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나라에 ‘여성혐오’가 뿌리 깊게 퍼져 있다.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양상이 조금씩 다를 뿐, 여성혐오는 전 세계에 만연하다. 혐오의 시대, 여성의 인권을 훼손하는 사회와 이에 맞서는 사람들을 조명해본다.

 

▲ 네이버의 외국어 번역 서비스 ‘파파고(Papago)’의 검색 결과. (출처: 파파고 캡처)

‘공룡 기업’ 상품·마케팅에도 연일 젠더문제
파파고, 같은 형용사도 성별 따라 뜻 달라져
삼성 갤럭시S8도 ‘여성혐오’ 지적에 개선
“기업들, 소비자 의견 반영해 변화해야”

[천지일보=이솜 기자] ‘wild girl=계집애 같은 여자, wild boy=야생남.’ ‘naughty girl=버릇없는 소녀, naughty boy=개구쟁이 소년.’

7일 기준으로 국내 최대 포털사인 네이버의 외국어 번역 서비스인 ‘파파고(Papago)’의 검색 결과다. 같은 형용사를 써도 여성에게 부정적인 의미의 번역 결과가 나온다.

세계 최대 검색엔진인 구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론다 슈빙어 스탠포드대 교수는 지난 3월 ‘4차 산업혁명에서 젠더 혁신의 역할’ 토론회에서 구글 인공지능(AI) 번역이 스페인어 신문을 번역했을 때 여성 지칭 단어가 남성 대명사로 번역되는 점 등을 꼬집었다.

국내외 주요 포털 등 소위 ‘공룡 기업’의 상품, 콘텐츠, 광고 등이 성 인식을 왜곡시키고 잘못된 성 역할을 나누고 있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파파고 담당자는 위와 같은 지적에 대해 “파파고는 인공신경망(N2MT) 방식으로 번역결과를 제공한다”며 “스스로 번역 데이터들을 학습해 통계적으로 많이 번역된 결과뿐 아니라 문맥적으로 많이 사용된 번역을 실시간으로 수집해 결과를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성차별적인 문구 같은 경우는 문제가 심각한 만큼 내부적으로 해당 내용에 관한 학습데이터의 양을 늘려 번역 결과 품질을 수정하고 있다”고 답했다.

결국 파파고와 구글 번역 모두 스스로 통상적으로 쓰이는 결과물을 수집해 결과물을 내놓는 구조다. 수정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만연해 있는 성차별적 언어로 번역이 될 수밖에 없다. 슈빙어 교수는 “바로 잡지 않으면 남성 편향적인 번역 알고리즘이 누적되고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국내 최대 기업 중 하나인 삼성도 젠더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모양새다.

삼성전자 스마트폰 갤럭시S8은 최근 AI 비서인 빅스비(Bixby) 영어버전 음성에 대한 설명에 여성혐오적인 표현이 포함됐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지난 7월 IT 전문매체인 기즈모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빅스비 남성 목소리에 대한 설명으로 ‘assertive(자신감 있는)’ ‘confident(자신 있는)’로 설명한 반면 여성 목소리에는 ‘chipper(짹짹거리는)’ ‘cheerful(쾌활한)’이라고 여성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해시태그를 추가했다.

이에 한 트위터 이용자는 삼성전자 미국지부에 “삼성은 그것들(성차별적 설명)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 삼성전자 갤럭시S8 AI 서비스 빅스비의 영어버전 음성 중 여성의 목소리에는 ‘chipper(짹짹거리는)’ 등의 성차별적 해시태그가 추가돼 지적을 받았다.(출처: 트위터 캡처) 오른쪽은 한국버전 빅스비.

삼성전자는 이에 대해 “목소리 해시태그 설명을 제거하려고 계획하고 있다”며 “고객들의 반응을 통해 상시 배우고 있다”고 답했다. 이를 반영해 갤럭시S8 한국어 버전에는 목소리에 대한 추가 설명은 없으며 여성 목소리 2개와 남성 목소리 1개가 있다.

삼성카드의 마케팅에도 성차별 문제가 제기된 바 있다. 삼성카드 홈페이지에서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을 기반으로 카드를 추천해줄 때 남성과 여성에 따라 카드 소개와 혜택을 다르게 설정했기 때문이다.

‘카드를 주로 어떻게 이용하는가’에 따라 ‘가족’과 연계되는 타입D에서는 성별을 물은 후 남자라고 답할 시 ‘열심히 살고 멋지게 누릴 줄 아니까’라는 설명과 해당 카드를 추천한다. 그러나 여자라고 답할 시 ‘자녀가 아직 어린가요?’라는 물음이 나오고, ‘네, 어린이에요’라고 답하면 ‘엄마면서 여자라서’라는 설명과 함께 해당 카드를 권한다.

여기에 남성에게 추천되는 카드 사용 시에는 주유, 골프연습장, 음식점, 주점 등에서 혜택을 얻을 수 있으나 여성은 학원, 서점, 학습지, 쇼핑몰, 할인점 등에서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이에 ‘아빠는 멋지게 누릴 줄 알고 여자는 육아만 해야 하냐’는 지적이 나오자 삼성카드 측은 여성신문을 통해 “빅데이터를 이용해 카드를 사용하는 고객들을 성별 또는 연령별로 나누거나 업종별로 분석한 것이며, 성차별을 할 의도는 없었다”는 해명을 내놓았다.

▲ 삼성카드 라이프스타일 카드추천의 타입D. 문구와 혜택 등에 대해 성차별적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출처: 삼성카드 홈페이지)

그러나 빅데이터와 상관없어 보이는 ‘열심히 살고 멋지게 누릴 줄 아니까’ ‘엄마면서 여자라서’ 등의 카드 설명은 아직 수정되지 않은 채 있다.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정슬아 사무국장은 이에 대해 “성별에 따른 고정관념이나 강요되는 역할을 강화시키는 추천 방식은 문제”라며 “빅데이터를 분석할 때 이 같은 결과의 이유가 부당하거나 바뀌어야 한다는 사회적 흐름이 있다면 이것을 성별의 편견이나 고정관념을 강화하지 않는 방식으로 고민해 볼 수 있지 않나. 그런 시도를 하지 않기 때문에 이에 대한 변화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성차별 콘텐츠·마케팅 참지 않는 소비자들

네이버와 구글, 삼성의 이 같은 성차별적 콘텐츠, 마케팅 등은 모두 소비자가 발견하고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소비자들의 인권의식 등이 이전보다 높아지면서 자신이 구매할 제품에 대한 젠더 감수성까지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주로 온라인커뮤니티나 SNS(사회관계망서비스) 등에 의견을 제시하고 이를 공론화시켜 해당 업체의 피드백을 얻는 모양새다.

지난해 넥슨의 ‘서든어택2’는 대표적인 예다. 여성 캐릭터의 과도한 노출로 성상품화 논란이 불거져 한 달 만에 서비스를 종료했다. 올해 스타벅스코리아의 ‘매장 예절 캠페인’, 넷플릭스코리아와 에뛰드하우스의 여성혐오 논란 연예인 광고 영상 등 수많은 기업의 제품, 마케팅 등은 젠더 문제가 불거져 문구나 영상을 수정하거나 삭제해야 했다.

정 사무국장은 “온라인과 SNS 등 소비자 개인들이 움직일 수 있는 플랫폼이 생겼고 기업들도 이들의 의견을 반영해 변화해야 한다”며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개인들이 꾸준히 있다는 것은 의미가 크다. 성차별, 여성혐오적 콘텐츠를 만드는 기업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