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열세에 다급해진 유럽
‘레드라인’ 우크라 파병론 파문
러 동결자금 사용 논의까지
러시아 ‘눈에는 눈’ 대응 방침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28일(현지시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열린 유럽의회 본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28일(현지시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열린 유럽의회 본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천지일보=이솜 기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2년을 넘긴 가운데 다급해진 유럽 국가들이 우크라이나 군 파병과 동결자산 수익금 사용 등을 언급하고 나섰다.

파병 주장에 대해 주요 서방국가들이 “너무 앞서간 일부 국가들의 정치적 수사”라는 평가와 함께 서둘러 불 끄기에 나섰지만, 공격용 무기 제공과 러시아 해외자산 자본이득을 활용한 우크라이나 재건 지원은 구체적인 방안까지 논의되면서 러시아의 분노 수위를 높이고 있다.

로버트 피코 슬로바키아 총리는 지난 26일(현지시간) “일부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국가들이 양자 간 합의에 따라 우크라이나에 군대를 파견할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격 발표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이튿날 “유럽이 우크라이나에 군대를 파견하는 것을 논의하고 있다”고 공개 발언했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열린 ‘군사 안보 및 무기 통제 회담’에 참석한 콘스탄틴 가브릴로프 러시아 대표는 “만약 서방 국가들이 우크라이나에 군인들을 보낸다면 러시아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직접 충돌할 위험이 심각하게 증가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스테판 두자릭 유엔 대변인은 “유엔은 모든 당사자들에게 우크라이나에 대한 선동적인 수사를 피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팻 라이더(Pat Ryder) 미 국방부 대변인은 “미국은 러시아와의 갈등이 계속되는 가운데 우크라이나에서 싸우기 위해 미군을 파견할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독일 국방장관도 “독일군을 우크라이나에 파병하는 것을 배제했으며, 마크롱이 이 아이디어를 언급했을 때 누구도 이 아이디어를 지지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주요국들이 공격용 전투기를 우크라이나에 보내는 문제는 오래전부터 거론돼왔다. 최근에는 우크라이나 측이 관련 발언을 기정사실화 하면서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러 타격 가능 전투기 이전 논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 26일(비엔나 현지시간) 프랑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키이우와 파리가 미라지(Mirage) 전투기를 우크라이나로 이전하는 가능성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마크롱 대통령은 이튿날 “우리는 프랑스산 미라지 전투기 공급 가능성에 대해 우크라이나와 논의하고 있지는 않지만, 우크라이나에 얼마나 유용할지는 연구하고 있다”고 답해 불씨를 남겼다.

마크롱 대통령은 “오늘 우리는 미라지에 대한 협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조종사를 훈련시키고 있으며, 오늘 장거리 무기에 관한 9번째 연합이 추가된 8개의 기존 연합 중에는 F-16 전투기에 관한 항공 연합이 있다”고 구체적으로 준비 정황을 밝혔다.

마크롱 대통령 주도로 파리에서 열린 이번 회의에는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 마크 뤼테 네덜란드 총리 등 유럽 정상 20여명이 참석했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범서방 국가들이 전투 효과를 높이기 위해 장거리 전투 미사일을 우크라이나에 계속 공급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방관은 “67개의 특수 위성을 포함, 최소 260개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위성이 전장에서 우크라이나 군대를 지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지난 20일(모스크바 현지시간) 밝혔다.

