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치석 조선왕조문화예술교육연구소 소장

친잠례에 대한 기록은 이미 성종 대에 친잠례를 행하기 위해 왕비 친잠복식과 의례 음악, 의례 절차에 대한 기록을 기반으로 정비됐다고 볼 수 있다. 친잠례가 조선 건국 후 80년이 지난 성종 8년(1477)에 처음 실시된 데에는 국조오례의가 완성된 후 3년이 지난 시점에서 중궁전 문화가 정비되고 실행됐다는데 그 의미가 크다고 볼 수 있다. 친잠의궤는 영조 43년 친잠례를 행하기 위해 성종 대의 친잠례에 대한 기록을 참조하여 의례를 정비하고 친잠례를 행하고 친잠의궤를 책으로 편찬한 것이다.

◆친잠례 만년의 역사, 황제 정비(누조)의 혜택으로 만년동안 백성이 누에치고 옷을 입으니

잠업의 기원은 중국 3왕 5제 시대인 BC2560년 경 황제의 정비 서릉씨가 처음으로 누에치는 본을 보였으며, 황제의 정비를 신격화해 누에의 신(서릉씨, 선잠씨, 뉘조 등으로 부름)으로 제사를 모셔오고 있다.

단군조선시대 BC2333경에는 단제(檀帝)의 비 하백녀가 누에치기를 권장했으며, 뽕나무 식재를 권장했다고 한다. 백제 근초고왕 AD 199년경에는 양잠과 직조법을 일본에 전파했으며, 신라시대부터 친잠례의 의식이 있었다고 한다. 고려 인종 5년 1127년에는 이두로 된 ‘잠경주해’가 보급됐다.

조선시대에는 정종 2년 3월에 최초의 선잠제가 행해졌고, 태종 11년에 후비친잠법(后妃親蠶法)을 제정해 왕후로 하여금 궁중에서 누에를 치게 한 기록이 있으며, 궁에 뽕나무를 심고, 공상잠실법이 정해지고 잠실도회 책이 출간됐으며, 또한 선잠단의 설치 규정을 정했다.

▲ 정해친잠비 탁본(164.5x59㎝). 영조는 77세에 의식이 풍족한 세상이 될 것이라 기약하며 어필로 세기게 함. 장서각 소장 (제공: 황치석 소장)

세종 시대에도 경복궁과 창덕궁에 잠실이 있어 왕이 누에를 반사하고, 세종과 세조는 선잠제에 쓸 향과 축문을 친히 전하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왕비가 친잠례를 행한 것은 성종 8년, 24년, 중종 8년, 24년, 선조 5년, 광해군 12년, 영조 43년, 순종 대의 어친잠실에서의 친잠례로 이어졌다.

정조의 비 효의왕후도 친잠을 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고종 명성황후도 매년 2월 북원에서 친잠했다는 기록(순종 실록)이 있어 왕비 친잠의 예를 매우 소중히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도 조선총독부가 1911년 창덕궁 후원의 주합루 좌측 서향각을 양잠소로 만들고 친잠례를 거행했으며, 1923년에는 서향각 어친잠실에서 순종과 순정효황후의 수견식이 있었다.

합루에서도1925년 6월 17일, 1929년 6월 15일, 1939년 6월 26일 친잠례가 거행됐다는 기록이 있다. 순종의 비 순정효황후는 순종 서거(1926년) 후 국장을 치른 후 다시 친잠하는 모습이 동아일보에 사진과 함께 보도됐다. 일제강점기에는 비단을 공출해 일본으로 보내기도 했으며, 전국에 잠령비를 세워 누에의 신을 신격화하고 양잠을 권장했다.

1930년 순종 순원효황후가 어친잠실에서 친잠례를 행한 후 촬영한 사진 속에는 일본 복식을 한 여성들도 있다. 그 후 맥이 끊어졌다 현대에 와서 대한민국의 육영수 여사가 1973년 새마을 양잠대회에 임석하여 친잠하고, 새마을권잠실을 짓도록 하사했으며 ‘새마을 권잠실’ 휘호로 현판을 만들었다.

육영수 여사 서거 후 영부인 역할을 대행한 박근혜 대통령이 1974년 현판식에 참여하게 된다. 1881년에는 이순자 여사가 전국잠업시범대회에 임석해 친잠을 했으며, 2006년에는 권양숙 여사가 세계누에산물전 개막식에서 친잠을 했다. 경복궁에서의 친잠례 재현행사는 2000년부터 민간단체인 (사)한국의생활문화원 친잠례보존회(오이순 원장)에서 시작해2014년까지 제9회 친잠례재현행사를 행했다.

2003년에는 경복궁 자경전에서 문화재청이 주최가 되어 1회 실시한 바 있다. 2001년에는 이휘호 여사가 축사를 보내기도 하셨다. 필자는 2007년, 2014년 친잠례재현행사 추진위원장으로서 친잠례를 거행했다.

▲ 친잠의궤 중 친잠단, 채상단(왕비와 혜경궁 빈궁 채상단) 그림 (제공: 황치석 소장)

◆경복궁에 친잠단, 채상대 설치와 정해 친잠비 복원해야

친잠단 설치와 영조 43년 1767년에 영조는 친잠례를 행하고 3년 뒤인 영조 46년 1770년에 영조는 손수 어필로 쓴 ‘御筆 丁亥親蠶 七七旬書 어필 정해친잠 77순서’로 쓴 친잠비를 경복궁 강녕전 동편에 설치했다. 경복궁 전도와 경복궁 옛 지도에 채상대과 정해친잠비각이 그려져 있다.

중국은 친잠단을 2012년에 복원했다고 한다. 친잠의궤를 바탕으로 경복궁 내에 친잠단과 채상대와 정해친잠비를 복원해 세계기록문화유산인 친잠의궤의 지속적인 재현을 통해 문화강국으로서의 궁중전의 여성의례문화를 보존 계승하고 한국의 양잠산업의 부흥과 농가소득 증대에 기여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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