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면 편집인

 

그 어느 해보다 다사다난했던 정유년을 뒤로한 채 무술년 새해는 힘차게 떠올랐다. 그러함에도 한편으로 무거운 마음 지울 수 없는 것은 너무나 어지러운 세상의 늪을 건너가고 있기 때문일 게다. 필자는 새해벽두부터 무거운 내용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펜을 들어야만 했다. 

연말연시 그것도 친부에 의해 8개월 동안 야산에 유기된 고준희(5세)양의 서러운 소식을 접해야 했기 때문이다. 과거 70~80년대까지만 해도 부모가 자식을, 자식이 부모를 죽인 사건은 온 국민이 치를 떨 정도로 경악을 금치 못할 대사건으로 간주됐다. 하지만 20여년이 지난 지금은 자고나면 접해야 하는 안타깝고 부끄러운 우리의 일상이며 자화상이 되고 말았다. 기가 막힐 일은 잔인하고 더 잔인해야만 보도의 이슈가 되고 단순 사건은 짤막한 자막 한 줄로 끝나는 생명 나아가 생명의 가치가 오늘의 현실이 됐다는 것이다. 

원인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일제강점기를 지나 찾아온 동족상잔의 비극은 강산을 피로 물들였고 재로 뒤덮혀야만 했다. 그 후 정부 정책은 오직 성장 일변도 일색으로 점철돼 왔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도 있으니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필자는 물론 그 시절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 왜 그랬냐고 함부로 말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래도 이젠 말할 수 있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정책의 중심에는 항상 ‘사람’이 있어야 했다. 경제성장도 결국은 사람을 위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성장을 위한 성장일 뿐 정작 사람은 없었다. 인본주의(人本主義, 인간이 모든 것에 주인이 되는 사상)가 사라진 것이다. 오늘날 우리 자신이 생명이면서 생명을 경시하는 생명경시 풍조, 누구의 잘못이라고 치부할 수 있을까. 우리의 책임, 나의 책임이며 나아가 정책·학교교육·언론·종교·기성세대가 심각하게 고민해 볼 사안이 돼 있으며, 나아가 우리 고유의 정신문화 회복이 절실한 때다. 

본시 크게는 ‘경천애인(敬天愛人, 하늘을 숭배하고 인간을 사랑함)’이 우리의 사상이었고, ‘홍익인간(弘益人間, 널리 인간세계를 이롭게 함)’이 우리의 이념이었으며, 작게는 항시 예를 중시여기는 ‘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이었다. 이 같은 사상의 중심에는 한결 같이 사람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함에도 이처럼 고귀한 사상과 이념과 정신은 사라지고 어찌하다 강퍅하고 부끄러운 생각을 가진 천한 민족으로 수치를 보이게 됐는가. 

이쯤에서 민족의 독립만을 위해 살다 가신 김구 선생의 자서전 속에 담긴 ‘나의 소원’이라는 글을 통해 선생의 높은 혜안을 들여다보며 앞으로 나아 갈 길을 찾아가는 것이 이 시대 우리의 사명인지도 모른다.

선생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민족의 독립’이었다. 나아가 그 독립된 나라에서 살아갈 우리 민족이 지녀야 할 정신과 이념과 방향과 목표와 목적을 분명하게 제시한 것이다. 즉,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하셨다. 그 아름다운 나라는 가장 부강한 나라도 아니고, 아주 잘 사는 나라도 아니라 했다. 그러면서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지금 인류에게 부족한 것은 무력도 아니요 경제력도 아니라 하면서, 자연과학의 힘은 아무리 많아도 좋으나 인류 전체로 보면 현재의 자연과학만 가지고도 편안히 살아가기에 족하다고 했다. 다만 인류가 현재에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이며, 현재의 물질로도 온 인류가 다 편안히 살아갈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강조한 것은 이러한 생각을 온 인류에게 고양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문화’라고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독립된 우리나라가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했다. 그 이유는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서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우리 민족이 주연 배우로 세계무대에 등장할 날이 눈앞에 보이지 아니하는가”라 하면서, “이러한 나라는 불행하려 하여도 불행할 수 없고 망하려 하여도 망할 수 없을 것이다”라 호소했다. 선생은 이처럼 오늘날 이 시대를 두고 선각자와 선지자의 자세로 미리 설득하고 알린 것이다.

욕심과 교만으로 얼룩진 세상, 성장과 무력이라는 이기주의가 최고의 가치로 자리 잡은 세상, 이러한 때 오직 독립만을 위해 싸우다 그토록 염원하던 통일을 보지 못하고 가신 선생이 남긴 유훈, 그 유훈은 높은 문화 곧 하늘문화였으며, 이는 경천애인이었으며 홍익인간 즉, 사람이 중심이 되고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었다. 

이것이야말로 인본주의(人本主義)며, 이 인본주의야말로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을 이루어 고준희양 같이 억울하고 한 맺힌 영혼이 없는 이상향(理想鄕)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나와 가족이라는 천륜이 무너지는 세상 속에서는 더 이상 그 무엇도 기대할 수 없다. 

이러한 때 선생이 남긴 글을 통해 얻는 지혜가 울림이 되어 우리 고유의 사상과 정신 그리고 이념인 ‘사람이 중심이 되는 세상’을 함께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무술년 새해를 열면서 진정 우리가 고민하며 함께 만들어나가야 할 세상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한다. 그러기 위해선 치우침이 없이 원칙과 기본이 중시되고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 나아가 내가 변해야 세상도 변화시킬 수 있으며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으니 곧 높은 문화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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