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지조선’에 수록된 당시 남산 총독관저의 모습이다. 통감관저 사진과 비교하면 두 건물 사이에 증축된 건물 하나가 연결된 것을 볼 수 있다. (사진제공: 우리문화재연구소)

‘통감관저 터’ vs ‘녹천정 터’ 표석설치 이름 논란

[천지일보=박선혜 기자] 서울시 표석설치자문위원회는 100년 전 경술국치(1910년 8월22일)의 현장인 서울 남산 통감관저 터의 표석을 설치하기로 하고 그 이름을 ‘통감관저 터’ 대신 ‘녹천정(鹿川亭) 터’로 정했다.

녹천정은 조선 철종 때 만들어진 정자인데 일본은 1884년 갑신정변 때 일본공사관이 불타자 이곳을 반강제로 빼앗아 허물고 일본공사관을 새로 지었다.

1906년 2월 을사보호조약에 따라 일본공사관 이름이 폐지되고 한국통감부가 설치되면서 통감관저로 명칭이 바뀌었다. 그때부터 통감관저로 쓰였으며, 1910년 8월 22일, 통감이던 테라우치 마사다케와 총리대신 이완용이 이곳에서 한일병합조약에 서명했다.

한일병합 이후 총독관저로 쓰인 이곳은 정확히 언제인지 알지 못하는 사이 완전히 사라졌다. 국권피탈과 나라를 빼앗긴 결과를 초래한 장소가 역사 속으로 잊혀진 셈이다.

이순우 우리문화재자료연구소 소장은 “통감관저는 식민통치자들의 본거지, 곧 심장부라고 할 만하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암울했던 역사의 흔적을 들춰내는 일이 달갑지는 않을 것”이라며 하지만 “터만 남은 이곳에 경술국치의 현장이자 이 땅을 지배했던 역대 통감과 총독의 소굴이었다는 사실을 알릴 표지석 하나 정도는 남겨 둬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표석을 설치하고자 모인 서울시 표석설치자문위원들은 옛 ‘통감관저 터’ 이름 보다 ‘녹천정 터’라는 이름이 적합하다고 의견을 모았다. 일제에 치욕적으로 빼앗긴 남산의 원래 유적을 알리는 데 ‘녹천정 터’라는 이름이 적합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일부 시민단체들은 “이곳이 치욕적인 역사의 현장이지만, 100년 경술국치 역사의 실체로서 보존하는 것이 후세를 위한 책임”이라며 통감관저 터로 명칭, 표석 설치를 강행할 태세여서 서울시와 충돌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서울시는 표석 뒤쪽에 녹천정의 연혁과 한일병합조약 체결 등 역사적 사실을 기록해 표석 문안을 통해 방문객들에게 알릴 예정이다. 이를 위해 표석위원을 위촉, 정밀 사료조사를 거쳐 객관적이고 정확한 표석문안을 작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한 내달 중 다시 표석설치자문위원회를 열어 문안을 확정하고 국립국어연구원의 감수를 받아 내달 말부터 10월 초 사이에 표석을 설치할 방침이다.

현재 녹천정 터는 남산 서울소방재난본부와 유스호스텔 사이 공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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