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조사 87.8%로 득표율 최고
스탈린 넘어선 30년 장기집권
백악관 “자유·공정하지도 않아”
반정부 인사들 후보 등록 거부
비밀투표 아닌 투명한 투표함
우크라 “선거 흉내 내기일 뿐”

블라디미르 푸틴(71) 러시아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2024 러시아 대선에서 압도적 지지율로 5선 연임을 확정하며 30년 종신집권의 길을 열었다. 사진은 5선 뒤 기자들과 대화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타스=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71) 러시아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2024 러시아 대선에서 압도적 지지율로 5선 연임을 확정하며 30년 종신집권의 길을 열었다. 사진은 5선 뒤 기자들과 대화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타스=연합뉴스)

[천지일보=방은 기자] 현대판 ‘차르(황제)’로 불리는 블라디미르 푸틴(71) 러시아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2024 러시아 대선에서 압도적 지지율로 5선 연임을 확정하며 종신집권의 길을 열었다. 지난 15일부터 진행된 러시아 대선에서 반정부 성향 인사들은 후보 등록이 거부됐고, 등록된 나머지 대선 후보들의 지지율은 미미했다. 2000·2004·2012·2018년에 이어 또다시 승리한 푸틴 대통령은 2030년까지 6년간 집권 5기를 열게 됐다. 그는 이오시프 스탈린 옛 소련 공산당 서기의 29년 집권 기간을 넘어 30년간 러시아를 통치하게 되는 것이다.

여론조사기관인 폼(FOM)이 실시한 출구조사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87.8%의 득표율을 기록해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 역사상 가장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다. 또 다른 여론조사센터 브치옴(VCIOM)도 푸틴 대통령을 87%로 평가했다.

스푸트니크 등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이날 5선을 사실상 확정한 뒤 “러시아는 더 강하고 효과적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투표에 참여한 러시아 국민을 향해서도 “우리는 모두 하나의 팀”이라며 감사를 표했다.

압도적 지지를 재확인한 푸틴 대통령은 2년 넘게 이어가고 있는 우크라이나 ‘특별군사작전’의 정당성을 확보했다는 자신감을 얻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바탕으로 집권 5기에는 추가 징집 등 특별군사작전 정책이 강화되고 서방과의 대립도 심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밤 모스크바 고스티니 드보르에 마련된 자신의 선거운동본부에서 기자들과 만나 우크라이나 특별군사작전과 관련, 올해 파리올림픽 기간에 휴전하자는 프랑스의 제안에 대해 “대화에 나설 준비가 돼 있지만, 전선에서 러시아의 이익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어 서방을 향해 러시아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나토)의 충돌은 세계 3차 대전에 근접한 것이라는 경고도 했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와 미국이 주도하는 나토 군사 동맹의 직접적인 충돌은 세계 3차 대전에서 한 걸음 떨어진 것을 의미할 것이라며, 그 누구도 이 시나리오를 원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토 군대가 이미 우크라이나에 주둔하고 있고, 러시아군이 전장에서 영어나 프랑스어가 쓰이는 것을 들었다고 덧붙였다.

푸틴은 2000년 처음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강한 러시아’ 정책을 펼쳤다. 고유가 시대에 힘입어 러시아 경제를 끌어올린 푸틴 대통령은 석유·가스·식량 등 풍부한 자원을 무기로 세계 경제에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24년 러시아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지난해 10월 1.1%에서 지난 1월 2.6%로 상향 조정했다. 러시아 실업률은 지난해 10월 2.9%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푸틴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에는 공(功)이 과(過)보다 크다고 판단하는 분위기다. 물가가 오르기는 했지만, 러시아인들은 일상에서 전시 상황을 거의 체감하지 못하는 듯하다. 실제로 전투가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벌어지는 데다 서방 기업이 철수한 빈자리는 병행수입 제품과 자체 브랜드로 어느 정도 빈자리를 채우고 있다. 아울러 서방과 대립이 심화하면서 ‘나토 동진 저지’ 등 푸틴 대통령이 내세운 특별군사작전 명분에 동조하는 현지 여론도 커졌다. 또 역사적으로 불만을 표출했을 때 가혹한 불이익을 받은 경험이 이어지면서 러시아인들이 현실에 순응하고 어려운 일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짙어진 것으로 보인다.

반면 독재자를 뜻하는 ‘스트롱맨’ 평가가 따라다니는 푸틴 대통령은 이번 대선에서 상당한 저항을 받기도 했다. 선거 시작 전 러시아 민병대와 함께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격과 접경지 침투 시도가 있었다. 선거 마지막 날인 이날 정오에는 지난달 옥중 사망한 반정부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 지지자들이 주도한 부패한 독재자 ‘푸틴에 반대하는 정오’ 시위가 열리기도 했다. 반체제 탄압을 감시하는 단체인 OVD-Info에 따르면 일요일 러시아 전역에서 최소 74명이 체포됐다. 지난 이틀 동안 일부 러시아인들이 투표소에 불을 지르거나 투표함에 녹색 염료를 붓는 등 항의 시위가 산발적으로 발생했다. 또 비밀투표를 보장할 수 없는 투명한 투표함이 동원되고, 국제적으로 러시아 영토로 인정받지 못하는 크림반도와 우크라이나 4개 지역에서도 투표가 시행된 점 등으로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에 미국은 러시아 대통령 선거가 자유롭지도 않고 공정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백악관은 이날 푸틴 대통령이 정적을 구금하고 그들이 자신을 상대로 출마하지 못하게 막았다고 지적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마무리된 러시아 대통령선거는 정당성 없는 선거 흉내 내기일 뿐이라고 의미를 깎아내렸다. 종신집권에 나서는 푸틴 대통령의 생애 다섯번째 취임식은 오는 5월 7일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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