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사상가 최한기 ‘통경(通經)’ 표지 (제공: 한국학중앙연구원) ⓒ천지일보 2024.03.25.
조선 후기 사상가 최한기 ‘통경(通經)’ 표지 (제공: 한국학중앙연구원) ⓒ천지일보 2024.03.25.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동서양을 아우르는 학문체계를 집대성하고자 한 조선 후기 사상가 최한기(1803~1877)의 미발견 저서 ‘통경(通經)’이 발견됐다. 평소 화합과 안정을 추구하며 다양한 학문적 관심을 둔 최한기의 이번 저서는 현대를 사는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조선 후기 대학자 최한기 

25일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은 “부여 함양 박씨 종가가 기탁한 고문헌 자료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최한기의 저서 ‘통경’을 최근 발견했다”고 밝혔다.

혜강 최한기는 유교문명과 서구문명의 통합을 구상한 조선 후기의 대학자다. 그는 실학자이자 지리학자, 철학자, 사상가, 저술가로 이름을 날렸다. 또 세계 인문·지리·천문·의학 등 여러 학문에 관심을 뒀다. 그는 1천권 이상의 방대한 저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이처럼 많은 책을 저술할 수 있던 것은 경험을 중시하면서 사물을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상당한 양의 서적이 유실됐고 일부만 전해 내려오고 있다.

조선 후기 사상가 최한기 ‘통경(通經)’ 내지 (제공: 한국학중앙연구원) ⓒ천지일보 2024.03.25.
조선 후기 사상가 최한기 ‘통경(通經)’ 내지 (제공: 한국학중앙연구원) ⓒ천지일보 2024.03.25.

◆‘십삼경’ 주제별로 분류

이번에 발견된 ‘통경’은 모두 20책 53권의 큰 규모로 이뤄졌다. 시경·서경·역경·주례 등 유교에서 중요한 13개의 경전을 집약한 ‘십삼경(十三經)’의 내용을 주제별로 분류하고 해설한 저술서다. 조선은 물론 당시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십삼경 전체를 독특한 형식으로 다룬 유사한 저술은 찾아보기 어렵다.

‘통경’은 십삼경의 전체 내용을 학부(學部)·사물부(事物部)·의절(儀節部)과 같이 3개의 범주로 구분됐다. 각 부(部) 아래에 총 271개의 조목(條目)을 배치했고 전체 내용을 유기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구성됐다. 십삼경 각각이 어떤 범주에 속하고 있는지를 쉽게 확인하도록 색인 기능의 목록도 있다. 시각적 이해를 위해 250개의 그림도 포함됐다.

이창일 한국학중앙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통경’은 최한기의 초기작이며 28세 무렵에 저술한 것으로 추정한다”며 “‘통경’은 유교의 모든 분야를 이해할 수 있는 정밀한 구조로 구성돼 있다”고 말했다.

통경의 학술적 가치에 대해 당시 ‘십삼경’을 새롭게 해석해 새로운 시대의 변화에 대응하려 했던 십삼경 패러다임의 구체적이고 유일한 성과에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최한기의 ‘통경’은 한국의 수준 높은 유교 연구의 산물”이라며 “이는 유교문명의 지식을 정리하는 차원을 넘어서 ‘십삼경’을 전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한 새롭고 독창적인 방식”이라고 말했다. 이런 차원에서 ‘통경’은 유교의 현대적 의미를 묻는 차원 높은 연구에 의미 있는 방향을 제시해줄 수 있다고 평가했다.

조선 후기 사상가 최한기 ‘통경(通經)’ 내지 (제공: 한국학중앙연구원) ⓒ천지일보 2024.03.25.
조선 후기 사상가 최한기 ‘통경(通經)’ 내지 (제공: 한국학중앙연구원) ⓒ천지일보 2024.03.25.

◆조선 문명의 새 패러다임 제시자

장원석 한국학중앙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최한기의 해석학은 하나(一)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독특한 유기체 철학”이라고 말했다. 장 연구원은 최한기가 유가경전을 연구해 ‘통경’을 펴낸 것은 그의 철학이 개화파의 선구라는 학계의 통념 보다 훨씬 더 전통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는 증거라고 강조했다. 이어 “최한기의 철학을 개화·수구의 이분법이 아닌 유학 전통의 연속성 위에서 시대에 맞춰 이를 과감히 개혁한 조선 문명의 새로운 패러다임의 제시자로 파악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한국학중앙연구원은 26일 최한기 저술 ‘통경(通經)’ 발견 보고 발표회를 통해 이 같은 내용을 발표한다. 세미나는 한국어 세션과 영어 세션이 연속으로 진행되며 최한기 연구의 권위자인 한양대 김용헌 교수와 한국사상 전문가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의 도널드 베이커 교수가 토론자로 나서 ‘통경’ 발견의 의미를 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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