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경술국치 100주년이자 광복 65주년으로 나라 잃은 설움과 해방의 기쁨을 곱씹어 볼 수 있다. 그 가운데서도 잃어버린 대한제국 황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일제의 탄압으로 자유롭지 못했고 광복과 동시에 역사 속으로 사라져야만 했던 황실. 그들의 후손들은 쉬쉬하며 살고 있었으나 이구 황태손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잔잔했던 황실에 파동이 일고 있다.

▲ 이구 황태손의 유년시절(사진제공: 황실문화재단)

이구 황태손 회은 5주기 ①

[천지일보=김지윤 기자] 눈에 보이는 광복을 한 지는 벌써 65년이 지났지만, 대한제국 황실의 광복은 아직도 멀기만 하다. 최근 황실을 잇는 혈통(황통)이 일왕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주장이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달 25일 MBC방송 <시사매거진2580>에서 한국과 일본에서 각각 치러진 이구 황태손 5주기 제향이 전파를 탔다. 한국에서는 전주이씨대동종약원이, 일본은 나시모토가(家)가 의식을 진행했다.

나시모토가의 6대손인 나시모토 타카오는 채취한 이구 황태손의 손톱과 머리카락을 하얀 종이로 싸서 간직하고 있었다. 그는 방송에서 “이구 씨의 뒤를 이을 후손이 없다”며 “나시모토가의 이방자(나시모토 마사코, 이구의 어머니) 씨가 대한제국으로 시집갔다. 지금 (이구 씨를) 지켜줄 사람이 없으니 나시모토가의 6대손으로 내가 제향을 지내는 게 옳다”고 밝혔다.

나시모토의 발언은 한국 측 관점에서 억지스러운 주장일 수 있다. 하지만 이방자(나시모토 마사코) 여사와 결혼한 영친왕, 이들의 아들 이구 이름이 일왕가 족보에 버젓이 오른 것을 볼 때 나시모토의 발언은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황실의 반대로 벽안의 줄리아와 이혼한 이구는 일본으로 건너가서 아리다 기누코라는 일본 무당과 결혼했다. 일본에서 둘 사이에 자녀가 없었으며 촌수로 이방자 여사의 조카뻘, 즉 이구와는 사촌관계인 나시모토 타카오 말을 빌리면 그가 이구의 보호자 역할을 담당했다. 이러한 이유로 나시모토는 이구의 제향을 자신이 올리는 게 맞다고 주장한다.

안천 서울교대 교수는 “나시모토의 발언은 한국에서 지내는 전주이씨대동종약원(종약원)의 제향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것”이라며 “이는 종약원에서 내세운 황사손 이원(이상협)도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구는 생전에 종약원에서 이원을 양자로 들이라는 요구를 받았으나 2~3년 후에 정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따라서 이구가 인정한 양자는 없었으며, 나시모토도 이를 염두하고 말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구 황태손과 사촌지간인 이석 황손은 “이구 황태손이 일왕가 족보와 호적에 올랐다”며 “이는 일제강점기에서 광복을 맞았지만, 왜침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가장 많이 받은 황실은 정작 광복을 누리지 못한 셈”이라고 한탄했다.

지난 2005년 제29대 황위 계승자 이구 황태손이 일본의 한 호텔 화장실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종약원이 황사손으로 지명한 이원은 이구가 사망한 후에 아리다의 호적에 입적됐다. 법적으로 망자에게 양자를 들일 수 없기 때문에 부인인 아리다의 양자로 입적한 것으로 분석된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