나란히 한기총을 내방했다. 3월에는 행정안전부 김부겸 장관과 민주평화당 조배숙 대표가 한기총을 방문했다.

해마다 이어지는 정관계 인사들의 발걸음이지만 올해는 유난히도 그 발걸음의 무게가 가벼웠을 것으로 예상된다. 점점 대표성을 잃어가고 있는 한기총의 대외 이미지 때문이다.

정관계 인사들은 왜 한기총을 방문하고 있는 것일까. 사실 올해 햇수로 30년을 맞은 한기총은 그간 한국교회의 대표성을 띤 교단연합단체로 이름을 날렸다. 창립 때부터 교세로 한국교회를 좌지우지했던 장로교가 주축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한기총은 정권과 친밀도가 높았다.

◆5공화국 종교대책반의 걸작?

한기총은 탄생 때부터 이미 정치적 목적과 뗄래야 뗄 수 없었다. 1980년대 후반 정부는 반군부 성향을 띤 진보 개신교 교단 협의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를 견제하기 위한 세력이 필요했고, 한기총은 5공화국 종교대책반이 만들어낸 최대 작품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한국교회 보수세력이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건 지난 1988년 2월 NCCK의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선언’ 발표 이후다. 반공 이데올로기에 대한 반성을 고백한 이 선언을 한국교회 교세로 양대 산맥을 이루는 예장통합 총회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교계 내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한경직 목사는 이듬해 1월 남한산성에 한국교회 원로들을 불러 모았고 “NCCK가 한국교회를 대표할 수 있는 기관이 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대부분 월남 목회자들이었다. 강인철 한신대 교수는 그의 논문에서 “당시 남한산성 모임에 참여한 10명 중 9명이 북한 출신”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후 준비를 거쳐 창립된 단체가 한기총이다. ‘동아일보’ 역시 1989년 1월 7일자 기사에서 한기총의 출범배경에 대해 ‘NCCK 내의 보혁갈등’이라고 지적했다.

한기총 홈페이지의 설립 취지문(정관 전문)을 보면, ‘범 교단의 교회 지도자들이 한국교회의 모든 교단을 하나로 묶어 정부나 사회에 대해 한목소리를 내자는 데 합의했다. 1989년 4월 28일 한경직 목사 외 300여명이 서울 영락교회 선교관에서 창립 준비위원회 총회를 가졌다’고 명시했다. 정관에서는 한국교회를 하나로 묶기 위해 출범했다고 하지만 실상은 오히려 NCCK와의 분열을 초래했다는 지적이다.

또 ‘예수 그리스도께서 한국교회에 주신 사명에 충실하기 위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지지 않으면서 연합과 일치를 이루어 교회 본연의 사명을 다하는 데 일체가 될 것을 다짐했다’고 밝혔지만 이들의 논리는 보수진영의 입장만을 대변했다.

◆ 군부 정권 지원 받아 탄생해

당시 제5공화국 정부는 한기총 창설을 지원했다는 주장도 있다. 국정원과거사진실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오충일 목사는 지난 2005년 4월 인터넷언론인 포럼에서 안기부 종교담당 요원이 한기총 창립에 구체적으로 개입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가 주최한 제140차 월례포럼에서 남오성 목사(당시 교회개혁실천연대 사무국장)는 “당시 전두환 정권 초기부터 5공화국 세력이 진보적 종교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종교대책반을 운영하고 보수세력의 조직화를 지원했다”며 한기총 탄생 배경에 정치공작이 개입돼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기총은 한국교회 구성원으로부터 위임받지 않은 대표성을 무단 발휘해 왔다. 복음단체를 가장한 정치단체”라고 단체 성격을 정의하기도 했다.

한기총 탄생 당시 참여한 교단은 총 36개, 단체는 6개다. 이 중 대표 121명이 참석해 한기총을 탄생시켰다.

한기총 창립위원장을 맡았던 한경직 목사는 수많은 봉사활동 등으로 추앙받고 있지만 시대마다 권력에 굴복한 인물이라는 평가도 따르는 인물이다. 그는 일제강점기 말기에 일제 천황신에게 경배하는 신사참배를 했고, 1980년 전두환 국보상임위원장을 위한 조찬기도회에 참석해 전 위원장에 대한 칭송에 앞장서는 등 새로운 권력 앞에는 늘 고개 숙였다.

한기총을 설립한 인사들은 전두환 군부세력을 찬양하는 데 앞장섰다. 지난 1980년 8월 6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전두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상임위원장을 위한 조찬기도회’가 대표적인 예다. 당시 성결교 증경총회장 정진경 목사(신촌성결교회)는 전두환 상임위원장을 위한 기도에서 “이 어려운 시기에 막중한 직책을 맡아서 사회 구석구석에 존재하는 악을 제거하고 정화할 수 있게 해준 데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면서 “온 국민이 바라는 남북통일과 국가의 번영 그리고 민주화실현에 크게 공헌해서 다음 세대에 물려줄 수 있게 해달라”고 말했다. 이후 당시 조찬기도회에 참석했던 인사들은 대부분 한기총 설립을 견인했다. 한경직 목사가 한기총 최초 대표회장을 맡았고 정진경·조향록 목사 등이 준비위원으로 참여했다. 정 목사는 한기총 2대 대표회장을 역임했다.

◆역대 정권과 발맞추기

한기총의 이런 태생적 배경은 역대 정권의 주요현안과 발맞추기를 하는 모습으로 이어졌다.

박근혜 전(前) 대통령 탄핵 전까지는 추진했던 역사교과서 국정화, 사드 배치 등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하며 박근혜 정권을 옹호해왔다. 2016년 초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 활성화 입법의 조속한 처리를 촉구하는 서명에 동참한 지 하루 만에 한기총은 1000만인 서명운동을 적극 지지하며 동참에 나섰다. 또한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안들인 테러방지법, 국정교과서, 국가보안법 등에 대해 줄곧 보수정권의 입장을 대변하는 목소리를 냈다. 명분은 구국 기도회였지만 그 성격이 친미, 반공을 지지하는 성향을 띠는 집회도 수차례 열었다.

그러다가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지면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유력 대선주자로 지목되자 한기총 이영훈 회장 등 일부 인사들은 친 더불어민주당 행보를 보여, 권력 따라 움직이는 한기총의 모습을 또 한 번 확인시킨 바 있다.

역대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우군’을 자처하는 철새의 모습이었다. 한기총의 이런 구애에 화답이라도 하듯, 정치인이 교회 지도자를 예방하는 모습도 그리 낯설지 않게 됐다. 여야 대표와 정부 부처 수장 등이 개신교 한기총을 예방하는 것은 하나의 관례로 굳어졌다.

하지만 이같은 관례를 놓고 비판적인 시각을 가는 기독교 언론은 드물다. 거듭되는 소송으로 인한 내부 파열, 갈등, 줄어가는 교세 등 한기총이 더 이상 한국교회에 대한 대표성을 갖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정관계 인사들의 발걸음을 묵인하며 명맥 유지를 돕는 형편이다.

하지만 이대로 한기총이 한국교회에 대한 대표성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정관계 인사들의 방문 명분도 없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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