독일 하원 분데스탁(Bundestag)은 러시아 후방의 전략적 목표물 파괴를 위한 장거리 무기시스템을 우크라이나에 공급하기 위해 집권 연정그룹이 제출한 결의안 초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하원은 다만 우크라이나에 타우르스 순항미사일을 보내겠다는 야당의 발의안을 거부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27일(비엔나 현지시간) “유럽 국가들이 러시아 내부 깊은 곳을 공격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장거리 무기를 제공하는 속칭 ‘미사일 연합’을 창설하는 것은 자살 행위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러 동결자금 수익으로 우크라 돕자”

한편 미국과 영국이 스스로 동결한 러시아 자산을 현금화해서 우크라이나 재건을 돕자고 부추기자 유럽연합(EU) 등 집단서방이 잇따라 동조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정치적인 구호에 불과하고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단순히 러시아가 자국 보유 서방국가들의 자산을 압류해서 몰수하는 보복 때문이 아니라, 지구촌의 기초 신뢰와 질서를 무너뜨리는 행위이기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평가다.

유럽중앙은행은 러시아 자산 몰수 방안에 대해 진작부터 명확히 반대를 선언했다.

외교 문제로 채권을 압류하는 조치로, 국가 간 교역의 근간인 신뢰 통화 체계 전반을 무너뜨리는 행위라는 판단이다. 급부상하고 있는 브릭스 국가들과 글로벌사우스 국가들이 유럽이 러시아의 자산을 몰수하는 걸 지켜본 뒤에도 유로화 자산을 사겠는가라는 게 주된 판단 근거다.

국제금융시장에서 기축통화 유로화로 표시된 자산 비중은 계속 줄어들 것이며, 이는 러시아가 해외금융기관에 보유해온 달러화를 미 바이든 정부가 동결하면서 ‘달러 안 쓰기 운동’이 본격화 된 점과 똑같은 이치라는 설명이다.

미국 금융가에서도 러시아 동결 자산 몰수에 대해 찬반양론이 팽팽한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전문가들과 금융계 종사자들 대부분은 탈달러에 탈유로화까지 같이 진행돼 국제금융시장이 붕괴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외교가에서는 “외교 관계가 나빠졌다고 채권을 압류한다면, 사우디아라비아나 중국 등 집단서방이 쥐락펴락할 수 없는 경제대국들과 지구촌 수많은 국가들이 과연 미국이나 유럽 채권을 사겠는가”라는 반문이 나온다.

국제법을 거론하지만, 자국 제재를 국제법적 차원으로 여론몰이로 끌어가는 것이라는 판단이다. 서방국가들이 전쟁 후 2년이 지나도록 러시아 자산 몰수를 안 했던 이유는 객관적 입장에서 법으로 따져보니 맞지 않는 방식이라는 생각 때문으로 풀이된다.

국제금융 전문가들은 집단서방의 의도는 명백한 재산권 침해이며, 최근 러시아와 친밀해진 중국이 유럽의 이런 조치에 동의할 리 없다고 본다. 특히 러시아도 유럽에 본사를 둔 기업들의 운영자산이나 법인계좌, 합작투자 서방 기업 주식, 국채를 포함한 각종 채권을 압류, 몰수하는 보복이 가능하다. 실제 러시아 외무부는 동일한 방식으로 보복을 시사했다.

서방 국가들은 몰수방식이 갖는 잠재적 위험성을 의식, 자산은 그대로 두되 자산에서 나오는 자본이득을 우크라이나 재건에 쓰겠다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공공 부문이나 민간에서 러시아의 투자 및 자산으로부터 나오는 이익을 몰수한다는 합의에 접근하고 있는 것.

미국 정부와 함께 러시아 자산 몰수에 가장 앞장서 온 리시 수낙 영국 총리는 “먼저 자본이익을 우크라이나 재건 재원으로 쓴 다음 G7과 함께 합법적으로 러시아 자산을 압류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제법상 러시아의 피해 배상 의무는 분명하기 때문에, 러시아 자산을 동결 상태로 유지하면서 자본이익을 사용하는 게 문제될 게 없다는 것이다. 일부 EU 지도자들은 이런 조치에 러시아가 대응하더라도 국제재판소에서 EU가 이길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3월 중순 대통령선거를 앞둔 러시아는 군사적, 경제적으로 집요하게 공격해오는 유럽 때문에 잠 못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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