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김현진 기자]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차명계좌에서 촉발된 과징금 문제가 다른 은행 차명계좌로 불똥이 튀고 있다.

이 회장이 1993년 8월 실명제 시행 이전에 개설한 계좌는 원장이 없어 과징금을 부과할 방법이 마땅하지 않지만, 현재 살아있거나 휴면 상태인 은행계좌는 실명제 시행 시점의 원장을 복원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주요 시중은행들이 금융실명제 긴급명령 시행일 기준시점(1993년 8월 12일)의 계좌 원장을 일부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1993년 8월 12일 이전에 개설된 계좌라도 현재 살아있는 계좌이거나 휴면계좌는 기록을 보관 중이다. 다만 기록이 워낙 방대하기 때문에 특정 시점의 기록을 일률적으로 복원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실명제법 부칙 6조1항은 금융실명제 긴급명령 시행일 현재(1993년 8월 12일)의 금융자산 가액의 50%를 과징금으로 부과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1993년 8월 당시 계좌 원장을 제시할 수 있어야 차명계좌에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법제처의 과징금 부과 유권 해석을 끌어낸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실명제 이전 차명계좌의 경우 해당 계좌를 보유한 삼성증권과 신한금융투자, 미래에셋대우, 한국투자 등 4개 증권사는 금감원에 당시 계좌 원장을 보유하지 않고 있다고 보고했다. 이에 따라 기록이 없어 과징금 부과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반면 은행 활성계좌나 휴면계좌는 당시 기록에 접근할 수 있으므로 1993년 8월 이전에 개설된 계좌가 차명계좌라는 점이 입증된다면 당시 계좌 잔액의 50%를 과징금으로 내야 한다.

그러나 이미 해지된 계좌는 기록이 없어 과징금 부과가 사실상 어렵다.

이 때문에 차명계좌를 운영했지만 활성·휴면계좌인 사람들은 과징금을 내고, 과거에 해지한 사람들은 기록이 없어 과징금을 내지 않는 문제가 생겨 논란이 예상된다.

따라서 금융당국이 1993년 8월 당시 데이터를 제대로 복원하지 못하면 형평성 문제 때문에 되레 역풍을 맞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금융위와 금감원, 국세청, 시중은행 등은 13일 김용범 금융위 부위원장 주재로 회의를 열고 실명제 실시 이전에 개설된 차명계좌에 대한 실태조사에 즉시 돌입했다. 김 부위원장은 이날 회의에서 금융사들에 1993년 8월 당시의 계좌 원장 보유 여부를 집중적으로 점검해 줄 것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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