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월부 관아 전경 (사진제공: 문화재청)

조선 후기 재건 당시 건축물 유지

단종의 애달픈 삶 전해지는 역사적 장소

[천지일보=김예슬 기자] ‘한 마리 원한 맺힌 새가 궁중을 나온 뒤로/ 외로운 몸 짝 없는 그림자 푸른 산 속을 헤맨다.’

비운의 왕 단종(조선 제6대 임금, 1441~1457년)은 강원도 영월군 영월부 자규루에 자주 올라가 이 시를 읊었다. 자규란 피를 토하면서 구슬피 운다고 하는 소쩍새를 가리키는 말로, 단종은 자신의 처지를 빗대어 이 시를 지었다.

문화재청은 조선 시대 영월부의 행정관청이자 단종이 짧은 생을 마감한 장소인 영월부 관아를 최근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534호로 지정했다. 12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영월부 관아는

조선후기 중수된 이후 현재까지 그 터와 건축물을 유지하고 있으며 기록에 의해 단종의 역사를 품고 있는 사적(史的) 가치를 지니고 있다.

▲ 자규루 (자료제공: 문화재청)

현재 이곳엔 사신이나 관리들의 숙소 등으로 사용됐던 객사(客舍)와 누각 건물 자규루가 남아 있다. 객사는 1396년에 창건됐다고 전해진다. 이어 1791년에 고쳐지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서익헌(西翼軒), 중앙 정청(正廳, 관아에서 중심이 되는 본관 건물), 동익헌(東翼軒)이 일렬로 배치된 구조다. 동익헌엔 ‘관풍헌(觀風軒)’이라는 편액(扁額)이 걸려 있다. 관풍헌은 단종이 승하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1457년 노산군으로 강봉된 단종은 영월 청령포에 유배됐다가 홍수가 나자 처소를 옮겨 관풍헌을 침전으로 사용, 같은 해 10월 이곳에서 사약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자규루는 원래 명칭이 ‘매죽루(梅竹樓)’였다. 그러나 단종이 이곳에 자주 올라 자규시를 읊었다고 해 ‘자규루’라 불리게 됐다. 이곳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이다.

앞서 문화재청은 지난 2013년과 2015년에 걸쳐 발굴조사를 벌인 결과 건물지, 박석시설, 내삼문 터를 비롯해 객사 건물로부터 내삼문 터에 이르는 보도시설, 관풍헌으로부터 자규루로 연결된 보도시설 등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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