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치적을 위한 야합은 부메랑이 된다
[사설] 치적을 위한 야합은 부메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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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뉴욕에서 열린 한일정상회담에서 아베신조 일본 총리에게 화해치유재단 해산의사를 밝혔다. 2015년 12월 박근혜 정부는 느닷없이 한·일 위안부 문제를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최종적·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고 밝혔다. 또다시 피해자를 우롱하고 자존심을 짓밟는 발언이었다. 1964년 ‘김종필-오히라 메모’로 체결된 한일협정은 ‘한국과 일본 사이 일제강점기에 대한 모든 것을 없었던 것’으로 했다. 이는 일본 측의 명확한 사과를 받아내지 못하는 단초가 됐다. 여기에 배상금 액수조차 ‘헐값’이었다. 50여년 전 한일협정이 맺어질 때도, 2015년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 때도 정작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담기지 않았다. 

첫 합의는 잘 살아야 한다는 국가적 위기감 때문에 빚어진 결과였다는 변명이 통하기도 했지만, 두 번째 합의는 아버지의 오점을 덮고, 치적을 남기고자하는 최고 권력자의 욕심밖에 보이지 않았다. 두 번이나 피해자를 무시한 굴욕외교에 위안부 할머니들은 일본이 아닌 우리 정부에 또다시 배신감을 느껴야 했다. 

독일은 히틀러의 범죄를 끝없이 사죄했다. 독일이 유럽연합의 중심국이 된 데는 이런 진정한 사과와 화해가 기초가 된 것이다. 반면 일본은 ‘전쟁 때는 누구나 그랬다’는 식으로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저지른 인권유린과 학살을 합리화하는 뻔뻔함을 보이고 있다. 용서는 잘못한 사람이 진심으로 용서를 구할 때 이뤄지는 것이다. 그럴 때 진정한 화해도, 치유도 이뤄지고 새로운 미래 관계도 형성되는 것이다. 사죄하지 않는 가해자에게 빠져나갈 명분만 준 합의를 우리 정부가 자초했다는 것은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다. 유명무실한 화해치유재단의 해체는 이미 예고된 것이다. 정치인이 치적을 위해 피해자를 밟고 선다면 그것은 피해자에겐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되고, 국가엔 부메랑이 돼 돌아온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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