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제 망산에서 바라본 다도해 풍경 ⓒ천지일보(뉴스천지)

아픈 역사라도 기억하고 기록한다

[천지일보=백은영 기자] 상처는 깊을수록 선명하다. 그렇기에 숨기려하면 할수록 더욱 아프고 고통스럽다. 반면 상처를 숨기지 않고 고스란히 드러내면 외려 그 아픔은 아름다움으로 승화된다. ‘슬프도록 아름답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그곳. 국토의 동남단에 위치한 거제도가 바로 그러하다. 우리나라 어느 곳인들 일제강점기의 상처와 동족상잔의 비극 6.25전쟁의 아픔이 남아있지 않은 곳이 있겠는가마는 거제(巨濟)는 유독 그 흔적들이 오늘날까지도 살아있어 역사 교육의 산현장이 되고 있다. ‘크게 베푼다’ ‘크게 구한다’는 이름처럼 거제는 민족의 쓰라린 아픔을 보듬어 아름다움으로 승화시켰다.

10개의 유인도와 63개의 무인도로 이뤄진 거제는 면적 402.03㎢로 우리나라에서 제주도 다음으로 큰 섬이다. 386.74㎞에 달하는 리아스식 해안은 기암괴석으로 되어 있어 절경을 이루며, 눈이 닿는 곳마다 만지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만든다. 그도 그럴 것이 ‘거제도 해안 7백리 길은 가는 곳마다 절경’이라 하질 않던가. 뿐만 아니다. 거제의 최남단 남부면 다포리에 위치한 망산(望山)은 해발 397m의 비교적 낮은 산이지만 이곳에 오르면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수려한 섬들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어 비경이 무엇인지를 실감할 수 있게 만든다. 저마다 가슴 아픈 이야기 하나 둘쯤은 품고 사는 섬들. 그래서 거제의 섬들은 더욱 아름답다.

◆거제도포로수용소유적공원

▲ 거제도포로수용소유적공원 디오라마관에 재현된 폭동현장 ⓒ천지일보(뉴스천지)

6.25전쟁 당시 늘어나는 포로를 수용하기 위해 1951년부터 생겨나기 시작한 거제도 포로수용소. 지금은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으로 불리며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과 조국 분단의 역사를 보여주는 역사 교육의 산 현장으로 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전쟁이라는 참혹한 시간을 인내하며 이겨낸 세대와 그 세대의 희생으로 지켜낸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는 젊은 세대가 마주하는 공간. 간간이 마주치는 어린 학생들과 전쟁을 겪었을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을 마주칠 때마다 이곳이 신구 세대 간 이해와 소통의 통로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 절로 생겨난다.

▲ 거제도포로수용소유적공원의 모습 ⓒ천지일보(뉴스천지)

전쟁 당시 거제도 고현, 수월지구를 중심으로 설치된 포로수용소는 인민군 포로 15만명, 중국군 포로 2만명 등 최대 17만 3000명의 포로를 수용할 정도의 규모였다. 수용소의 규모만큼 그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들도 상당했다. 당시 반공포로와 친공포로 간에 일어난 유혈살상은 비일비재했으며, 1952년 5월 7일에는 수용소 사령관 돗드 준장이 포로에게 납치돼 3일 만에 석방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전쟁 속 또 하나의 전쟁. 거제도 포로수용소는 마치 냉전시대 이념갈등의 축소판과 같은 모습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또 하나의 전쟁을 치렀던 거제도 포로수용소는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과 함께 폐쇄됐다. 1983년 12월 20일 거제도 포로수용소는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99호로 지정, 보호됐으며 현재는 일부 잔존 건물(잔존유적지)과 당시 포로들의 생활상, 막사, 사진, 의복 등 생생한 자료와 기록물을 바탕으로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으로 다시 태어났다.

▲ 거제 망산에 세워진 표지석 ⓒ천지일보(뉴스천지)

◆망산에서 바라본 다도해 비경

“엊그제 겨울 지나 새 봄이 돌아오니
도화행화(桃花杏花)는 석양리(夕陽裏)에 피어 있고,
녹양방초(綠楊芳草)는 세우중(細雨中)에 푸르도다.
칼로 말아 낸가, 붓으로 그려 낸가,
조화신공(造化神功)이 물물(物物)마다 헌사롭다.
수풀에 우는 새는 춘기(春氣)를 못내 겨워
소리마다 교태(嬌態)로다.

(중략)

이바 이웃들아, 산수(山水) 구경 가자스랴.
답청(踏靑)으란 오늘 하고
욕기(浴沂)란 내일(來日)하세.
아침에 채산(採山)하고 나조해 조수(釣水)하세.”

조선시대 최초의 가사(歌辭) 작품인 정극인의 ‘상춘곡(賞春曲)’ 중 일부다. 단종이 왕위를 빼앗기자 벼슬을 버리고 향리인 전라북도 태안에 은거하면서 자연에 몰입한 그가 봄을 완상하며 읊은 노래다.

거제 망산 한 벼랑 끝에 올라 눈앞에 펼쳐진 다도해의 비경을 바라보니 조물주의 위대함에 절로 이 노래가 읊조려진다. 망산 정상(397m) 표지석 뒷면에는 천하일경(天下一景)이라 새겨졌으니 이곳 벼랑 끝에서 바라본 경치에는 무엇이라 새기면 좋을까. 그저 이 눈과 마음에 오롯이 새겨 간직해야 할까보다.

까마득히 먼 태곳적부터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것만 같은 수려한 섬들. 한려해상국립공원은 바다 위에 그린 한 폭의 수묵화요, 신선이 머물다 갔을지도 모를 무릉도원 같았다. 그토록 수려한 아름다움을 조망할 수 있는 곳이지만, 사실 망산은 고려 말 국운이 기울면서 왜적의 침입이 잦아지자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산 정상에 올라 왜구 선박 감시를 위해 망을 보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어쩌면 지금보다 더 아름다웠을 천혜의 비경을 앞에 두고도 그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없었던 이들. 그들의 발길이, 눈길이 이곳을 찾지 않았더라면,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더라면 지금 우리가 그 슬프도록 찬란한 아름다움을 경험할 수 있었을까. 눈에 담겨지는 많은 풍경들을 볼 때마다 먼저 살다간 이들의 숭고한 숨결이 묻어나는 것만 같아 절로 눈시울이 붉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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