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에 사연 올린 후
하루 만에 가족에게 알려
가족들 “같이 갚자” 격려
사연자 “미안함·아픔 남아”

워너비그룹 피해자들이 지난달 30일 대전 서구 경찰청 앞에서 집회를 열고 전영철 회장의 구속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제공: 피해자 연대) ⓒ천지일보DB
워너비그룹 피해자들이 지난달 30일 대전 서구 경찰청 앞에서 집회를 열고 전영철 회장의 구속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제공: 피해자 연대) ⓒ천지일보DB

[천지일보=홍보영 기자] “사기는 살인이다.”

폰지사기 의혹을 받는 워너비그룹으로부터 ‘원금과 고수익을 보장해준다’는 말을 믿고 돈을 넣었다가 출금이 막혀 전전긍긍하던 전국 곳곳에 있던 피해자들이 지난달 초 대전 경찰청 앞에 모여와 목 놓아 외친 소리다.

사기를 당했다는 사연이 날마다 쏟아져 나온다. 사기를 당해 ‘전 재산을 하루아침에 다 날렸다’ ‘잠 못 이룬다’ ‘뇌출혈로 쓰러져 마비됐다’ 급기야 극단적 선택했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전해진다. 하지만 경찰 수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피해 복구는 요원한 상황이라 피해자들은 울부짖는다. 자신의 어리석음을 자책하는 한편 부끄러운 일이라 누구에게도 선뜻 사기를 당했다고 입을 떼기도 어려워한다. 하지만 피해 사실을 접한 사람들은 “남은 인생은 너무나 소중한 것”이라며 공감하고 응원하며 격려한다.

천지일보는 사기를 당해 1억원 넘게 빚더미에 앉은 한 여성이 밝힌 3일간의 심경 변화와 네티즌들의 반응을 담아봤다.

사기 척결을 추구하는 국내 최대 규모 온라인 커뮤니티인 네이버 카페 ‘백두산’에는 ‘너무 괴롭고 힘들어요’ ‘너무 괴롭고 힘들어요 어제 고백했습니다’ ‘남편에게 고백하고 이틀이 지났습니다’라는 3개의 제목의 글이 지난 9일부터 12일에 걸쳐 올라왔다.

◆“1억원 사기 당해 멍든 가슴”

지난 9일에 올라온 ‘너무 괴롭고 힘들어요’라는 글은 자녀 2명을 둔 게시자 A씨가 사기를 당한 경위와 가족들에게 말 못해 속앓이를 하는 사연이 담겼다.

A씨는 “남편 모르게 ‘마진거래’라는 것에 속아 1억원이 넘는 빚이 생겼다”고 운을 뗐다. 이후 사기당한 과정을 설명했다. 그는 “일주일 구경만 하다가 해보니 (돈을) 잃기도 벌기도 했다”며 “그러다가 단체 톡방에서 개인코칭 얘기가 오가고, 수익이 나서 감사하다는 얘기가 오가고 그래서 저도 관심을 가지게 되고 해보게 됐다”며 “그런데 (돈을) 다 잃고 보니 그들의 판에 놀아난 것”이라고 후회했다.

이어 “왜 한 번쯤 의심도 안 해봤는지 내가 너무 밉다. 잠도 안 오고 입술만 바짝 마르고 밥은 넘어가지도 않고 남편, 애들한테 미안해서 미칠 거 같다”고 자책했다. 그러면서 “남편한테 말은 해야 하는데 괴로워하고 배신감 느낄 거 생각하니까 가슴이 아파서 죽을 것만 같다”며 “가슴을 얼마나 쥐어짰는지 멍이 들었다”고 호소했다.

