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욕의 역사는 나(이구)로 끝나야 할 것”

[천지일보=김지윤 기자] 지난 2005년 7월 16일 제29대 황위 계승자 이구(李玖) 황태손(황제의 맏손자)이 일본의 한 호텔 화장실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손이었던 그의 삶이 허무하게 끝나는 순간이었다. 일본 측에 따르면 그의 마지막 모습은 화장실 양변기에서 우측 45도 기울인 상태로 온 몸이 시커멓게 변한 상태였다. 사인은 심장마비.

당시 일본 측의 발표에 황손들은 “어처구니없다”며 공식발표에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들을 보였다. 이구 황태손의 죽음은 5년이 지난 지금도 표면적으로는 심장마비이나 원인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아 황손들의 답답함을 더하고 있다.

◆심장마비가 아닌 의문사

75세에 생을 마감한 이구 황태손은 일본 아카사카에 위치한 로열프린스호텔 3층 302호에서 마지막을 보낸다. 국민들의 기억 속에 점점 사라져 가던 황태손의 삶은 별안간 죽음으로 관심을 모으게 된다.

이구 황태손 사체가 발견된 후 일본은 한국에 알리지 않고 유해와 내장을 표백하고 방부제 처리했다. 한마디로 일본은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손 시신을 조용히 부검한 셈이다. 일본 측이 발표한 심장마비설(說)로만은 그의 죽음을 설명하기가 어렵다는 게 황손들 측 주장이다. 아울러 한의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검게 변한 사체는 약물에 의한 것”이라고 말해 그의 죽음에 궁금증을 더하고 있다.

이구 황태손과 사촌지간인 이석 씨는 “이구 황태손이 일왕궁 옆(로열프린스호텔)에서 빚더미에 올라앉아 객사한 것에 대해 확실한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며 “건강상 문제가 없던 이구 황태손이 갑작스레 의문사를 당한 것에 대해 일본 경찰은 형식적 부검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자세히 알려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 이구 황태손 어린 시절 (사진제공: 황실문화재단)

◆기구한 삶을 보낸 마지막 황태손

이구 황태손의 삶은 일제강점기를 겪은 우리나라 자화상이다. 안희천 서울교대 교수의 말을 빌리면 가혹한 침략을 겪었던 100년 전의 치욕스러운 아픔의 대단원이 이구 황태손의 죽음이다.

이구 황태손은 대한제국황실의 마지막 황태자인 영왕 이은의 직계 외아들이다. 하지만 그의 국적은 한국, 일본, 미국 중 어느 곳으로 단정 짓기 어렵다. 실제로 미국 유학시절 이승만 전 대통령이 한국여권 발급을 거부했으며 이를 딱하게 본 미국 정부는 영주권을 그에게 줬다. 이로 인해 죽을 때까지 그는 이중국적을 지녔다.

아울러 그의 외척은 일왕가(家)였다. 어머니는 잘 알려진 대로 이방자(나시모토 마사코) 여사로 현재 아키히토 일왕의 어머니인 나카코와 사촌자매 사이다. 즉 아키히토 일왕과 황태손의 경우 혈족상으로 이종 육촌형제가 되는 셈. 이구 황태손은 한일 황실에 가장 밀접하고도 묘한 위치에 놓인 인물이었다.

일각에서는 일본 왕실과 대한제국 황실 간 이해관계에 얽힌 희생양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일왕가에서는 후계자를 본 이들이 없다는 점이다. 일왕가가 바라보는 이구는 계륵과도 같은 존재였다.

2005년 8월 12일에 방영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그에게 자유는 없었다’라는 제목으로 이구 황태손의 생애와 죽음에 대해 다뤘다. 일본 땅에서 사실상 인질처럼 살다 간 그의 모습, 한국정부에서 보내주는 생활비를 7개월간 받지 못한 사실 등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양자 선임에 있어서도 고인의 뜻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안희천 서울교대 교수는 “이구 황태손께서는 양자를 끝까지 거부하셨다. 당시 전주이씨 대동종약원 측이 아무리 양자 선임을 요구해도 추후 2~3년 후라고 쓰고 날인하셨던 분”이라며 양자 문제에 있어서도 자유롭지 못했던 이구 황태손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러나 종약원 측은 독단적인 결정으로 이원(이상협) 씨가 황사손으로 추대됐다. 그는 의친왕의 10남 이갑 씨의 아들이다. 안 교수는 “이상협 씨는 후계 검증 없이 발표됐다. 그는 이구 황태손의 후처 아리다 여사(일본국적)에게 양자로 입적됐다”며 “입적 당시 이구 황태손은 이미 돌아가셨기 때문에 법적으로 봐도 황태손의 후계자가 아니다. 조선왕실이 600년 만에 아리다 황실로 바뀐 셈”이라고 한탄했다.

이석 씨는 “영친왕과 이구 형님이 사망한 나이가 74세로 동일할 뿐만 아니라 아버지가 생을 마친 곳에서 아들에게도 똑같이 반복되는 게 의아하다”며 “반드시 사인을 밝혀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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