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젠 이오네스코 作

[천지일보=김지윤 기자] 사람들은 착각한다. 부조리극은 비논리적이고 소통이 없다고. 하지만 부조리극이라도 희곡인 이상 극으로 만드는 과정은 지극히 논리적일 수밖에 없다. 아무리 인물 간 ‘소통의 불가능’을 묘사했을지언정 대사 속에 다음 장면을 연결하는 고리가 분명 존재한다.

부조리극의 시초라 불리는 <대머리 여가수>는 언어유희로 장면과 장면을 잇는다.

작품은 스미스 부부가 저녁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부터 진행된다. 하지만 시간과 대화는 엉뚱한 방향으로 흐른다. 예를 들어 환자의 간을 수술하기 전에 자신의 간을 먼저 시험 삼아 수술한 의사 이야기 등 황당무계한 대화가 둘 사이를 오간다. 시계 바늘은 거꾸로 돌아간다. 추시계의 추가 17번, 7번, 3번을 치고 멈추더니 다시 5번을 친다.

마틴가 내외와 소방대장의 등장은 점입가경이다. 스미스가(家)에 방문한 마틴 부부는 자신들이 부부라는 사실을 모른다. 게다가 여러 번 울린 초인종을 두고 사람이 있니, 없니 서로 언쟁을 높이는 인물들 사이 소방대장이 나타난다. 이들은 각자 자기의 말 밖에 하지 않는다. 마치 사오정처럼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에 대해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언어유희의 특성이 강한 <대머리 여가수>가 처음에는 코미디 한 편을 보는 것처럼 느낄 수 있으나 점점 내용이 진행될수록 인생의 허무함을 다루고 있다. 이오네스코는 인생이 얼마나 허무한지를 코믹적 요소를 가미해 독자와 관객들에게 전한다.

이오네스코의 희곡 작품들은 하나 같이 기발하다. 그의 작품은 사무엘 베게트와 달리 연극을 보지 않고 희곡만 읽어도 재밌는 게 큰 특징이다. 희곡만 봐도 무대가 그려진다.

그는 전혀 독자와 관객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대머리 여가수>라는 제목과 달리 희곡에는 대머리 여가수는 등장하지 않는다. 단순히 대화 속에서 딱 한 번 등장할 뿐이다.

1950년대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특이했다. 이 시기에 기존 문학에서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장르의 작품들이 여기저기서 발표됐다. 소설계에서는 반(反)소설인 누보로망이, 희곡에서는 부조리극(반연극)이 세상에 얼굴을 내민 시기였다. 문학계에서는 1950년대에 발표된 작품들이 과거 100년간 이룩한 성과와 비슷할 만큼 풍성하고 다양하다고 말하고 있다.

각박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의 의미와 목적이 없다고 말하면서 삶을 유지하고 있다. 외젠 이오네스코는 어떠한 매력을 느껴 부조리극에 손을 담근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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