또 A씨는 “아들은 엄마 아빠 도와주며 알바하고 있는데 충격을 받을까봐, 딸은 사춘기라 예민한데 또 다른 힘듦을 줄까 봐 걱정”이라며 “어떻게 고백해야할까. 고백하고 나서 힘들어하는 모습을 봐야하는 게 더 무섭다”고 했다. 또 “어제 아들이 (나에게) 오늘 평소랑 다르다고 (해서) 속으로 ‘미안해’를 수천번도 더 말했다. 남편 뒷모습만 보이면 가슴이 아파서 죽겠다. 저는 오늘 말하려 하는데 입이 떨어질지 모르겠다”고도 했다.

12일 1억여원을 사기당한 A씨의 사연에 12일 기준 49개의 댓글이 달렸고, 네티즌들은 공감하고 응원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캡처: 백두산 카페) ⓒ천지일보 2024.03.12.
12일 1억여원을 사기당한 A씨의 사연에 12일 기준 49개의 댓글이 달렸고, 네티즌들은 공감하고 응원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캡처: 백두산 카페) ⓒ천지일보 2024.03.12.

이러한 소식에 12일 기준 49개의 댓글이 달렸고, 공감하고 응원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댓글에는 “많이 힘드시죠. 저도 피해금액이 1억이 넘는데 잠도 못자고 먹지도 못해 한 달에 5㎏로가 빠졌다. 두 달이 지난 지금도 남편한테 말도 못하고 속으로 끙끙 앓는 중이다. 하루하루가 지옥이다. 대출 독촉은 빗발치고 남편 귀에 들어갈까 무서워서 미칠 거 같다” “조금만 더 힘내서 얘기 잘 되길 바란다. 저도 남편이 알게 되면 이혼당할 수도 있어 말을 못하고 있다. 이혼이 무서운 건 아니지만 혼기가 꽉 찬 딸아이가 맘에 너무 걸린다” “저랑 같은 사람들이 많다. 저만 특별한줄 알았는데…” 등의 반응이 나왔다.

이외에도 “너무 자책하지 마시라. 지나간 것은 얼른 털어버리라. 남은 인생은 너무나 소중한 것이다. 아드님이 이 사실을 아셔도 저랑 같은 말을 했을 거다” “가족은 다 보듬어주게 돼 있다” “남편분도 처음에 실망과 배신감 느끼겠지만 이해해 줄 거라 생각한다. 저도 말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그리고 원금 회복해 준다고 접근하는 사람 있으면 사기니 조심하시고 힘내시라” “아드님이 보듬어 줄 거다. 저도 1억 2천만원 사기 당했는데 아들이 엄마 먼 일 있어?라고 자꾸 물어보길래 얘기했더니 아들이 괜찮다며 위로해주고 하루에 몇 번씩이나 전화하더라. 제가 나쁜 생각할까봐” “저도 죽을 자리까지 갔었다. 그런데 (죽으면) 보험금조차 받을 수 없다기에 일하다 죽어 가족들한테 보험금이라도 챙겨주자는 생각으로 이리저일 닥치는 대로 하며 상환금 갚아나가다 보니 1억 2천만원 사기당하고 2년이 지난 지금까지 살아있다. 힘내십시오” 등이 적혔다.

◆“아들·남편에 알려”… ‘잘 견디겠다’ 다짐

그러고 하루가 지난 뒤 A씨는 “아들과 남편에게 고백했다”고 밝혔다.

A씨는 “아들은 오열하는 저를 진정시키려고 안아주고 손잡아주고 남편은 꿈을 꾸는 건지 믿기지 않는다고. 어이가 없어서 한숨만 쉬었다”며 “(남편은) 10만원을 써도 물어보던 사람(A씨)이 그 큰돈에는 왜 그랬냐고 하는데 나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잘못했다고 빌었다”고 했다.

이어 “아들은 빨리 잊으라고 대신 사이버에 신고해 주고 남편은 실망과 배신감에 눈물도 흘리고 한숨만 한참을 쉬더니 울고 있는 저에게 같이 갚아가자고 했다”며 “그 말에 또 오열했다”고 말했다.

