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권 논설위원

 

위정자(爲政者)들에겐 안 뵈는 것일까. 먼지를 닦아내면 세상은 유리알처럼 훤히 다 보일 텐데. 땀 흘리고 뼈를 깎아도 손에 잡히는 것 없는 서민들에겐 잘 뵈는 것들이 왜 안 뵈는 걸까, 아니면 애써 안 보는 걸까.  

뙤약볕 속에 하루 종일 돌아다녀 얼마를 벌까. 1만원권 지폐 한 장도 받기 힘들다. 폐지 리어카를 끌고 동네 비탈길을 힘겹게 오르는 꼬부랑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아졌다. 사교육을 외면할 수는 없을까. 허드렛일, 궂은 일, 알바라도 해 자녀 교육비를 마련하려니 허리가 휘는 맞벌이 주부, 이혼녀가 많다. 밤낮없이 일하면 수면은 언제 취할까. 심야에 대리운전을 뛰는 고학력 투잡족이 늘었다. 간판제작업체라도 활황일까. 몇 개월 못 버티고 문을 닫으면 그 자리에서 또 다른 철없는(?) 퇴직자가 자영업을 시작하고 또 얼마 못가 폐업하는 악순환의 도시. 다 미친 것 같은데, 다 사기꾼 같은데 믿을 곳, 기댈 사람은 누구일까. 정치인 공무원 판사 검사 경찰관이 합법을 가장한 양두구육으로 제 뱃속 채우기에만 급급한 현실. 타락한 세상을 구원으로 이끌어야 할 일부 종교인들마저 탐욕에 눈멀어 온갖 루머의 진원지가 되는 사회. 매연에, 미세먼지에, 차량 소음에 눈뜨고 숨쉬기 불편한 길거리. 어떻게 정기검사를 통과했는지 버젓이 시커먼 배기가스를 내뿜고 다니는 차들이 넘쳐나는 나라….

무슨 막장드라마라도 본 것 같다. 단계별 맞춤형 청탁 의혹에 ‘유전무죄, 무전유죄’. 검·경의 수사, 법원 재판에 신뢰가 가지 않는다. ‘원포인트’ 수임에 50억원이라니. 고위 판·검사 출신 변호사 20여명이 볼썽사납게 떼거리 패거리로 나서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에 대한 수사, 보석 및 재판결과까지 방패막이 역할을 했다. 돈 있고 연줄만 있으면 해당 사건이 배당된 바로 그날 저녁식사 자리에 현직 재판장을 불러낸다. 그리고 마주앉아 술잔을 건네며 구명 청탁을 한다. 검찰이 계좌추적을 하고 있다고 하지만 법조브로커 이모씨가 붙잡히지 않으면 수사가 흐지부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국 법조계는 판이 좁다. 연수원 동기, 고교 동문 등 두세 사람만 연결하면 인맥이 닿는다. 거액을 받고 수임한 검사장,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가 돈·학연·지연 등을 앞세워 로비를 하다 스캔들로 비화되고 있다. 법조계는 1997년 의정부 법조비리 사건, 1999년 대전 법조비리 사건에서 부적절한 유착관계가 드러나 관련자가 대거 처벌되는 일을 겪었다. 하지만 그 후 법조계의 반성도 없었고 제도 개혁도 없었다. 그러다보니 고위직 출신 전관 변호사들이 브로커와 연결해 거액을 받고 검사, 판사에게 로비를 하고 검사의 결정과 법원의 판결에 영향을 미치는 전관비리가 척결되지 않고 있다. 사정기관이 썩으면 그 사정기관에 대한 사정은 누가 하나. 사법부 독립이란 미명하에 독선적으로 운영되는 현재의 사법제도는 옳은가. 특별검사는 믿을 수 있는가. 선출직으로 바꾸거나 국민이 리콜할 수는 없는가.

로마신화에 나오는 야누스의 얼굴을 가진 제도나 현상을 만난다. 지방법원장과 전직 시장 자녀 등이 부모나 친인척 이름이 드러나도록 자기소개서를 작성하고도 로스쿨에 합격한 사실이 적발됐다. 로스쿨 제도는 당초 도입취지는 좋았다. 단 한 차례 페이퍼테스트를 통과하면 평생을 우려먹는 사법시험 제도의 문제점을 개선하고 대국민 법률서비스 질을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고관대작 자녀의 불공정 입학이 드러나 금수저 흙수저 논란이 일고 있어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이란에서 ‘42조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중동시장 선점 효과에 기대가 모아진다. 그러나 대부분 구속력 없는 MOU 형태다. 철도와 수력 발전 정도만 가계약이니 정식 수주계약까지 갈 길이 멀다. 이란 경제상황은 빈한하다. 자기자본 확충문제가 걸려 있는 국내 국책은행이 우리 기업에 금융지원을 해야 한다. 앞으로 상환문제 등에 관한 치밀한 관리가 필요하다. 더욱이 많은 국민이 수사가 미진했다고 생각하는 이명박 정부의 ‘뻥튀기’ 자원외교 비리까지 뇌리에 떠올라 씁쓸하다. 남북대화가 단절된 상황에서 북한이 36년 만에 노동당 제7차 당대회를 연다. 북한이 6일 남북관계에 관한 모종의 제의를 하며 출구전략을 내놓을지도 모른다. 정부의 대응책이 궁금하다. 국민의 바람은 경제 살리기, 정치개혁, 교육개혁, 남북관계 개선, 사회정의 실현, 계층 간 위화감 해소 등이다. 지혜롭게 백년대계를 내다보는 결기 있는 정치를 원한다. 정치지도자, 특히 대선주자들이 눈 닦고 마음 비우며 잘 살펴 향후 대선후보 정책으로라도 잘 준비해주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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