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예상은 했지만 결국 우려가 현실이 되고 말았다. 지난 4일 북한은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 발사 성공을 공식 발표했다. 마치 확실한 증거라도 보여주듯이 이례적으로 관련 영상까지 공개했다. 환하게 웃는 김정은 얼굴과 벅찬 기쁨에 환호하는 북측 인사들의 표정이 생생하게 전달됐다. 그러나 이 모습을 대하는 우리의 심경은 착잡하다 못해 더 깊은 시름이 몰려든다. 앞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 갈 것인가.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는 뭘 했던가. 성찰과 깊은 탄식, 가끔은 무기력한 우리 모습에 분노까지 치밀어 오른다.

북이 미국에게 건넨 말,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북한의 이번 ICBM 발사는 무엇보다 미국에 던진 강력한 메시지였다. 시점도 하필 미국의 독립기념일이다. ‘불꽃 축제’를 벌이며 자축하던 미국 독립기념일 바로 그날, 북한은 미국을 향해 ‘무시무시한 불꽃’을 쏘아 올린 셈이다. 심지어 북한은 방송을 통해 앞으로도 크고 작은 ‘선물’을 미국에 계속 안길 것이라고 공언했다. 확실한 자신감을 드러냄과 동시에 이제 미국이 어떻게 화답할 것인지를 묻는 속내가 명료하다. 미국으로서는 여간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리적 타격이냐 아니면 외교적 협상이냐의 외길에 들어섰다는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전처럼 유엔을 통한 대북제재나 중국을 통한 우회적 압박 등은 더 이상의 효과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당장 미 행정부는 강경한 입장을 내놓았다. ‘더 강력한 대북조치’로 ICBM 발사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반응은 우리가 봐도 공허하다. ‘더 강력한’ 대북조치가 무엇이며, 또 누구에게 무슨 책임을 묻겠다는 것인가. 혹 ‘군사적 옵션’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면 더 이상의 대북조치는 이미 실효성이 없음을 확인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고 군사적 옵션도 간단한 결정이 아닐 것이다. 그 성패는 논외로 치더라도 이후의 엄청난 후폭풍을 모두 미국이 감내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ICBM 발사 당일 뉴욕타임스가 분석한 ‘사설’이 눈에 들어온다. 사설은 한마디로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북한과 협상에 나서야 한다면서 북핵 프로그램을 10년 동안 동결시켰던 1994년 ‘제네바 북미협상’의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것만이 유일하고 현실적 방안이며 더 이상 중국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정확한 지적이다. 북한이 미국에 던지는 메시지를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다시 ‘대북제재’ 운운하며 시간을 보낸다면 북핵은 가공할 정도로 더 고도화될 것이다.
모처럼만에 한미동맹을 토대로 대북정책 주도권을 쥐려던 문재인 정부의 입장이 어렵게 됐다. 그러나 과잉반응은 금물이다. 이미 예고됐던 북한의 행동이기 때문이다. 이럴수록 더 냉정하게 북핵 해법에 대한 실효성 있는 접근을 해야 한다. 북미 직접협상의 장을 우리가 만들 수도 있다. 그리고 보다 근본적인 협상이 필요하다면 그 또한 우리가 모멘텀을 제공할 수도 있는 일이다. 현실을 인정하고 진정성 있는 해법을 찾는다면 길은 얼마든지 있다. 굳은 얼굴로 독일로 떠난 문재인 대통령이 크게 흔들리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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