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늦었다”는 전문가 분석 많아

[인천공항=뉴시스] 이종섭 주호주대사가 21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공동취재) 2024.03.21.
[인천공항=뉴시스] 이종섭 주호주대사가 21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공동취재) 2024.03.21.

[천지일보=김성완 기자] 채 상병 사망 사건 외압 논란의 핵심 피의자 신분으로 임명돼 논란이 됐던 이종섭 주호주대사가 29일 결국 사임했다.

지난 4일 대사로 임명된지 불과 25일만인데, 4.10 총선을 열흘 안팎을 앞두고 비판 여론이 수그러들지 않자 사퇴로 돌아선 게 아니냐는 관측이 많다. 총선 임박 속 도피 정국 돌파용 사퇴라는 것이다.

다만 이 대사 사퇴로 분위기 반전을 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전문가들은 화난 민심을 돌이키기는 너무 늦지 않았느냐는 진단이다. 부정 여론을 더 공고히 해 정권심판론을 가속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상대국인 호주와의 관계 정리 역시 주목되는 대목이다. 피의자 신분인 이 대사를 임명해 호주가 불쾌감을 표시한 적이 있는 데다 한 국가를 대표해 외국에 주재하는 공관장이 임명 한 달도 안돼 사임하는 건 전례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호주에 적잖은 외교적 결례를 범하는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종섭, 변호사 통해 사퇴 알려

이 대사는 사의 표명은 법률대리인인 김재훈 변호사를 통해 알려졌다. 김 변호사는 이 대사가 대사직에 대한 사의를 표명하고 꼭 수리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조태열 외교부 장관에게 요청했다고 전했다.

이 대사는 입장문에서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조사를 촉구하며 모“든 절차에 끝까지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지만, 최근 군사 재판이 진행되는 것을 보면 이 대사에게 마냥 녹록치 않은 모양새다.

지난 중앙군사법원 3차 공판 등에서는 이 대사가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을 혐의에서 빼기 위해 발언 등을 했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공수처에 자진 출석한 자리에서 이 대사가 제출한 휴대전화가 채 상병 사건 이후 새로 발급한 휴대전화라는 의혹도 제기되는 등 불리한 상황인 것으로 전해졌다.

뒤이어 외교부도 기자단에 보낸 문자 공지를 통해 “이종섭 주호주대사 본인의 강력한 사의 표명에 따라 임명권자인 대통령께 보고드려 사의를 수용하기로 했다”며 이를 확인했다. 지난 4일 대사로 임명된지 불과 25일만이다.

특임 공관장은 외교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용하기 때문에 외교부의 이 대사 사의 수리도 사실상 대통령 재가를 거쳐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다. 외교부 장관의 사의 수용은 대통령의 재가까지 있었다고 볼 수 있다는 의미다.

◆이종섭, 전격 사퇴 배경은

이 대사가 이날 전격 사퇴했는데,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이 대사 논란이 일단락될 수 있을지에도 이목이 집중된다. 향후에도 이 대사의 수사 과정이 언론에 오르내리면서 꾸준한 이슈로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4.10 총선을 열흘 정도를 앞두고 여론이 악화되는 등 수그러들지 않자 대통령실이 결국 백기를 든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이 대사 도주 논란 이후 여당 지지율이 하락하자 그간 여권 일각에서도 이 대사 사퇴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하지만 총선엔 별다른 영향을 미칠지 못할 것이라는 해석이 많다.

대통령실과 이 대사 간 교감이 있었을 것이라는 시각이 많은 이유다. 전문가들은 ’고발 사주‘ 사건의 손준성 검사를 예를 들고 채 상병 사건 외압 의혹의 핵심 당사지인 이 대사와 물밑에서 접촉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손 검사는 재판 도중에도 검사장으로 승진한 바 있는 등 입만 다문다면 끝까지 챙긴다는 전례를 윤석열 정권이 보였준 만큼 관련 논의가 오갔지 않았겠느냐는 설명이다. 이 대사가 공수처 수사를 강하게 요구한 것도 같은 맥락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윤 대통령에 대한 비판도 커지고 있다. 결과적으로는 수사선상에 오른 용의자를 무리하게 해외 주요 공관장에 임명한 것이 문제였다는 질타다. 그렇게 급하게 내보낸 데는 어떤 피치못할 사정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가시지 않고 있다.

채 상병 사건 외압 의혹과 관련해 대통령실의 개입 여부에 대한 키를 이 대사 쥐고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재판과 맞물려 이 대사 사퇴에도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은 건 이 때문이다. 다만 대통령실은 여전히 이 대사 임명 과정 등에 문제가 없다고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대사 임명부터 사퇴까지 살펴봤더니

이 대사 임명에서 사퇴까지 ’도피 논란‘ 25일의 전말은 이렇다. 앞서 지난 4일 이 대사는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 사건 수사 외압 의혹으로 공수)의 수사 대상에 올라 있음에도 호주대사로 전격 임명됐다.

특히 공수처가 지난해 12월 그를 출국금지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피의자를 해외로 도피시키려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그럼에도 법무부는 이 대사의 이의 신청을 받아들여 8일 출국금지를 해제했고 그는 10일 호주로 떠났다.

그러자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을 중심으로 ’도피성 출국‘이란 지적이 이어지는 등 파장이 일파만파로 확산됐다. 총선이 임박한 가운데 도피 논란이 여권에 큰 악재로 부각되면서 이 대사 귀국을 압박하는 지경이 됐다.

이 과정에서 그래도 그냥 뭉개려고 했던 윤석열 대통령과 귀국을 종용한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간 2차 갈등설이 나돌기도 했다. 총선이 없었다면 윤 정부의 특성상 여론에 아랑곳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 대사는 결국 ’방산협력 주요 공관장회의‘를 명분으로 지난 21일 전격 귀국했다. 정부는 부인하지만 일부 공관장만 모아 방산회의를 여는 게 전례가 없다보니 이 대사의 귀국을 위해 급조된 게 아니냐는 지적이 외교가에서 나왔다.

실제로 6개국 대사를 현지 사정상 동시다발적으로 불러들이는 게 쉽지 않았던지 25일 예고됐던 공관장회의가 사흘 뒤인 전날에야 열리는 등 이 같은 비판에 더욱 힘이 실렸다. 또한 이 대사가 전격 사임하면서 국방장관 등 당국자들이 개별 면담에 동원된 데 대해선 급조 논란과는 별개로 행정력 낭비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