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권 논설위원

 

‘순수한 사람이 정치를 하면 좋겠다. 이기적인 사람보다는 사심 없는 사람이 정치를 하면 좋겠다. 근시안적인 사람보다는 지혜로운 비전을 가진 사람이 정치를 하면 좋겠다. 허울 좋은 스펙보다는 학벌은 없어도 국민을 행복하게 할 능력 있는 사람이 정치를 하면 좋겠다. 아집에 빠진 배타적인 사람보다는 마음 허허롭게 비운 사람이 정치를 하면 좋겠다. 대통령병(病)에 걸린 인물보다는 마하트마 간디처럼 무소유를 실천하는 지도자가, 철학을 지닌 맑은 영혼이 정치를 하면 좋겠다. …’

꿈도 야무지다. 필자의 백일몽이다. 비현실적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마음 비운 정치인을 만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큰 정치는 실종되고 ‘친박’이니 ‘친노’니, ‘친문’이니 하며 패권주의에 물든 정치밖에 없지 않은가. 여당은 무조건 찬성만 하고 야당은 무조건 반대만 하는 정치공학밖에 없지 않는가. 국가 백년대계를 생각하는 정치철학은 없고 잔머리를 굴려 권력을 누리겠다는 꼼수만 있지 않는가. 총선이 계기가 돼 정치권 전체가 모처럼 쓴소리를 듣기도 했다. 하지만 변모된 모습은 찾기 쉽지 않다. 입 모아 ‘협치’라는 낯선 말을 잠시 내세웠던 여야는 상시청문회법 등으로 또다시 제 갈 길을 가고 있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김병준 국민대 교수가 9일 새누리당 당선자 총회에서 작금의 국정 운영 체제를 고장난 자동차에 비유하며 “대통령중심제도 고장, 국회도 고장, 행정부도 고장났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는 정치권이 이기고 지는, 권력정치에 함몰됐기에 나온 현상”이라며 “오로지 권력을 잡는 것만 생각하는 정치다. 권력을 잡아서 도대체 무엇을 하겠다는 것에 대해선 불분명하다”고 일침을 가했다. 잠시 속이 시원했지만 여전히 조선조 4색당파처럼 짜증나는 ‘친박 vs 비박’ ‘친노 vs 비노’이다. 정치권이 여태 정신 못 차렸다는 얘기가 그래서 나오는 모양이다.

정치지도자들에게 바란다. 제발 크고 굵은 줄기 두세 기둥만 바로잡아 달라. 세계경제 전체의 불황 탓이라고는 하지만 경기침체의 수렁이 너무 깊고 어둡다. 누구 좋은 일 시키려는지 남북관계는 끝없이 으르렁거리는 대립에 한반도의 외교적 위상은 갈수록 졸(卒)이다. 사회분위기는 ‘금수저’ ‘전관예우’ 논란 등으로 갈등과 위화감이 심각한 수준을 넘어 폭발직전이다. 마침 내년은 대선의 해. 대선 주자를 비롯한 정치인들이 진실한 삶, 뜨거운 가슴, 차가운 머리였으면 좋겠다. 바라건대 위정자들은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미래를 생각해 몇 가지만 집중해 역점 정책으로 가닥을 잡아 밀고나갔으면 한다.

우선 경제다. 일반 서민들에게 있어서는 앞으로도 가장 큰 화두는 경제다. 더불어민주당이 제1당이 된 것은 새누리당 친박계의 자살골 덕도 있었지만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내건 경제민주화 구호가 먹혀든 때문이었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나 초이노믹스는 말만 번드레했지 피부로 체감되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살벌한 경제 전쟁 앞에 무력하기만 했고, 양극화 해소에는 근처에 가지도 못했다. 대기업, 대형아파트, 대형병원, 정규직 등 기득권자 위주로 철저히 차별화해 돌아가는 경제의 답습일 뿐이었다. 서민들의 삶에 돌파구를 마련해줄 블루오션을, 뒤뚱거리는 한반도호의 구세주 같은 선장의 출현을 학수고대한다.

둘째, 남북관계와 외교·안보이다. 북한은 스스로 핵보유국을 선언했고, 핵·경제병진노선에 채찍질을 가하고 있다. 한반도 주변 외교적 격랑이 구한말처럼 거세고 복잡다단한 가운데 미국 대선 일정과 맞물려 북미관계 급변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남북관계 개선과 남북경협은 물론이요, 평화협정이건 통일이건 우리가 스스로 주도해야 한다.

셋째, 정치 사회 교육의 개혁이다. 아무런 원한이나 악감정도 없는 피해자가 하루아침에 얼굴도 모르는 사내에게 칼부림을 당해 피투성이로 변했다. 사회안전망의 붕괴는 안타까움을 넘어 국가 존립 근거까지 문제된다. 동방예의지국이었던 한국이라는 사회가 이젠 너무도 흉물스럽고 공포스럽다. 경쟁과 배척만 있고 동반자에 대한 배려나 예의는 찾을래야 찾을 수도 없다. 한국의 정치는 크건 작건 각종 이권과 결탁돼 있고 사회는 공동체의식을 갖지 못한 채 탐욕과 이기심으로 병들어 있다. 그런데도 교육은 흙수저들에게 한 톨의 자긍심도 희망도 주지 못한 채 갈등만 부추긴다. 대학을 안 나와도, 서울에 살지 않아도, 고급차를 타고 다니지 않아도 창피하거나 불편하지 않는 사회가 되도록 교육이 앞장서서 개혁해야 한다. 한국 사회를 살기 좋은 사회 분위기로 업그레이드시켜야 한다. 새 시대를 열어줄 큰 리더십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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