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염력’에서 ‘루미’ 역 맡은 배우 심은경. (제공: 매니지먼트AND)
영화 ‘염력’에서 ‘루미’ 역 맡은 배우 심은경. (제공: 매니지먼트AND)

 

‘염력’ 낯선 초능력 소재

캐릭터 상상하기 어려워

사춘기 경험도 도움됐죠

 

이겨냈다면 거짓말

어려움 공존하지만

어떻게 발전할지 고민하죠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영화 ‘부산행’ 오프닝에서 부산행으로 가는 열차에 마지막으로 탑승한 한 여성은 원인 모를 말을 중얼거리더니 좀비로 변했다. 부산행의 좀비 습격을 처음 알리는 이 장면에서 좀비 역할을 맡아 강렬한 인상을 남긴 배우 심은경이 영화 ‘염력’을 통해 자수성가한 치킨집 사장님이 됐다.

지난달 31일 개봉한 영화 ‘염력’은 갑자기 초능력이 생긴 아빠 ‘신석헌(류승룡 분)’과 모든 것을 잃을 위기에 빠진 딸 ‘신루미(심은경 분)’가 세상에 맞서 상상 초월 능력을 펼치는 이야기다.

‘신루미’는 치킨 가게를 성공적으로 운영하다가 지역 개발로 인해 철거 위기에 처한다. 모든 것을 잃은 위기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당찬 신루미의 모습에서 심은경이 투영된다. 영화 개봉 전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신루미 만큼 솔직하고 씩씩한 심은경을 만났다.

영화 ‘염력’에서 ‘루미’ 역 맡은 배우 심은경. (제공: 매니지먼트AND)
영화 ‘염력’에서 ‘루미’ 역 맡은 배우 심은경. (제공: 매니지먼트AND)

“제 이름 기억 못 하시더라도 역할로 기억해주셔서 뿌듯할 때가 많아요. 내가 온전히 역할로 관객분들한테 보였다는 것에 보람을 느끼죠.”

다채로운 캐릭터 변신을 이어온 심은경은 이번 영화에선 한층 성숙한 연기를 선보인다. 온 힘을 다해 버티며 싸우는 신루미로 분해 강한 용기와 포부를 보여준다.

그러나 초능력은 연기하는 배우에게도 낯선 소재다. 심은경은 “한국에서 보편적으로 다뤄지는 소재가 아니다 보니 사실 처음엔 상상이 잘 되진 않았다”며 “심지어 루미라는 캐릭터도 어떻게 그려질지 상상이 잘 안 돼서 출연을 결정한 후 감독님하고 얘길 나눴다”고 회상했다.

그는 “감독님께서 준비해주신 연기 레퍼런스가 많은 도움이 됐다.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영화 ‘더 레슬러’의 주인공 랜디 더 램 로빈슨과 딸 스테파니 로빈슨과의 관계에서 영감을 받았다”며 “딸이 아버지에 대해 가지고 있는 애환의 감정이 루미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루미 부녀의 복잡하고 미묘한 관계가 잘 나타나길 바랐다”고 전했다.

영화 ‘염력’ 스틸. (제공: NEW)
영화 ‘염력’ 스틸. (제공: NEW)

영화는 “170도 기름에 11분 동안 튀긴 청양고추치킨, 정말 맛있어요”라는 책을 읽는 듯한 멘트와 함께 어색한 웃음을 보이며 평일 저녁 시간대 음식점 정보를 알려주는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루미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이 장면을 위해 심은경은 실제로 TV 프로그램을 보며 연기를 연구했다. 그는 “제가 치킨을 튀겨보거나 사장님이 돼 본 적이 없어 처음엔 감이 잘 안 왔다. 감독님께서 추천해주신 ‘서민갑부’와 ‘생생정보통’을 유심히 봤다”며 “추가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봐서 사실감 있는 연기를 보여주고 싶었다. 홍보 차원에서 대사를 한다던가, 동공이 흔들리는 부분을 확실하게 살리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기존의 작품에서는 독특한 성격으로 눈에 띄는 연기를 했다면 루미는 이전에 비교해 뚜렷한 캐릭터가 있는 인물은 아니에요. 루미는 사건에 따라 흘러가는 인물이어서 중심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오히려 어려웠어요.”

그가 노력한 결과는 영화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어린 시절 집을 나가 10년 만에 나타난 아빠가 이상한 능력을 과시해 원망스럽고 못마땅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반가운 루미. 심은경은 자칫 넘치거나 모자를 수 있는 아빠에 대한 애증의 감정을 적절한 톤을 유지하며 연기했다.

영화 ‘염력’에서 ‘루미’ 역 맡은 배우 심은경. (제공: 매니지먼트AND)
영화 ‘염력’에서 ‘루미’ 역 맡은 배우 심은경. (제공: 매니지먼트AND)

어려운 연기를 잘하더라는 기자의 말에 심은경은 벌떡 일어나 꾸벅 인사하며 “감사합니다”라고 답했다. 그는 “루미 같은 극적인 상황은 제가 겪어보진 못했다. 그렇지만 저도 부모님과의 문제가 있었고, 사춘기 때 치기 어린 마음에 반항을 한 적도 있었다”며 “그런 경험들이 쌓아져서 나오게 됐던 것 같다. 부녀의 첫 대면 신을 촬영했을 때 많이 긴장했다. 루미의 아버지에 대한 마음이 솔직하게 드러나는 장면이기 때문에 중요했다”고 말했다.

이어 “고민이 많이 돼서 감독님한테 말했더니 ‘걱정·생각하지 말고 그냥 하시면 된다. 긴장하면 감정 안 나온다’고 말씀해주셨다”며 “(류)승룡 선배님이 배려해주시고, 농담도 좀 하고 마음이 풀어진 상태에서 하니까 확 몰입돼서 순간적으로 감정이 나와 순조롭게 촬영했다”고 덧붙였다. 지난 인터뷰에서 성장통을 겪고 있다던 심은경. 2년이 지난 지금 그의 나이는 25세로 아직 앳된 얼굴이지만 그는 관록이 느껴지는 여배우로 한층 성장한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아직 성장 중”이라고 말했다.

“성장통이라는 건 늘 겪는 것 같아요. 통(痛) 이라는 게 아직은 조금 남아 있지만 그땐 처음 겪어봐서 우왕좌왕했다면 지금은 매년 느끼는 바가 다른 것 같아요. 제가 지금 20대 중반인데요. 많이 어리고 뭘 잘 알겠느냐마는 단순하게 생각하려는 습관을 지니게 됐어요. ‘이겨냈어요’는 거짓말 같고, 여전히 내 안에서 공존하는 어려움을 어떻게 발전시키느냐가 중요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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