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나라에 ‘여성혐오’가 뿌리 깊게 퍼져 있다.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양상이 조금씩 다를 뿐, 여성혐오는 전 세계에 만연하다. 혐오의 시대, 여성의 인권을 훼손하는 사회와 이에 맞서는 사람들을 조명해본다.

 

▲ 성추행 범죄 기사에서 피해자인 여성을 제목과 일러스트에 강조한 사례. (위, 출처: 연합뉴스 홈페이지 캡처),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외모를 강조한 국민일보 기사(아래). 공직자가 아닌 ‘여성’으로서 외모를 강조하며 대상화를 시키고 있다. 여성인 공직자들에 대해 업무 외적인 외모나 의상들을 지적하는 전형적인 여성혐오 보도. (출처: 네이버 기사 검색 캡처)

언론 범죄기사에는 ‘여성’만 있고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여성’이 없어
‘대상화’로 소비하는 방식은 동일
해시태그 운동·여성 예능 등장 추세
“소비자로서 나쁜 미디어 심판해야”

[천지일보=이솜 기자] “남성은 보편이고 여성은 특수하다. 남성과 달리 여성은 반드시 여성으로 호명돼야 한다. 세대, 직업, 취향을 한데 묶어 여기자, 여검사, 여대생으로 특수화한 과거의 관습적 호명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여성들이 등장하자 궁여지책으로 마련한 것이 OO녀들이다.”

책 ‘여성혐오가 어쨌다구?’의 공동저자 윤보라씨는 대중매체에서 여성을 표현하는 방식을 두고 이같이 지적했다. 

언론뿐 아니라 예능프로그램, 드라마, 영화 등 대중매체에서 여성을 표현하는 고질적인 방식에 대한 변화의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가 지난해 ‘혐오표현과 여성혐오에 대한 인식’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 ‘여성혐오 문제 해결을 위해 가장 효과적인 방안’으로 ‘대중매체에서 여성혐오를 부추길만한 내용을 내보내면 징계조치를 해야 한다’는 응답이 28.6%로 가장 많았다. 

또한 ‘대중매체에서 여성혐오를 부추길 만한 내용을 자율적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응답은 13.2%를 차지했다. 40% 이상이 여성혐오의 원인이자 해결 방안으로 ‘대중매체’를 꼽은 것이다.

▲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가 지난해 ‘혐오표현과 여성혐오에 대한 인식’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 ‘여성혐오 문제 해결을 위해 가장 효과적인 방안’으로 ‘대중매체에서 여성혐오를 부추길만한 내용을 내보내면 징계조치를 해야 한다’는 응답이 28.6%로 가장 많았다. (출처: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

◆범죄 기사에는 ‘여성’만 있다

언론의 여성혐오는 범죄 기사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기사 제목에 남성은 없고 여성만 표기한 것이 대표적이다. 여성이 가해자인가 피해자인가는 중요치 않아 보인다. 이 같은 행태는 꾸준히 비판을 받아오면서도 좀처럼 개선하지 않는 모양새다.

왜 문제일까. 여성학 연구자인 체리스 크라마래(Cheris Kramarae)는 “페미니즘은 여자도 사람이라는 근본적인 개념”이라고 말했다. 남성을 기본값으로 놓은 채 ‘여성(姓)’만 부각시킨 행위는 이 같은 근본 개념을 어기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특히 범죄기사 속 여성의 대상화는 마치 ‘여성이기 때문에’ 범죄가 발생하거나 문제가 생겼다고 생각할 수 있게끔 왜곡된 이미지까지 심을 수 있다.

언론의 여성혐오 문제에 대한 비판이 계속 나오자 지난해 언론중재위원회는 성별을 비롯해 인종, 종교, 질병, 장애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는 조항을 추가하기도 했다.

