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트럼프 대통령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하며, 이를 문서에 정식으로 서명한 바 있다. 지난 70년 동안 세계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각각의 수도로 인정해 왔지만, 트럼프다운 선언으로 지구촌은 또 한번 혼돈의 늪으로 빠지게 됐다. 지금 세계는 예루살렘 사태 못지않은 일들이 혼재한 채 잊혀가고 있다. 하지만 한번 터진 뇌관은 걷잡을 수 없는 재앙이 돼 번져가고 있지만 세계는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2천년 전 예루살렘을 통해 기원(BC~AD)이 바뀌었고, 서기동래라는 말처럼 지금 다시 예루살렘과 한반도는 섭리를 좇아 인류의 기원이 또다시 바뀌는 시기에 맞춰 예기치 못할 상황으로 치닫고 있으며, 세계의 눈은 아시아의 서쪽과 동쪽 끝으로 모아지고 있다. 이처럼 아우성치는 현실 속에서 홀연히 진행돼 가는 그 섭리는 무엇일까.

지난 시론을 통해 예루살렘 사태에 대해 표면적(역사적·정치적) 측면에서 들여다봤다면, 이번에는 종교적 관점에서 사태의 내면에 담긴 진정한 의미와 이 예루살렘을 통해 이 시대가 깨달아야 할 게 뭔지를 짚어보고자 한다.

한마디로 불씨의 당사자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슬람)이다. 상징적 불화의 씨는 부활한 예수가 승천하기 전 남겼다는 오른쪽 발자욱이 찍힌 바윗돌 하나에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즉, 이 바윗돌의 소유의 문제며, 이 소유는 바윗돌을 넘어 자기 종교의 신념으로 양보할 수 없는 절대적 자존심이며 가치라는 데 있다. 결국 그 가치에는 유대교와 이슬람교와 기독교라는 3대 종교가 뒤엉켜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제 이 바윗돌에 대해 알아보자. 먼저는 유대교와 기독교와의 관계다. 다 같이 하나님을 믿으며 성경을 인정하지만 사실은 다르다. 한마디로 성경은 약속의 글이며 이 약속은 구약과 신약으로 구분돼 있다. 이 약속 가운데 유대교는 구약만을 인정한다면, 오늘날 기독교는 구약은 물론 신약까지 인정하고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성경 안으로 한 발짝 다가가 앞서 언급한 바윗돌에 관한 얘기를 해 보자. 창세기 22장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고 모리아 산에 올랐으며, 결국 이삭 대신 숫양을 번제로 드리게 되는데 그곳이 바로 이 바윗돌이다. 유대교는 이 사건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고 믿는 종교라면, 기독교는 이삭 대신 제물이 된 숫양은 예수를 예표하며, 나아가 숫양의 번제는 예수의 피로 얻게 되는 죄 사함을 상징하는 것이며, 나아가 예수의 피로 약속한 것이 바로 오늘날 신약이라고 믿는다. 이뿐만 아니라 무슬림에게 있어서 바윗돌은 꾸란 17장을 들어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가 승천해서 하늘로 올라간 바위로 믿고 있다.

살펴봤듯이 이 바윗돌 하나가 지니고 있는 의미는 생각보다 첨예하며 각기 다른 종교적 신념이 상충돼 있는 뇌관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각기 종교마다의 애증이 서린 바윗돌이 위치한 곳이 바로 예루살렘(성전)이다. 이러한 예루살렘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어느 한 쪽의 손을 일방적으로 들었다는 것이 팩트다.

지금까지 그 사연을 짚어 봤다면 이 사연을 통해 우리가 참으로 깨달아야 할 게 있다. 이 바윗돌 하나로 얽혀 있는 세 종교는 다 같이 겉으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믿는 내용도 방법도 다르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기독교는 구약과 신약이 기록된 성경을, 유대교는 구약만을, 이슬람교는 성경을 다르게 또는 도용해 사용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반드시 짚을 것은 종교는 신과의 약속이라는 점이다. 이 약속은 약속대로 성취된 게 있어야 그 약속에 대한 신뢰성이 입증되며 나아가 그 신을 믿는 믿음의 근거가 된다. 그런 측면에서 구약과 신약이 기록된 성경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약속대로 성취한 근거들이 성경의 역사로 분명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구약이 있었는데 또 다른 신약을 했을까. 요한복음 1장을 통해 하나님은 명쾌한 답을 줬다. 즉, 자기 땅에 왔지만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했으니, 한마디로 구약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며, 약속은 예수를 보내겠다는 것이었고, 보낼 때 영접하겠다는 쌍방의 약속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약속대로 보냈고, 유대인들은 영접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중에서 영접하는 자는 혈통, 육정 상관없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세를 주고받는 새로운 법을 선포했으며, 이것이 바로 인류의 기원이 바뀐 대역사였다.

혈통 즉, 아브라함은 본처인 사라에게서 이삭을 낳고, 계집종 하갈에게서 이스마엘을 낳았다. 그리고 네 자손으로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 했으니, 오늘날 이슬람인들이다. 하지만 요한복음 1장을 통해 언급했듯이 육적 혈통이 아닌 하나님의 씨로 난 자로 하여금 새로운 하나님의 세계를 약속했으니 신약이다.

결국 지구촌의 모든 혈통과 신분과 계급은 무효며 오직 하나님에게로 다시 나야만 하는 새 법이 선포된 것이다. 이에 대해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31장에 ‘새 일 창조’를 약속했으며, 그 약속대로 예수가 와서 마태복음 13장을 통해 씨를 뿌리고 추수 때 추수를 약속하고, 추수돼 온 자들로 하여금 인을 쳐 곳간인 하나님의 나라 즉, 새나라 새민족 12지파를 창설할 것을 약속했다. 이 신약은 곧 계시록이며, 이때 나라의 본 자손들은 어두운 데로 쫓겨난다고 하니 나는 누구인지를 깨달아 분별이 필요한 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예루살렘을 놓고 자행되는 일련의 주장과 전쟁 등 참극은 부질없는 신념의 결과며, 이 같은 무지가 이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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