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초등교사,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 정책위원 정영현
현직 초등교사,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 정책위원 정영현

어렸을 때 학습만화에서 머리가 희고 헝클어진 아저씨를 보았다. 바로 상대성 이론의 창시자인 아인슈타인이다. 아인슈타인은 특수상대성이론에서 빛의 속도가 모든 사람에게 똑같다고 전제하였다. 그런데 만약 어떤 이가 달리는 기차 안에 있다면 바깥에 있는 것보다 시간이 느리게 가고, 이때 다른 사람이 기차 밖에서 시계를 보면 서로의 시간이 다르게 가게 되며 둘의 시간 모두가 맞다고 하였다. 즉, 시간의 동시(同時)는 누구에게나 같은 것이 아니라 관측자에 따라 바뀌는 것으로, 동시성의 불일치란 개념이 특수상대성이론에서 도출된다.

‘만화 캐릭터’ 같은 외모를 가진 과학자, 그리고 ‘상대성’이론의 창시자인 아인슈타인은 왠지 모르게 내게 요새 세간의 주목을 받는 주호민 작가와 특수교사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주호민 작가의 작품은 간접적으로 딱 하나 밖에 보지 못했다. 바로 ‘신과 함께’란 작품이다. 죽은 자는 저승법에 따라 7개의 관문을 거쳐 환승 여부를 결정받게 된다. 삶의 역경이 있던 시절, 나의 ‘관문’은 무엇이지? 라며 의문점에 휩싸이던 때에 웹툰이 영화화되어 보게 된 것이다. 아마 이번 사건도 각자에게 또 하나의 ‘관문’이 되고 있을 것이고, 그 통과 여부도 상대적이다. 

 주호민 작가는 자폐 증세가 있는 아들의 담당 특수교사를 아동학대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현재 특수교사는 아동학대처벌법 및 장애인복지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되어 1심에서 정서적 학대 혐의로 유죄(벌금 200만원)를 선고받고 이 형의 선고유예를 받았다. 현재 쟁점이 되고 있는 부분은 주 작가의 아내가 교사 몰래 아들에게 녹음기를 넣어 녹음한 녹취록이 아동학대의 증거로 인정되느냐이다.

2일 1심 재판부는 발달장애 아동의 경우 몰래녹음 하는 행위가 형법 20조의 ‘정당행위’, 즉 “기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에 해당한다고 보면서 녹취록과 2차 증거의 적법성을 인정했다.

그러나 앞서 대법원은 1월 11일에는 초등교사의 아동학대를 의심한 학부모가 초3 자녀 가방에 몰래 녹음기를 넣어 수업을 녹음한 사건에서는 몰래 녹취한 수업 중 발언을 ‘공개되지 않은 타인간의 대화 녹음’으로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라 증거로 쓸 수 없다고 판결한 바 있다. 

 ‘일반 초등학교 3학년 학생과 발달장애 아동을 똑같이, 즉 동시(同視) 대우해 법을 적용할 수 없다’ 이것이 이번 판결의 논리일테다. 그렇다. 우리는 항상 모든 사람을 같게 대우하고, 모든 법을 다른 상황에 똑같이 적용해서는 안될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아야 한다. 판결이라는 것은 개인과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파장을 일으킨다. 특히, 작년에 교육 현장을 뒤흔들었던 서이초 사태가 있었던 것을 고려할 때 이번 판결이 교육 환경에 어떤 파동의 모습으로 돌아올지 염려된다. 

 기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행위는 벌하지 아니하는 「형법 20조의 정당행위」에 해당하는 판례가 앞으로 얼마나, 상황 혹은 사람의 다름, 즉 동시(同視)가 아님으로써 필연적으로 생길 수 밖에 없는 상대성으로 인해 생길지 모를 일이다. 

 교사들은 진정 관찰자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감시하는 ‘파놉티콘(Panopticon)’ 속에서 인간을 기르는 ‘교육(敎育)’을 행해야 한다. 아, 얼마나 아이러니한 상황인가, 교사에게는 콘크리트 디스토피아, 몰래 녹음하고 교사를 불신하는 학부모에게는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되는 파놉티콘으로써의 학교, 그것이 우리가 바라는 것인가? 필연적인 상대성을 인정하고, 학생들에게만 회복적 생활교육을 하자고 하지 말고, 우리도 어우러져서 살아갈 수는 없는 건가? 요새는 보이지 않는, 또는 대놓고 너무 보이는 대립 구도가 형성되는 것 같다.

우리가 가야 할 길과 아이들에게 보여줘야 할 교육의 모습이 무엇인가? 상대성을 전제하고 나와 너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법을 보여주고 가르치는 것이 학교 아닐까.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