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개장한 서울 용산구 용산공원 갤러리에서 방문객들이 전시회를 관람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8.12.1
새로 개장한 서울 용산구 용산공원 갤러리에서 방문객들이 전시회를 관람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8.12.1

용산공원 갤러리 60점 전시

“역사의 흔적 기억할 매개체”

일제 땐 창고… 이후엔 USO

“기억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

[천지일보=홍수영 기자] “매개체가 없으면 역사는 그냥 사라져 버린다고 생각합니다. 시대와 시대를 연결해주는 무언가가 없으면 역사는 그만큼 공허해집니다. 이 장소가 현 세대뿐 아니라 미래 주역들에게도 가치 있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지난달 30일 용산 미군기지 내 건물을 활용한 갤러리가 개관식을 갖고 문을 열었다. ‘캠프킴’ 부지 내 옛 USO건물(616㎡ 규모)인 주한미군 미국위문협회(USO)에 ‘용산공원 갤러리’가 생긴 것이다. 114년 간 국민들에게 금단의 땅이었던 용산 기지 건물을 개방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캠프킴 부지 내 옛 USO건물은 근현대 역사와 함께해 온 건물로 건축적·역사적 가치가 매우 크다. 약 110년 전인 1908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일제강점기엔 일본군 창고 사무소로 쓰였다. 한국전쟁 이후부터 2018년 8월까진 USO로 운영됐다.

갤러리 방문한 시민들 “역사를 기억할 소중한 공간”

갤러리를 찾아온 정윤진(가명, 61, 남, 서울 양천구)씨는 근처를 지나다가 옛 USO 건물인 이곳을 지나다 40년 전 친구가 USO에 근무하던 일이 떠올라 들어오게 됐다고 소개했다.

정씨는 “아이러니하게도 일본군 미군이 계속 주둔해 난개발 되지 않고 이렇게 서울 한복판에 우리가 꾸밀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 보존됐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며 “이런 천혜의 공간의 미래를 경제 논리만 쫓아 섣불리 결정해선 안 될 것 같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역사적 공간인 만큼 상처마저도 보존해야 한다. 매개체가 있어야 기억이 보존된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새로 개장한 서울 용산구 용산공원 갤러리에서 방문객들이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천지일보 2018.12.1
새로 개장한 서울 용산구 용산공원 갤러리에서 방문객들이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천지일보 2018.12.1

이곳을 방문한 대다수는 나이가 많은 편이었지만, 간혹 젊은 시민도 찾아와 정씨의 말대로 미처 몰랐던 이 땅의 흔적들을 되짚어 봤다. 동국대 북한학과 석사과정을 밟는 중인 한 시민도 사진을 매개체 삼아 역사를 두 눈에 담았다.

장창봉(57, 남, 서울 성동구)씨도 정씨와 비슷한 생각이었다. 그는 “용산 미군기지가 없어지는 게 아쉬워 사진을 찍으러 나왔다. 담장 너머 건물들과 오래된 나무들 말이다”라며 “사진을 통해 변천과정을 볼 수 있으니 좋다. 이렇게 처음부터 역사가 쭉 정리돼 있으니 옛 기억이 떠오른다”며 1984년도쯤 미군과 함께 훈련했던 추억을 회상하기도 했다.

갤러리 근처의 남영동에 살고 있는 최아자(80, 여)씨는 갤러리 한편에 걸려 있던 한강 다리가 폭파된 사진을 보며 68년 전 그때로 되돌아갔다. 최씨는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한 직후엔 서울에 있었지만, 이듬해 1.4후퇴 때 더는 버티지 못하고 부산으로 피난을 떠났다.

그는 “2차 세계대전 때부터 6.25전쟁까지, 그 혼란한 시간을 다 겪어온 우리 세대가 참 고생 많이 했다”며 “둘러보며 추억해보니 이만큼 살 수 있는 게 감개무량하다”고 밝혔다.

한국 현대사 관통한 용산 기지… “시간 두고 역사 정리할 필요”

서울 용산구 옛 USO건물에 새로 꾸며 개관한 용산공원 갤러리 입구의 모습. ⓒ천지일보 2018.12.1
서울 용산구 옛 USO건물에 새로 꾸며 개관한 용산공원 갤러리 입구의 모습. ⓒ천지일보 2018.12.1

캠프킴 기지 내에 있던 USO 건물은 올해 8월 평택으로 이전했고, 해당 건물은 비어있었다. 서울시는 이 건물을 활용해 지난 8월 주한미군 측에 공동전시를 제안했고, 9월부터 주한미군 측과의 원만한 협의를 통해 30일부터 ‘용산공원 갤러리’ 개관식을 갖고 ‘서울시-주한미군 공동전시(Joint exhibition of SEOUL-USFK)’를 개최할 수 있었다.

갤러리 내 전시는 서울시와 주한미군이 공동으로 주관한다. 서울역사박물관, 국가기록원, 용산문화원, 개인 등이 소장하고 있는 사진, 지도, 영상 등 총 60여점이 전시된다. 73년간 한·미 동맹의 상징이었던 용산기지의 역할, 한국전쟁 후 지난 65년간 서울의 발전과 함께한 주한미군과의 관계와 공생 발전 과정을 담았다.

현재 용산 기지는 40%정도만 반환된 상태고, 완전 반환까진 2~3년이 걸릴 전망이다. 전시를 담당한 김홍렬 서울시 주무관은 이 틈을 활용해 해당 부지에 대한 역사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섣불리 건물을 헐고 개발 계획을 세우는 대신, 시민들에게 빈 공간을 활용할 시간을 주고, 무엇을 기억할 지 선택을 하자는 입장이다.

김 주무관은 “이곳은 한미연합사령부, 주한미군사령부, 미8군사령부 등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중요한 사령부가 다 있었다”며 “이뿐만 아니라 미군에서 일한 수많은 한국 노동자들의 기억도 함께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14년 미군 하야리아부대 터에 개장한 부산시민공원(52만㎡)엔 아무런 메시지가 없다고 주장한 그는 “이 공간이 우리의 생각을 모으고 집대성하는 역할을 했으면 한다”며 “사람마다 지문이 다 다르듯이 각 땅의 문양도 다르다고 생각한다. 용산 미군기지는 용산 기지대로 기억해야할 것들이 어마어마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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