또 네티즌들은 여성만 강조된 기사에 ‘#뉴스기사_남성성별_표기운동’이라고 요청을 보내는 등 해시태그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기사를 간단하고 눈에 띄게 전달해야하는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SNS에서는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

▲ 기사를 간단하고 눈에 띄게 전달해야 하는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SNS에서는 여성혐오 보도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 위에서부터 여성을 강조시키고 검색할 수 있도록 해시태그까지 추가한 연합뉴스와 KBS. 여성을 강조하고 남성은 사람으로 적은 SBS. (출처: 각 언론 트위터 계정 캡처)

지난 7월 한 미용업소의 사장을 살해한 사건을 두고 노컷뉴스는 SNS 계정에 해당 기사를 올리면서 ‘#강간을_시도했지만_미수에_그쳤다’는 해시태그를 추가했다. JTBC는 같은 내용의 기사를 두고 페이스북 계정에 ‘카드 빚 600만원 때문이었다’는 설명을 붙였다. 두 언론사 모두 ‘피의자 중심적 사고’ ‘가해자에게 이입했나’ 등의 비난을 받고 해당 게시물을 삭제했다.

이와 관련해 페미니스트 단체인 불꽃페미액션은 서울 목동 노컷뉴스 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두 언론사에 대해 항의를 하기도 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에서 “여성이 강간당하지 않음을 강조한 것은 여성을 성적대상으로 치부한 기존의 남성중심적 고정관념을 재생산한 것”이라며 “우리는 범죄의 피해자가 되는 것뿐만 아니라 언론을 통해 성적대상화되고 가십거리로 소비되는 것까지 걱정해야만 한다. 여성은 언제까지 언론에게 또 한 번 피해자가 돼야 하는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나와도 대상화되는 예능 속 여성

예능 프로그램에서의 여성혐오는 한층 노골적이다. 무엇보다 여성이 보이지 않는 문제가 1순위로 꼽힌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이 지난 7월 1~7일 일주일간 방송된 33편의 시청률 상위 예능·오락 프로그램을 모니터링 한 결과 전체 출연자 중 주진행자의 여성 비율은 22.8%(13명)으로, 77.2%를 차지한 남성(44명) 보다 현저히 적었다. 전체 출연자로도 여성은 38.7%(159명)으로, 남성(61.3%, 252명)과의 차이가 확연했다.

여성이 나온다 해도 성적으로 소비되곤 했다. 성차별적 내용은 총 32건으로, 성역할 고정관념이나 외모지상주의를 조장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 JTBC ‘아는 형님’은 여성 게스트에게 성적 대상화시키는 질문 등을 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중징계를 받기도 했다.(위), 지난달 웹 예능 프로그램 ‘글로벌 워킹 데이-뭔들 투어’에 출연한 강남은 경리를 4번이나 ‘때릴 수 있다’고 말해 논란을 빚었다. (출처: JTBC 아는 형님, ‘글로벌 워킹 데이-뭔들 투어’ 방송 캡처)

이 같은 상황에서 온스타일의 ‘바디 액츄얼리’ ‘뜨거운사이다’, EBS의 ‘까칠남녀’ 등 최근 방송가에서 나오는 ‘여성 예능’은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해주고 여성혐오적 풍토를 지적해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7일 방송된 ‘뜨거운 사이다’에서 위근우 칼럼니스트는 예능프로그램의 젠더 논란 해결에 대해 “근본적으로는 여성 방송인과 여성 연출자의 자리가 많아지는 게 중요하다”며 “페미니즘 코미디도 한국에서 시도를 해서 대안을 만들어가는 과정도 중요하지 않을까”라고 지적했다.

소비자의 선택이 미디어의 젠더 의식을 개선시킬 수 있다는 의견도 꾸준히 나온다. 미디어 속 여성을 소비하는 방식을 비판하는 내용의 다큐멘터리인 ‘미스 리프리젠테이션’의 제니퍼 시에벨 뉴섬 감독은 소비자로서 여성 파워를 통해 나쁜 미디어를 심판하자고 제안하며 “무엇보다도 여성들이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멘토로서 서로 이끌어준다면 여성들이 힘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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