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보자宮] ⑥조선왕조 정신 깃든 종묘… ‘효’를 배우다
[가보자宮] ⑥조선왕조 정신 깃든 종묘… ‘효’를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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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묘 정전의 길게 펼쳐진 월대는 ‘안정’을, 무한 반복되는 듯한 기둥 배열은 ‘왕위의 영속’을, 수평으로 하늘 끝까지 펼쳐진 듯한 지붕은 ‘무한’을 상징한다. ⓒ천지일보(뉴스천지)DB

역대 임금·왕비 위패 모시던 사당 
도읍지에 필수적으로 세우던 곳
임진왜란 때 소실… 광해군 중건
1995년 유네스코세계유산 등재
반복된 기둥 왕위의 영속성 상징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엄숙하고 조용했다. 장식과 기교를 뺀 전각의 선은 엄숙함을 더했다. ‘효(孝)’를 중시했던 조선왕조. 살아계실 때도 효를 다했지만, 돌아가신 후에도 제사로서 효를 계속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종묘(宗廟)’는 그 이면을 엿볼 수 있는 곳이었다.

종묘는 조선시대 역대 임금과 왕비의 위패를 모시던 왕실의 사당이다. 유교 예법에 따르면 국가의 도읍지에는 반드시 세 곳의 공간을 마련해야 했다. 왕이 머무는 궁궐,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종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사직단이다

종묘는 조선의 태조가 한양을 새 나라의 도읍으로 정하고 나서 바로 지었으며, 경복궁 보다 먼저 완공했다. 종묘는 경복궁의 왼쪽에 위치해 있다. 이는 ‘궁궐의 왼쪽엔 종묘를, 오른쪽엔 사직단을 두어야 한다’는 주례(周禮, 유교 경전)에 따라지어진 거다.

종묘도 임진왜란(1592년)으로 소실된다. 그러다 1608년 광해군 때 중건됐다. 이후 신주 수가 늘어나면서 수차례 건물규모를 늘려 지금의 모습이 됐다. 종묘는1995년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유교의 핵심 원리인 ‘충’과 ‘효’가 담긴 종묘 안을 들여다보자.

▲ 정문인 외대문(外大門)에 들어서면 세 개로 나뉜 길 ‘삼로(三路)’가 뻗어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외대문, 삼로

정문인 외대문(外大門)에 들어서면 세 개로 나뉜 길 ‘삼로(三路)’가 뻗어 있다. 특히 가운데 길은 양쪽 길보다 조금 더 높다. 이 길은 조상의 혼령이 다니는 ‘신로(神路)’다. 신로의 오른쪽은 왕이 다니는 ‘어로’, 왼쪽은 세자가 다니는 ‘세자로’다. 절대 권력자인 왕도 신 앞에서는 제사를 맡는 제관인 것이다.

◆몸·마음 씻으며 제례 준비 ‘재궁’

외대문와 정전 사이에는 재궁이 있다. 제사 하루 전 왕과 세자는 재궁에 머물며 ‘목욕재계’를 했다. 뜰 중심으로 북쪽에는 임금이 머물던 ‘어재실’, 동쪽에는 세자가 머물던 ‘세자재실(世子齋室)’이 있다. 서쪽에는 임금이 목욕을 하던 ‘어목욕청(御沐浴廳)’이 있다.

임금은 제사를 올리기 3일 전부터 매일 목욕재계를 하고, 하루 전에 이곳에 와서 머물렀다.‘목욕’은 몸과 머리를 씻는 것을 의미한다.

‘재계’는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이다. 종교적으로도 신 앞에 나아갈 때 반드시 몸과 마음을 깨끗이 씻어야 했다. 이 같은 이치가 선조들의 옛 법에도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제사 당일, 임금과 세자는 어로와 세자로를 따라 정전(正殿)의 동문(東門)으로 들어가 제례를 올렸다.

▲ 신주 모습. ⓒ천지일보(뉴스천지)

◆임진왜란 당시, 신주부터 챙겨

“얼른 신주부터 모셔라!”

전란 시 조상의 혼령이 깃든 신주를 두고 가는 것은 불효였다. 이에 선조(제14대왕)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종묘의 신주를 가장 먼저 챙겼다. 그리고 종묘를 중건한 후 다시 정전에 모셨다.

신주는 언제 종묘에 모셔질까. 왕과 왕비가 승하하면 우선 ‘삼년상(三年喪)’은 궁궐에서 지내는 데 이후 종묘의 정전에 모셔진다. 현재 정전의 신실 19칸에는 태조를 비롯한 왕과 왕비의 신위 49위가 모셔졌다. 왕위에서 쫓겨난 연산군과 광해군의 신위는 종묘에 모시지 않았다.

정전 건축에도 선조의 정신이 깃들어있다. 정전의 길게 펼쳐진 월대는 ‘안정’을, 건물 전면에 무한하게 반복되는 듯한 기둥 배열은 ‘왕위의 영속’을, 수평으로 하늘 끝까지 펼쳐진 듯한 지붕은 ‘무한’을 상징한다. 그 모습은 숭고하고 고전적인건축미의 극치를 이룬다. 현재 정전은 국보 227호로 지정돼 있다.

◆태조의 4대조 모신 ‘영녕전’

“신주를 어찌 묻을 수 있겠소.”

1419년(세종1년), 제2대 왕인 정종이 승하하고 신위를 종묘에 모실 때가 됐다. 이때 종묘에 모셔져 있는 태조의 4대조와 태조의 신위, 정종의 신위를 어떻게 모셔야하는지를 두고 거론되게 된다.

당시 “신주를 묻어 버린다는 것은 정말 차마할 수없는 일이며, 또한 간직할 만한 곳도 없다”고 의견이 모아졌다. 이와 관련, 중국송(宋)나라에서 따로 별묘(別廟)인 사조전(四祖殿)을 세워 4조(四祖)를 모시는 예를 채택하는데, 정전 서쪽 바깥에 별묘를 세워 신위를 옮겨 모시는 것으로 결정된다.

이에 영녕전이 세워진다. 영녕전은 ‘왕실의 조상과 자손이 함께 길이 평안하라’는 뜻이다. 이곳에는 태조이성계의 4대조를 비롯해, 왕과 왕비, 추존된 왕과 왕비 등 34위가 모셔졌다.

▲ 안내판에 종묘제례에 대해 적혀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노래·춤 일체화된 ‘종묘제례’

종묘제례는 조선시대 역대 왕과 왕비,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시는 종묘의 제향예절이다. 정전에서 1년에 5번, 영녕전에서는 1년에 2번 열렸다.

왕이 직접 거행한 종묘제례에는 왕세자와 문무백관이 참여했으며, 음악과 노래·춤이 일체화환 종묘제례악에 맞춰 진행했다. 종묘제례는 유교 예법에 맞춰 신을 맞는 절차, 신을 즐겁게 하는 절차, 신을 보내드리는 절차로 구분해 진행된다.

현재 매년양력 5월 첫째 일요일에 올리고 있다.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은 2001년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이처럼 종묘와 종묘제례는 단순함 속에서 삶과 죽음의 깊은 의미를, 엄숙함 속에서 왕조의 신성한 권위가 담겨 있었다.

아울러 기독교 성경 속에도 제사가 나온다. 구약에서는 눈에 보이는 것으로 제사를 지냈지만, 신약에서는 제사가 예배로 바뀐다.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드리는 제사. 종묘제례를 통해 신에게 올려드리는 제사의 참 의미를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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