A씨는 “지금도 계속 눈물이 난다. 아들은 엄마 나쁜 생각 할까봐 하루 종일 옆에 있어주고 남편은 맘고생 많이 했다고 얘기해주는 데 마음이 미어진다”며 “본인도 힘들 텐데 그렇게 말해주니. 얘기하고 나니 가슴에 돌덩이는 내려졌지만, 한심한 제 자신에게 화가 나고 아이들과 저 때문에 앞으로 맘고생 몸고생할 남편에 대한 미안함이 가슴을 후벼 판다. 제가 잘못한 거니 견뎌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면서 “한참을 죄책감과 괴로움에 밤잠을 설치겠지만 보듬어준 남편과 아들에게 감사하며 살아가려고 마음 추스르고 있다. 좀 전에 남편이 밥 먹고 기운 차리고 정신 바짝 차리라고 나가서 밥 사줬다”며 “운전하다 가끔 내뱉는 한숨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지만, 이 또한 내가 감당해야 되는 것을 잘 안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사춘기 딸에게는 비밀로 하고 정말 큰 잘못을 한 저를 보듬어준 아들과 남편에게 평생 감사하고 보답하고 살도록 할 거다. 긴 글 읽어주시고 용기 주신 분들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고백했지만 남은 아픔들

남편에게 고백하고 이틀이 지난 12일 A씨에게는 여전히 가족에 대한 미안함과 아픔이 남아있었다. 그는 “솔직히 말해 지금도 많이 힘들다. 제 자신에 대한 분노가 미칠 듯이 괴롭히고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이 가슴을 후벼판다”며 “남편과 한 곳에서 같이 일을 하는 저는 주말을 보내고 출근을 했는데 저도 남편 모르게 한숨이 나오지만, 남편도 순간순간 한숨을 쉬고 있었다”고 했다.

이어 “힘들어하는 저를 보는 것도 힘들 테고 실망과 배신감을 이겨내려고 하니 얼굴이 까맣게 변해있더라. 그래도 일하면서 잊어버리려고 노래도 부르고 농담도 하려고 하는데 더 안쓰럽고 미안하고 가슴은 ‘턱턱’ 막히고…”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A씨는 지난 9일 아들이 제안한 대로 사이버 신고했고 이날 아들과 같이 경찰서에 갔다. A씨는 “너무 떨고 있는 저를 아들이 옆에서 도와준다. 너무 든든했다”며 “이제 20살 된 아들이 이렇게 큰 힘이 될 줄 몰랐다. (돈을) 못 받을 줄 알지만 그래도 신고라도 하고 나니 아주 조금은 위안이 되기도 한다”고 아들에게 고마워했다.

A씨는 기분 전환하자는 남편에게 미안함이 더해졌다고 한다. 그는 “어제 남편이 지인들과 부부 동반으로 만나서 기분 전환하자고 해서 나갔는데 남편이 술을 많이 먹었다”며 “술을 많이 먹어도 한 번도 흐트러지지 않았는데 어제는 20년 넘게 살면서 보지 못했던 모습을 봤다. 마음이 너무 힘들었나 보다. 그렇다고 다른 때보다 아주 더 먹은 건 아닌데 어지럽다고 토를 하고 힘들어했다”고 전했다.

이어 “얼마나 미안하고 가슴이 아프던지. 옷 갈아입히고 눕히는데 ‘잘 할게’ 그랬다. 나중에 자다 깨더니 ‘어제 너무 마셨나’ 그런다. 나는 내 남편에게 이런 면이 있는지 몰랐다. 자주 짜증내고, 화내고 자기 위주였던 사람인데 그래서 더 고백하기 무섭고 두려웠다. (남편이) 많이 참고 있는 것 같아 맘이 아프다”고 했다.

그러면서 “난 아직 잠을 못 잔다. 잠이 들다가 가슴이 철렁하면서 깬다. 새벽 내도록 그런다. 밥도 잘 안 넘어간다. 반찬을 만들어도 간을 못 보겠다. 50년 가까이 살면서 이런 건 처음”이라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아들과 남편을 생각하며 힘내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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