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산율이 낮아지고 있는 가운데 예비 부부의 희망 자녀수도 감소하고 있다.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로 예비 부부들은 과도한 양육 비용을 꼽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육아 부담’ 해소 위한 실효성 있는 출산 정책 마련해야

[천지일보=백하나 기자] 10월 10일은 임산부의 날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1월 국회 본회의를 거쳐 모자보건법 개정안에 따라 임신 기간을 의미하는 숫자 ‘10’이 중복되는 매년 10월 10일을 기념하고 있다.

정부가 이처럼 ‘임산부의 날’까지 제정한 것은 저출산 문제에 높은 관심을 두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보건복지부는 제1회 행사에서 임산부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배려를 높여 저출산 문제를 극복하려는 취지로 기념일을 제정했다고 밝혔다.

법 제정 이전까지 포함해 임산부의 날은 올해로 4번째. 그러나 예비 임산부와 임산부, 아이 엄마들은 국가가 기념일까지 제정하며 출산을 장려하고는 있지만 그에 대한 정부 대책은 말뿐이라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 ‘슈퍼맘’ 요구하는 한국 사회
5살배기 아이의 엄마 정욱경(35, 대구시 북구 구암동) 씨는 둘째를 낳고 싶지만 첫째 양육에 홍역을 치르고 있는 터라 아이를 더 낳아 키울 엄두를 못 내고 있다. 남편이 취업 준비로 공부를 하는 상황이어서 벌이와 양육, 가사를 도맡아야 하기 때문이다.

정 씨는 얼마 전 다니던 정규직도 그만두고 자유 계약직인 미술치료사로 일터를 바꿨다고 전했다. 그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오후 1시나 3시가 돼서야 출근에 나선다며 눈치가 보여도 벌이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어머니께 아이를 맡기고 오후 8시에 퇴근한다고 설명했다. 정 씨는 “아이를 키울 때 믿고 맡길 수 있는 곳이라도 있으면 좋겠다”며 “이제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텐데 언제까지 부모님께 양육을 맡길 수 없어 사교육 기관에 맡겨야 하는 건지 걱정이 태산”이라고 말했다.

윤혜성(36, 충남 아산시 인주면) 씨는 초등학교 1·2학년, 6살 세 아이를 둔 다자녀 가정의 주부다. 하지만 그가 정부로부터 받는 지원 금액은 0원. 윤 씨는 “1년 전 인천에 살 때까지만 해도 출산 지원금을 받았는데 농어촌 지역으로 이사 와서 아예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며 “그것도 다자녀 가구이기 때문이 아니라 농어촌 지역이기 때문에 받는 급식비 면제 혜택이 고작”이라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지난 9월 정부가 발표한 2차 저출산 기본안에 따르면 2011년 이후 출생한 셋째에게 고등학교 교육을 무상 지원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윤 씨는 이미 2011년 이전의 출생한 자녀로 뒀기 때문에 무상 지원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정부가 실시하고 있는 육아 휴직제나 휴직급여 월 40% 지급도 그에게는 너무 먼 얘기다. 윤 씨는 자동차 부품회사를 남편과 함께 운영하는 중소 자영업자이기 때문이다. 윤 씨는 “정부도 아이를 낳으라고만 했지 실질적인 보장이 없어 한국에서 엄마로 살아가는 게 힘이 든다”고 전했다.

◆ 출산율, OECD 평균도 못 미쳐
지난해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1.15명으로 OECD 국가 평균 1.75명다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미국은 2.12명, 프랑스는 2.0명, 영국은 1.96명을 기록한 선진국에 비해서도 심각한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심지어 2020년 한국의 인구 증가율이 -0.02%일 것이라고 말해 한국의 계속되는 저출산 현상에 대한 우려감을 나타냈다.

이와 관련 현대경제연구원(연구원)이 지난 8월 ‘저출산 원인과 대책’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연구원이 서울·경기 지역 20~30대 직장인 561명을 대상으로 ‘저출산 원인과 대책’에 관한 전화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예비 부모들의 희망 자녀수 평균은 1.81명으로 집계돼 합계출산율 1.15명과 0.76명의 격차를 보였다.

‘희망하는 자녀수만큼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에 대해 예비 부모들은 ‘과도한 자녀 양육비용(64.7%)’을 1위로 들었다. 2위는 ‘시간부족(12.1%)’이 올랐다.

즉, 앞선 사례와 같이 자녀 양육비를 감당하기 위해 맞벌이 또는 전업주부 생활을 하게 됨으로써 한 달 먹고 살기에도 바쁘다는 서민들의 고충이 여실히 반영된 것이다.

자녀 양육비용 중 가장 부담되는 것은 ‘사교육비(57.9%)’ ‘유치원 보육 위탁비(17.3%)’ ‘의료비 등 양육비(10.5%)’ 순으로 집계됐다. 시간부족에서는 ‘맞벌이(63.8%)’ ‘미흡한 휴가·휴직(18.9%)’ ‘과도한 근무시간(14.0%)’으로 나타났다.

응답자들은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임신 출산비용 확대지원(43.5%)’, ‘국·공립 보육시설 확충(33.2%)’ 등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요구했다.

이철선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선 양육비용 절감과 여성의 경제활동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실시돼야 한다”고 분석했다.

◆ “공공 보육 기관 늘려야”
124만 4580명(4일 기준)의 가입자를 보유한 한 육아관련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하루에도 여성 혼자 육아를 담당해야 하는 현실에 대한 원성의 글이 수십 개씩 올라오고 있다.

jp*란 아이디를 쓰는 30대 엄마는 “남편이 집에 일찍 들어와도 아이를 보려고 하지 않는다. 디자이너였던 자신의 재능이 아까워 회사에 다시 나가고 싶다고 하니까 300만 원 이상 벌어오지 못할 거면 전업주부 본분이나 지켜라고 한 말이 너무 속상하다”고 글을 올렸다.

임신 후 직장과 육아의 고민을 겪는 예비 엄마(아이디 togeb**)는 “육아 휴직 자체를 회사는 달가워하지 않는다. 서류 한 번 신청하려면 왜 주변에 봐줄 사람이 없는지, 보육기관은 왜 사용 안 하는지 등 관련 서류를 까다롭게 요구해 어쩔 수 없이 육아 휴직을 신청하지 않았다”고 글을 올렸다.

사이트를 통해 확인한 결과, 기업과 남성은 육아 부담을 나눌 수 있는 의존 대상이 되지 못했다.

서울역에서 만난 9개월 아이를 둔 장유진(34, 부산시 부산진구 개금동) 씨도 “엄마가 아이를 키우려면 직장을 그만두거나 탁아시설에 맡기고 계약직 직장을 다녀야 하는 상황”이라며 “탁아시설을 의지하는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이 같은 경직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여성들은 아이들을 믿고 맡길 수 있는 곳만이라도 보장해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송지 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 사무총장은 “무작정 어린이집을 늘리는 것보다 믿고 맡길 수 있는 국공립 어린이집을 늘려야 한다”며 “국내의 법인 보육시설이 기껏해야 10%밖에 안 되는 상황에서 나머지 90% 사립 어린이집을 최대한 부담 없이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 사무총장은 “국가가 보육 교사의 처우 개선, 인증제평가제 감독을 강화해 질 높은 공공 보육 기관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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