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흥선대원군 별서 ⓒ천지일보(뉴스천지)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아직은 가을 옷이 좋은 걸까. 찬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듯 단풍색은 유난히 더 짙었다. 집 옆에 있는 한그루의 감나무. 몇 개 안 남은 감은 탐스럽기까지 하다. 이 가을이 지나가는 걸 아쉬워하는 듯 감은 가지를 꼭 붙들고 있었다.

가을의 끝과 겨울의 문턱, 그 사이에 서 있는 ‘석파정(石坡亭)’은 영화에 나올 듯한 비경을 간직하고 있었다. 과연 ‘흥선대원군의 별서답다’라는 말이 툭 튀어나올 정도였다.

◆‘계략’ 세워 인수한 흥선대원군 별서

인왕산 북동쪽의 바위산 기슭에 자리한 흥선대원군 별서(興宣大院君 別墅). 본래 조선 철종과 고종 때의 중신(重臣) 김흥근(金興根, 1796∼1870)이 조영해 별장으로 사용한 근대 유적이다. 김흥근이 언제 이곳(당시 삼계동정사로 통칭)을 조영했는지에 관한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다. 다만 일부 문헌을 통해 그 시기를 대략 1837~1858년 사이로 추정해 볼 수 있다. 

▲ 하늘에 걸려 있는 듯한 감나무 감. 감은 가을이 좋은 지 가지를 꼭 붙들고 있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후일 고종이 즉위하고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 1820∼1898)의 섭정이 시작된 1863년을 전후해 대원군이 이를 인수, 별서로 사용하게 된다.

사실 이곳은 흥선대원군이 계략을 사용해 인수한 곳이다. 조선 후기 학자 황현(黃玹)이 쓴 ‘매천야록(梅泉野錄)’에 따르면, 흥선대원군이 김흥근에게 별서의 매매를 종용했으나 거절당한다. 이에 계략을 세워 아들 고종을 이곳에 행차해 묵게 했고, 임금이 묵고 가신 곳에 신하가 살수 없다하여 김흥근이 이곳을 포기한다. 이에 운현궁 소유가 됐다고 한다.

별서 인수 후 대원군은 사랑채에서 난을 치는 등 이곳에서 예술적 활동을 했다. 고종의 행전이나 행궁, 즉 임시거처로도 사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본래 7채의 건물로 구성돼 있던 흥선대원군 별서. 오늘날 안채·사랑채·별채와 같은 살림채와 석파정 등 4개 동이 남아 있다. 

▲ 흥선대원군 별서 ⓒ천지일보(뉴스천지)

살림채는 보존차원에서 문을 잠궈 뒀다. 담장 너머로 ‘힐끗’ 안을 들여다볼 뿐이다. 그럼에도 살림채가 지닌 고즈넉함은 온 몸을 감쌌다. 

사랑채 서쪽 뜰에는 노송 한 그루가 우뚝 서있었다. 몇백년이나 된 걸까. 비·바람을 견디며 인내로 버텨왔을 선비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별서와 함께 동고동락했을 노송. 이곳의 역사를 모두 기억하고 있겠지. 현재 노송은 서울특별시 지정보호수 제60호다.  

▲ 흥선대원군 별서 기와에 쌓인 낙엽들 ⓒ천지일보(뉴스천지)

◆삼계동 각자

흥선대원군 별서의 사랑채 서측 후면에는 암반이 있다. 이 암반에는 ‘삼계동’이라는 각자(刻字)가 있다. 김흥근이 별서를 지어 경영할 당시 이곳이 삼계동정사(三溪洞精舍), 삼계정, 삼계동 산정 등으로 불렸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소치 허련(小痴 許鍊)이 집필한 ‘소치실록(小癡實錄)’과 양의영의 ‘유북한기(遊北漢記)’ 등 일부 문헌에서도 드러나는데, 부근에 세 갈래의 내가 합쳐져 흘러 삼계동이라 불렀다는 기록도 있다. 이곳을 소유한 흥선대원군은 별서의 앞산이 모두 바위이므로 자신의 호를 ‘석파’로 바꾸고, 정자의 이름도 석파정으로 바꿨다고 한다.

▲ 단풍 사이에 감춰져 있던 석파정. ⓒ천지일보(뉴스천지)

◆韓•中 건축양식의 조화 ‘석파정’

빼어난 산수와 계곡을 따라 걷다보면, 조그만 정자가 나무 사이로 고개를 내민다. ‘석파정’이다. 이 정자는 한국의 전통 건축양식과 중국(당시 청나라)의 건축양식이 적절히 조화돼 있다.

청나라풍의 문살 문양과 평석교(平石橋)의 형태는 당시 이국 취향의 정자가 줬던 독특한 아름다움을 유추해 볼 수 있다. 바닥을 나무로 마감하는 한국의 전통정자와는 달리 화강암으로 바닥을 마감한 점은 건축적으로도 매우 특이하다. 

그 아름다움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사계를 품은 석파정의 비경,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그 매력을 알기에 사람들의 발길이 좀처럼 끊이지 않는 듯하다. 흥선대원군도 그래서 이곳을 사랑했겠지. 석파정을 거닐며 미소지었을 흥선대원군의 모습이 ‘아른아른’ 눈앞에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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