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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성지를 가다-경상③] ‘높고 낮음 없다’ 몸소 실천하며 가르친 수운 최제우
박준성 기자  |  pjs@newscj.com
2017.02.15 09:4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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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종교의 자유가 인정돼 수많은 종교가 한 데 어울려 살고 있는 다종교 국가다. 서양이나 중국에서 들어온 외래 종교부터 한반도에서 자생한 종교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각 종단들은 정착하기까지 한반도 곳곳에서 박해와 가난을 이기며 포교를 해왔고, 그 흔적은 곳곳에 남아 종단들의 성지가 됐다. 사실상 한반도는 여러 종교들의 성지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이에 본지는 ‘이웃 종교 알기’의 일환으로 각 종교의 성지들을 찾아가 탐방기를 연재한다.
   
▲ 수운 최제우는 울산 여시바윗골에서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행을 정진하고, 훗날 민족종교 동학(천도교)을 창시하게 된다. 유허지에는 당시 거처를 복원한 초당과 수운 최제우 유허지 기념비가 조성돼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천도교 성지 ‘수운 최제우 유허지’

최제우, 부모 여의고 전국 유랑
10년간 사회 다양한 계층 만나
기존사상으론 구제 어렵다 느껴

울산 여시바윗골서 비서 받고
더 깊은 깨달음 위해 수행 정진
당시 집터에 유허지기념비 세워
울산광역시기념물 제12호 지정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조선 말기 조정은 부패하고 무능하여 극심한 혼란에 빠져들었다. 전국에는 탐관오리가 들끓어 도탄에 빠진 백성들의 분노는 봉기로 이어졌다. 각지에서 일어난 농민 봉기는 점차 확산되고, 밖으로는 서구 열강의 문호개방 압력 등 외세에 대한 위기감이 커져만 갔다. 이러한 혼란스런 정국에 백성들에게 한 걸음 다가가 한 줄기 희망을 비춘 인물이 바로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 1824. 12. 18~1864. 4. 15)다.

동학(천도교)을 창시한 최제우는 동학의 근본 교리로 시천주(천주를 모신다) 사상을 내세웠다. 그는 2명의 여종 중 하나는 양녀로, 다른 하나는 며느리로 삼아 그 가르침을 몸소 실천했다. 시천주 사상은 훗날 사인여천(사람을 하늘처럼 섬기라), 인내천(사람이 곧 하늘이다) 사상으로 발전한다.

◆깨달음 전 천서 받은 여시바윗골

최제우는 하루아침에 도를 깨우치지는 못했다. 득도하기 몇 해 전 특별한 체험을 한 곳이 있다. 그곳이 울산에 자리한 ‘여시바윗골’이다. 여시바윗골 유허지는 천도교의 대표적인 성지다. ‘수운 최제우 유허지’라고도 부른다.

민족 대명절 설이 끝나고 2월 초 최제우 유허지를 찾았다. 한겨울이라서 순례객이나 관광객은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울산의 관광 명소라 깔끔히 관리되고 있었다. 울산 시내버스가 여시바윗골 근처에 정거장을 두고 있어, 찾기에 부담이 되지 않는다. 택시를 타면 유허지 입구까지 쉽게 갈 수 있다. 대중교통 또는 자가용을 이용하는 탐방객은 천도교 홈페이지에서 자세히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일반인들이 종교 성지하면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유적지나 건물을 생각하는 데, 이곳은 유허지다. 유허지(遺虛址)는 역사적 사실이 기록만 남아 있고, 그 장소에 유물이나 문화재가 전혀 없는 곳을 말한다. 그래서 울산시는 최제우 유허지에 당시의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비석을 세워 기념하고 있다. 여기에는 ‘수운 최제우 유허비’가 세워져 있다. 또 한 가지는 옛날 초가집을 복원해 놓은 집 두 채가 있다.

최제우 존영을 모신 큰 채(유허지 초당)에는 동학 관련 서적과 방명록이 있고, 나머지 작은 한 채는 최제우 유허지 관리 및 해설을 담당하는 소장의 거처다. 순례객들은 관리소장님을 통해 유허지의 내력과 조선 말기 동학의 탄생 배경을 자세히 들을 수 있다. 유허지 아래에는 생활공원이 아담하게 조성돼 있어 인근 주민들과 순례객들에게 휴식처가 되고 있다. 울산시는 1997년 10월 9일 울산광역시기념물 제12호로 지정해 관리해 오고 있다.

   
▲ 수운 최제우 대신사의 존영이 모셔져 있는 초당 내부. ⓒ천지일보(뉴스천지)

◆수운 최제우 유허지 내력

최제우 (여시바윗골) 유허지의 역사를 살펴보자. 몰락한 양반의 후예, 재가녀의 자식이라는 사회적 차별을 받았던 최제우는 10세에 어머니를 여의고 17세에 아버지마저 돌아가지자 3년상을 마친 뒤 10여년을 전국 각지를 유랑하며 다양한 경험을 한다.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여러 계층의 사람을 만나고, 민심을 알게 된다. 동양의 정신적 토대가 됐던 유교와 불교 등 기존 문화와 사상으로는 세상을 구제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품게 된다. 서학 즉 천주교를 비롯한 서양 문물이 물밀 듯이 밀려들어오는 모습도 목격하게 된다.

30세가 되던 해 최제우는 오랜 방랑을 끝내고 처가가 있는 울산으로 오게 된다. 그는 울산 인근의 여시바윗골에 초가집을 짓고 정착했다. 1년쯤 지나 어느 날, 재주가 신통하고 비범한 사람(승려라는 설도 있다)으로부터 ‘을묘천서(乙卯天書)’라는 비서(秘書)를 얻어 신비체험을 했다. 더 깊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 구도의 길로 접어든 그는 제선(濟宣)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우매한 백성을 구제한다’는 뜻의 제우로 바꾸게 된다.

이후 최제우는 양산 천성산 내원암 또는 적멸굴 등지에서 수행을 거쳐, 고향인 경주 현곡면 구미산에 자리한 용담정에서 한울님(하느님)으로부터 무극대도(無極大道)를 받는 결정적인 종교 체험을 하게 된다. 최제우는 1860년 4월 5일부터 본격적으로 동학(3대 교조 손병희 선생이 교명을 천도교로 바꿈)을 알리게 된다. 천도교는 이 해를 포덕 원년으로 부르며, 이날을 천일이라고 정해 교단 최고의 기념일로 삼고 있다.

   
▲ 울산광역시기념물 제12호 수운 최제우 유허지 기념비. ⓒ천지일보(뉴스천지)

◆수운 최제우는

조선 말기의 종교사상가로, 민족 고유의 경천(敬天) 사상을 바탕으로 유(儒)·불(佛)·선(仙)과 도참사상, 후천개벽사상 등의 민중 사상을 융합해 동학을 창시했다. 최제우는 득도 이후 포교 활동을 시작했으며, 또한 동학의 이론화 작업에도 착수해 동학의 경전인 ‘동경대전’과 ‘용담유사’를 만들었다. 한문체 형식으로 이루어진 동경대전은 지식인층을 위한 경전이고, 가사체 형식으로 이루어진 용담유사는 글을 모르는 백성들을 위한 것이었다. 최제우는 1864년 3월 10일 사도난정의 누명을 쓰고 3월에 대구장대에서 순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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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기사의견(1)
구상연
2017-02-17 21:18:00
찬성:0 | 반대:0 찬성하기 반대하기 삭제하기 신고하기
아직까지 양반 종의 기질이 남아 있고
아직까지 양반 종의 기질이 남아 있고 물질이 최고인 시대에서 우리에게 귀감이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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