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일 서울 용산구 용문전통시장의 모습. 설날 명절을 얼마 남기지 않았음에도 경기불황과 추운 날씨까지 겹쳐 한산한 모습이다. ⓒ천지일보(뉴스천지)

김영란법 통과 이후 처음 맞는 명절, 직격탄 여파 커
명절 대목특수 느끼기 어려워, 작년 추석보다 더 심해

[천지일보=유영선, 김현진 기자] 좀처럼 풀리지 않고 계속되는 경기침체와 연이은 물가상승으로 인해 소비자들의 경제적 심리 부담이 커지고 있다. 특히 새해 첫 명절 대목을 앞둔 전통재래시장은 좀처럼 웃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이번 설날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통과 이후 처음 맞는 명절인데, 그 여파가 전통재래시장에도 상당했다. 여기에 전국적으로 올겨울 가장 강력한 한파까지 더해 상인들의 경기불황 체감온도는 더욱 싸늘하기만 했다.

◆상인들 “어지러운 시국에 더 힘들다”

서울 용산구 용문전통시장 상인들은 작년 추석 명절과 비교하면 손님들이 눈에 띌 정도로 줄었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명절이 낀 대목 주간임에도 불구하고 23일 이곳을 찾는 손님들이 적어 대다수 상인은 명절특수를 느끼기 어려웠다. 추운 날씨도 한몫했지만 대부분 상인은 어지러운 시국을 가장 큰 요인으로 판단했다. 작년 추석 이맘때면 북적였던 모습을 올해는 볼 수 없다면서 매출도 20~30% 정도는 감소했다고 하소연했다.

건어물 가게를 운영하는 김금자(48, 진도물산)씨는 “어지러운 시국과 추운 날씨까지 겹친 탓에 명절 특수를 누리기 어려웠고, 특히 젊은 주부들은 주차장 공간이 협소해 전통시장보다는 아무래도 대형마트를 이용하는 부분도 작용했다”고 말했다.

식당 등에 납품을 주로 하는 상인은 김영란법에 직격탄을 제대로 맞았다. 생선가게를 운영하는 이윤주(60대)씨는 김영란법 통과 이후 해산물이나 생선 음식을 파는 식당들이 손님이 줄게 되면서 물건이 덜 나가고 있다고 말한다. 이씨는 “명절을 맞아 제수음식 재료라도 직접 사러 오는 손님도 많이 줄었고, 명절 분위기가 전혀 나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과일가게 역시 주문을 받아 택배로 발송하는 주문량이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그나마 시장에 와서 과일을 고르는 손님이 많아 겨우 한숨을 돌리고 있다.

▲ 23일 서울 용문시장에서 생선, 야채를 파는 상인이 손님이 뜸해 동료 상인과 난롯불을 쬐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전통재래시장의 넉넉한 인심을 믿고 이곳을 찾은 손님들은 물건을 사면서 조금만 더 깎아달라고, 혹은 몇 개 더 얹어달라고 말한다. 그러나 상인들은 물가상승 속에서 대형마트보다 더 저렴하게 팔아야 해서 책정한 가격에서 더 깎으면 남는 게 별로 없다고 깎아주지 못해 미안해한다.

그래도 일부는 마지못해 웃으며 500원 혹은 1000원이라도 깎아주는 인심을 보이곤 한다. 또 음식을 파는 상인들은 시식해보라고 권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늘어놓는 등 대형마트에선 쉽게 느낄 수 없는 인간 냄새를 풍긴다.

◆큰 전통재래시장은 북적… 판매는 ‘글쎄’

▲ 설 명절 연휴를 사흘 앞둔 23일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 청과물시장에 설 차례 상에 쓸 음식 재료들을 사러 온 시민들로 붐비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규모가 큰 전통재래시장은 그래도 비교적 명절 분위기를 냈다. 동대문구 제기동에 위치한 경동시장은 재래시장이지만 23일 수많은 인파로 북적였다. 낮에 영하 5도의 추운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수많은 사람이 시장을 찾아 활기를 띠는 분위기였다. 이 같은 분위기와는 달리 상인들은 여전히 경기 불황에 설 대목인데도 장사가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경동시장에서 50여년간 과일가게를 운영하는 김옥숙(69)씨는 “사람은 많아도 가게에 사람이 붙어있나 안 붙어있나 보고 장사가 잘되는지 안 되는지 알 수 있다”며 “지금 사람들이 그냥 있거나 걸어만 다닌다. 보따리도 안 가지고 빈손으로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어 “요즘 사람들이 엄청 영리하다. 마트는 얼마고 여기는 얼마인지 다 안다”며 “시장이 1000~2000원 더 저렴함에도 마트에 갔다 와야 사지 그냥은 안 산다”고 푸념했다. 이마저도 대형마트가 조금 비쌀 경우 대부분 손님이 시장보다는 편리한 마트를 선호한다는 게 게 김씨의 설명이다.

번영종합건어물 상회를 운영하는 이영학(53)씨는 “날씨가 춥고 경기도 좋지 않지만, 장사가 아주 안되지도 않고 보통인 것 같다”며 “설 장사가 이른 감이 있다. 이번 주 중반쯤 되면 많이 바빠질 것 같다”고 말했다.

경동시장에서 견과류를 팔고 있는 서화영(48)씨는 “예전과 비교하면 물건 판매량이 확실히 줄었다”며 “요즘에는 인터넷·마트·홈쇼핑 등을 다 보고 비교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이곳 역시 특히 김영란법 영향이 컸다는 게 상인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서씨는 “단체로 나가는 선물용 세트가 진짜 많이 줄었다”며 “김영란법 때문에 명절 선물 가격이 5만원 넘든 안 넘든 상관없이 상대방이 부담스러워 한다”고 설명했다.

▲ 23일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에 설 차례 상에 쓸 음식 재료들을 사러 온 시민들로 붐비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서울 강북구 수유재래시장 역시 분위기는 다소 북적였다. 다른 전통시장과 마찬가지로 지난 추석명절과는 덜하다는 게 상인들의 한목소리다. 어묵·떡·고기·만두 등을 판매하는 김순용(60, 수유장터)씨는 자신의 가게는 김영란법과는 직접적인 영향이 없지만, 다른 상인들의 입장을 대변해 오고 가는 정이 없어진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김씨는 “나라가 시끄러운 데다 경기까지 불황인데 오고 가며 나누는 정이 있어야 명절인데, 김영란법 통과로 인해 선물조차 편하게 주고받지를 못하니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 23일 오후 서울 강북구 수유전통재래시장의 모습. 다소 북적이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 23일 오후 서울 강북구 수유재래시장에서 어묵, 떡, 고기, 만두 등을 판매하는 수유장터 김순용(왼쪽)씨가 손님에게 어묵을 시식해보라며 건네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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