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예술 관련 단체 농성장이 23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 설치돼 있다. 추위를 막고자 텐트 위에 비닐을 씌웠다. ⓒ천지일보(뉴스천지)

광화문 캠핑촌서 함께 설 보내
“비좁은 천막 속 침낭·담요로 버텨”
노숙 농성 이유 주로 복직·법 제정 등
“블랙리스트는 문화인 재갈”

[천지일보=이지수, 김빛이나 기자] 올해로 8년째다. 가족과 함께 명절을 보내지 못한 시간도 그만큼이다. 이제는 일상이 됐다. 2009년 벌어진 쌍용자동차 해고 사태. 그로부터 8년의 힘겨운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김득중(47, 남) 금속노조 쌍용자동차 지부장은 올해 설 명절에도 귀향하지 않고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노숙 농성을 이어가기로 했다.

지난 20일 김 지부장은 명절에도 거리 농성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묻자 “절박하고 절신한 사항에 놓여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른바 쌍용차 해고 사태는 지난 2009년 사측이 직원 2646명을 감축하는 대규모 구조조정 과정에서 벌어졌다. 이에 반발한 노조원들이 평택공장에서 77일 동안 옥쇄파업을 벌였다.

경찰은 파업 진압 과정에서 장비 파손 등의 이유로 노동자들에게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경찰이 청구한 손해배상 금액은 11억 6000만원. 무거운 손배가압류에 시달리던 노동자와 가족 28명이 지난 8년간 목숨을 잃었다. 노동자들이 손배가압류로 고통 받고 있다는 것이 그가 설 명절에도 농성장을 지키고 있는 이유다.

김 지부장은 “손해배상 금액은 7~8년 지연이자와 일일이자 62만원까지 매일 붙어 15억원이 넘어가고 있다”며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시민들에게 손배가압류의 적폐를 알리고 2월 국회에서 법(노란봉투법)으로 제정해달라는 입법청원 요구 서명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명절에 귀향하지 못하는 그의 가족들은 명절에 못간 것이 한 두 해가 아니라 이젠 그저 믿고 지켜봐주는 입장이라고 했다.

떡국은 먹어야 하지 않겠냐는 기자의 말에 그는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가족들을 포함한 캠핑촌 사람들과 합동 차례 후 떡국을 먹을 것 같다”고 말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항의하며 문화예술인들도 설 명절에 천막농성을 이어간다. 송경동(50, 남)시인은 “블랙리스트는 표현행위를 통해 살아가는 문화예술인들에게 재갈을 물리는 것과 같다”며 “이는 헌법을 유린하는 것으로 민주공화국 기본 자체를 뒤흔드는 행위”라고 개탄했다. 천막 안에서 그가 의지하는 것은 담요와 침낭 그리고 핫팩이다.

추운 겨울 쉽지 않은 일이지만 대한민국 사회 민주주의를 바로 잡는 일이자 더 나은 세상이 올 거라는 희망으로 견디고 있다고.

▲ 전국 220여개 장애인단체 연합인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폐지공동행동이 21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역사 지하에서 장애인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한 서명운동을 진행하는 가운데 시민들이 서명에 동참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전남 장흥이 고향인 송 시인은 “부모님께 이번 설에는 고향에 갈 수가 없다고 전화 드렸더니 왜 고생을 하냐. 추운데 몸 조심 하라고 걱정하셨다”며 “평소 같았으면 부모님을 뵈러 고향에 갔을 텐데 지금의 시국이 일상을 모두 바꿔놓았다”고 토로했다. 그는 광화문 캠핑촌에서 가족들과 설 명절을 보낼 계획이다.

서울 영등포구 국회 인근의 한 천막에서 만난 김동애(71, 여) 대학강사교원지위회복과대학교육정상화투쟁본부 본부장은 10년간 천막농성을 이어오고 있다. 올해 설에도 그는 농성장을 있을 예정이다.

김 본부장은 “설 오전에 지방에 내려가 차례만 지내고 다시 서울로 올라와 농성장을 지키려고 한다”며 “장기간 농성장을 비우게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농성장을 비운 사이 누군가 텐트에 들어와 전기용품의 온도를 최고로 올려두고 나가는 등 방화의 위험이 있고 농성장 앞에 설치한 현수막을 찢고 가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는 “다른 부탁할 만한 사람이 있다면 맡겼겠지만 명절에 누가 이곳에 있고 싶겠느냐”며 허탈한 웃음을 보였다. 김 본부장은 남편인 김영곤(69) 전국대학강사노동조합 위원장과 함께 농성장에서 설 명절을 보내기로 했다. 이들이 머무는 텐트는 두 사람이 누우면 꽉 찰 정도로 비좁았다. 텐트바닥에는 담요 등이 깔려있었고 정수기와 접이식 책상도 있었다.

책상 위에는 책과 종이 문서들이 가득했다. 김 본부장은 “내년 1월 1일 시행 예정인 ‘고등교육법(강사법)’이 대량 해고 우려가 있는 부분을 수정하는 것을 전제로 더 이상 (시행이) 밀려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강사법에 따르면 강사에게 법적인 교원 지위를 부여하고 임용기간을 1년 이상으로 하도록 했지만 임용기간이 끝나면 당연 퇴직하도록 규정했다.

지난 2011년 국회를 통과한 강사법은 지난 2012년에 시행 예정이었으나 대량 해고 발생 우려와 강사 처우 개선 미비 등의 문제로 법 시행이 계속 유예됐다.

장애인 단체도 명절에 거리농성을 이어간다. 이들은 전국 220여개 장애인단체 연합인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폐지공동행동이다. 서울 종로구 광화문역사 지하에서 만난 최고동(57, 남) 장애인자립생활센터 고양시지부 지부장은 농성을 벌인 지 지난 21일로 1613일째라고 했다.

매일 지역별 센터에서 순번을 돌아가며 농성장을 지키고 있다는 최 지부장은 이번 설에도 변함없이 농성을 이어간다.

그는 “요즘 날씨가 많이 추워서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지만 장애인등급제와 부양의무제의 폐지를 위해 사명감을 갖고 한다”며 “명절이라도 (농성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 지부장은 “부양의무제를 폐지하면 장애인뿐 아니라 노인분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간다”며 “아들·딸이 있다는 이유로 어렵게 산다면 (부양의무제는) 있으나마나한 법”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갈수록 노인 비율이 늘어날 텐데 반드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자동차 모형의 금속노조 쌍용차 노조 농성장이 23일 서울 광화문 광장 캠핑촌에 설치돼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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