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재구 한중미디어연구소 이사장. ⓒ천지일보(뉴스천지)

국립현충원서 발품 팔며 묘비에 남겨진 詩 모아 책으로 엮어
눈물 흘리며 비석 씻는 여인의 모습 보고 감동… 기록 시작
호국영령들 위대하고 숭고한 삶, 후손으로서 기리도록 해야

[천지일보=임문식 기자] “‘한국인으로서 긍지를 가지고 살거라’. 묘비 앞에 이런 글들이 있어요. 평상시 독립운동을 할 때 남겼던 말이나, 독립운동 관련 업적을 자세히 기록한 내용들입니다. 애국지사 한분 한분에게 남겨진 글 몇 개만 읽다 보면 누구라도 숙연해질 수밖에 없어요.”

그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순국선열의 묘에 남겨진 글들을 일일이 모아 책으로 엮어낸 이유를 설명하면서다. 조재구 한중미디어연구소 이사장. 그는 시인도, 작가도 아니다. 글 쓰는 일과 친하지도 않다. 그런 그가 책을 냈다. ‘님은 조국의 별이 되어’. 서울과 대전에 있는 국립현충원을 돌아다니며 반평생 모은 글을 책으로 엮었다. 책엔 그의 눈물과 땀만 배여 있는 게 아니다. 독립운동이나 6.25전쟁, 월남전에서 쓰러져간 순국선열의 피 비린내 나는 희생과 그들 뒤에 남겨진 이들의 고통과 슬픔이 한 데 어우러져 있다. 대부분 시나 경구 같은 짧은 글들이다. 조 이사장은 31년 동안 860편을 채록했고, 이 가운데 165편을 골라 책에 담았다.

“피를 토하는 가족의 아픔입니다. 일반 시는 일시적으로 감동을 주지만, 이분들은 자식을 잃은 부모, 전우를 잃은 군인, 남편을 잃은 아내, 또는 아버지를 잃은 자식으로서 죽을 때까지 그 한을 잊지 못합니다.”

글을 남긴 이는 대부분 고인의 유족이거나 지인들이다. 이들은 묘비 앞에 놓은 기념패 같은 것에 사진과 함께 글을 끼워 넣는다. 널찍한 돌판에 시를 새겨 묘비 앞바닥에 놓기도 한다. 시의 형식은 대체로 투박하지만, 고인에게 전하는 진솔한 마음을 담았다. 물론 모든 이들이 글을 남기는 것은 아니다. 서울과 대전 현충원에 있는 호국영령 29만위 가운데 글이 남겨진 묘는 1%도 채 되지 않는다. 그래도 글 유무를 확인하기 위해선 일일이 발품을 팔아야 했다.

경남 함안 태생인 조 이사장과 애국지사와의 인연은 6.25전쟁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의 작은 아버지가 6.25때 학도병으로 참전했다가 전사한 것이다. 6.25전쟁 발발 5개월 후인 1950년 11월 11일의 일이었다. 당시 경기고등학교를 다닐 정도로 수재였던 한 청춘의 죽음이었다. 할아버지에겐 감당할 수 없는 충격이었다. 작은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둘째 아들이었다. 총 4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둘째를 포함해 총 2명이 전쟁 통에 세상을 떠났다.

그후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침울해지곤 했다. 전사자 유족 연금이 나오는 날이었다. 그럴 때면 온 가족이 일주일 정도는 싸늘한 분위기에서 보내야 했다.

“할아버지는 늘 이렇게 말하곤 했어요. ‘자식 죽어 받은 돈을 어떻게 쓰나’. 이 말이 무슨 의미였는지 그때는 잘 몰랐어요.” 할아버지의 하소연을 폐부 깊숙이 느끼기까지는 수십 년의 세월이 흘러야 했다.

“당시 군사정권 시절이었는데, 오후 무렵 하기식이 엄숙하게 진행되고 있었죠. 멈춰 서서 태극기를 향해 경례했습니다.” 1985년 여름, 조 이사장은 생전 처음으로 서울 동작동 현충원에 방문했을 때의 광경을 잊지 못한다. 그는 할아버지가 세상을 뜬 이후 처음으로 현충원엘 갔다. 작은 아버지에게 인사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작은 아버지의 얼굴조차 모른 상태였다. 그가 태어나기 전에 사진 한 장 남기지 않고 전사했기 때문이다. 조 이사장이 작은 아버지의 묘를 찾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조 이사장이 묘를 찾아가던 중 30대로 보이는 한 젊은 여인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의 옆엔 4~5살로 보이는 딸이 있었다. 여인은 현충원 내 개울에서 물을 떠와 비석을 씻겼다. 그 모습이 의아했다. 대리석으로 된 묘비는 원래 깨끗해서 씻길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여인은 물을 부었다. 얼굴엔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여인이 가고 난 뒤에도 그의 마음은 한동안 울렁거렸다.

다른 묘비로 고개를 돌렸다. 유족들이 남긴 글들이 보였다. 그는 기록으로 남겨야겠다고 결심했다. 그 이후로 일주일에 한 번씩 현충원을 찾아 채록 작업을 시작했다. 대전 현충원이 생긴 뒤에는 대전에도 들러 채록 작업을 이어갔다.

조 이사장이 묘에 남겨진 글을 책으로 엮은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지난 1992년 발간한 책엔 서울 동작동 현충원 채록분만이 담겼지만, 이번 책에선 대전 현충원 채록분이 추가됐다. 그는 “조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 바친 분들의 고귀한 희생의 삶을 국민이 오래 기억하도록 하기 위해 감동적인 글을 엄선하고 엄선해 추렸다”고 설명했다.

순국선열 중에서도 조 이사장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독립지사의 희생이다. 독립운동을 했던 애국지사가 없었더라면 대한민국이란 국호 자체를 쓰지 못했을 것이란 얘기. 조 이사장의 설명에 따르면 서울 현충원에 291위, 대전 현충원에 3279위의 독립지사 영령이 안장돼 있다. 그가 두 번째로 책을 발간하면서 느낀 감회가 새로웠던 것도 대전 현충원에 다수 안장된 독립지사의 글을 접하면서다.

“그분의 희생정신은 대한민국 그 자체입니다. 독립이 이뤄지지 않았더라면 6.25 전쟁 자체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우리는 일본 국민이었을 것입니다. 그분들의 희생정신을 새롭게 조명하고, 그들의 업적을 우리 세대나 다음 세대에 알려야 합니다.”

조 이사장은 현충원을 소재로 한 영화 제작을 추진 중이다. 영화든 다큐멘터리든 순국선열들에게 영웅이라는 호칭을 붙인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바람이다.

그는 정부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조 이사장은 “정부가 호국영령들의 희생에 국민이 공감할 수 있도록 역할을 해야 한다”며 “그분들의 위대하고 숭고한 삶의 명예와 자긍심을 후손으로 기리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족에 대한 지원도 요구했다. 그는 “유가족들은 너무나 힘이 든다. 생활의 어려움에 대한 지원은 우리의 몫”이라며 “그렇게 안 한다면 누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조 이사장은 지난 2004년 국내 최초 중국 종합편성 채널인 ‘중화TV’를 설립해 대표를 역임한 뒤 중국인민대학 신문학원(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한중미디어연구소 이사장으로 재직하며 중국의 미디어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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