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치석 조선왕조문화예술교육연구소 소장

조선왕조에 있어서 농상(農桑, 농사 짖고 누에치는 일)은 의식(衣食)과 왕정(王政)의 근본이다. 성종 대에 유교적 의례인 국조오례의를 정비한 후 성종 8년(1477) 조선 왕비가 처음으로 친잠례를 거행했으며, 이후 300여년 만에 다시 행해진 친잠례에 대해 영조는 특별한 감화를 가지고 단순히 친잠례에 그치지 않았다. 더 나아가 왕과 왕비는 장종수견례를 처음으로 거행했다. 왕비는 수고한 잠모에게 베를 하사하고, 왕은 백성들에게 어제 반교문을 내려 행사의 의미를 널리 알리고 조정의 신하와 지방관에게 어필로 봉한 누에고치를 내려 감복하게 하였다. 친경 친잠례를 기념해 특별과거시험과 경범죄인을 석방했다.

◆74세 영조, 23세 젊은 왕비의 궁궐 내 정체성 확보

얼마나 더 살지 모를 74세인 영조는 젊은 왕비의 위엄과 정체성을 확보하고 궁궐 여성들의 화합의 장을 마련하게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영조는 기존의 선잠단에 제사를 올리는 것은 관원을 보내어 올리게 하고, 종묘와 문묘에서 올리는 작헌례의 의식을 왕비가 친히 행하게 해 왕비 주관의 의례의 격식을 높였다. 이러한 유교적 의례 절차의 중심에 왕비를 세움으로써, 새로운 계비 젊은 정순왕후의 위상을 한층 올려놓았다.

영조는 친히 친잠례 행사장에 왕림해 악차에서 하는 왕비가 주관하는 친잠례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친잠례가 끝난 뒤에는 신하들의 하례를 받는 조하례(朝賀禮)와 왕과 왕비가 함께 혜빈, 세손, 세손빈, 내외명부들의 하례를 받는 조현례(朝見禮)도 거행하게 해 화합의 장을 마련했다. 친잠례를 통해 왕비를 중심으로 사도세자의 부인 혜빈과 왕세손과 세손빈의 위계질서 속에서 왕비의 정체성을 확고히 세우는데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화순옹주를 비롯한 여러 옹주들과 내외명부들이 함께 행사에 참여함으로써 궁궐 내 여성들도 왕과 왕비를 뵐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화합의 장이 되게 했다.

▲ 2014년 제9회 친잠례재현행사, 주관·주최: 한국의생활문화원 친잠례보존회, 후원: 서울시·문화재청·예올, 예술총감독: 오이순, 기획: 황치석 (제공: 황치석 조선왕조문화예술교육연구소 소장)

◆친잠례 명분 위해 특별과거시험과 경범죄수 석방

영조 43년(1767) 3월 친잠례 행사 이전에 이미 영조는 2월 26일에 친경례를 거행했다. 영조는 친잠례의 명분을 세우기 위해 왕의 친경례와 왕비의 친잠례를 동시에 시행한 것은 국가의 경사스러운 일로 여겨, 3월 3일 제술시험을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 궁궐 안에서 보는 과거시험(경과정시, 慶科庭試)을 경잠과(耕蠶科)라고 이름을 붙이고 문과와 무과를 함께 보게 했다. 경범죄수와 지방의 일 년 이하의 죄수는 일체 석방하고, 양전의 중 하에 해당해 추고 중인 자는 모두 면제해 주도록 했다. 또한 술을 빚어 마신 죄인은 강변에서 곤장 100대만 처벌하도록 했다. 이는 당시 음주를 엄격히 처벌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백성들이 이 행사를 기억하고, 왕과 왕비의 성은을 체감할 수 있도록 했다.

◆세손 이산, 왕·왕비의 행사에 참여시켜

친잠례는 왕비주관의 행사지만, 영조는 친잠례 행사 당일 새벽에 종묘에 참배해 선왕들께 고하는 의식을 행해 행사의 신성함을 더했다. 또한 영조는 세손이 어린 시절부터 직접 책을 읽어 주는 등 남다른 세손 교육에 온 정성을 다했다. 할아버지 영조는 세손을 왕의 친경례에 참석하게 한 것은 물론이고, 왕비주관의 여성 행사인 친잠례에도 참석하게 했다. 팔순을 바라보는 할아버지 영조는 이어서 왕이 될 손자 이산이 백성을 생각하는 지극한 마음을 갖게 되고, 국가 의례와 의식 등 문화적인 기틀을 세워 후대에 지속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궁에서 기른 누에고치 봉지에 왕의 어필을 내려

궁에서 기른 누에 종자를 봉지에 담아 왕의 친필(어필)로 봉함에 써서 영의정을 비롯한 백관과 지방 유수(留守, 임금 대신 수도 이외의 요긴한 곳을 다스리던 곳으로, 개성·강화·광주· 수원·춘천에 둠, 정 종 2품), 8도 관찰사에게 내렸다. 조정의 신하들과 지방관들은 임금의 은사에 감복해 감사의 글을 지어 올렸으며, 영조는 백성들이 자신을 지극히 사랑하는 군주로 생각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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