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신하들이 모두 모여 축하를 했다. 그 자리에 제나라에 사자로 갔던 대부 신숙지가 돌아왔다. 그는 축하의 말을 하지 않았다. 장왕이 그 까닭을 묻자 그가 대답했다.

“세상에서 비유하기를 소를 끌고 남의 밭을 지나가면 그 밭의 주인에게 소를 빼앗긴다고 합니다. 소가 밭을 밟아 망가뜨리는 것은 틀림없이 나쁜 일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소를 빼앗는 것도 지나친 일이 아니겠습니까? 군주께서는 주군을 암살한 하징서의 죄를 징벌한다고 제후들의 동의를 얻어 정의의 이름 아래 토벌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끝나자 진(陣)나라 영토를 모두 차지해 버렸습니다. 그러시면서 앞으로 어찌 천하를 호령하시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축하의 말씀을 드리지 않은 것입니다.”

신숙지의 말을 들은 장왕은 그 말을 수긍했다.

장왕은 서둘러 진(陣)나라의 영토를 되돌려 주고 진(晋)나라로 가 있던 영공의 아들 태자 오를 진나라 왕의 자리에 앉혔다. 그가 바로 성공이다.

예전에 공자가 사관 기록을 읽다가 초나라가 진(陣)나라를 재건시킨 대목에 이르자 크게 감탄했다고 한다.

“초나라의 장왕이야말로 훌륭한 사람이다. 나라 하나를 얻은 것보다 자신의 말 한 마디를 더 소중하게 생각했으니.”

진(晋)나라 경공(景公) 11년 봄.

초나라 신공 무신은 하희와 진(晋)나라로 망명했다.

하징서가 죽은 뒤 9년 뒤의 일이요, 장왕이 죽은 지 2년 뒤의 일이다. 진(晋)의 경공은 망명 온 무신을 형(邢)의 대부에 임명했다. 진나라 경공 16년에 초나라에서는 장군 자반이 하희의 일을 들어 무신의 가족들을 모두 죽였다. 무신은 크게 화가 나서 진(晋)나라에서 자반에게 편지를 보냈다. “두고 봐라, 네 자식들을 반드시 죽게 만들 것이다.”

무신은 경공에게 오(吳)나라로 떠나는 외교 사절의 임무를 맡겨 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같이 간 아들을 외교관으로 삼아 오나라 왕에게 봉사하게 한 다음 자기는 병거에 의한 전법을 오나라 군대에 가르쳤다.

무신의 영향으로 오나라와 진(晋)나라는 처음으로 국교를 맺고 초나라를 칠 맹약을 맺었다.

장왕 17년 봄에 초나라는 정(鄭)나라를 침공해서 3개월 동안 포위한 끝에 마침내 항복시키고 말았다. 장왕은 정나라 성문으로 들어갔다. 정(鄭)나라 양공(襄公)이 마중을 나왔다. 양공은 순응하겠다는 뜻으로 웃통을 벗고 양을 끌고 있었다. 정나라 양공이 장왕에게 말했다.

“저는 하늘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군왕을 받들지도 못해서 노여움을 샀으며 마침내 어가를 맞이하게 됐습니다. 이것은 모두 다 저의 죄입니다. 그러한 까닭에 군왕의 어떠한 명령에도 복종하겠습니다. 멀리 남해 바다 끝으로 쫓아내시더라도 또는 종으로 만들어 제후에게 하사하시더라도 아무런 이의가 없습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 정나라 조종(祖宗)의 덕을 살피시어 종묘사직에 대한 제사가 끊이지 않게 신하의 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신다면 실로 천만다행이겠습니다. 이것은 진실로 제 가슴 속에서 진심으로 우러나는 말입니다.”

그 말이 끝나자 장왕의 신하들은 모두 반대를 했고 장왕의 말을 제지를 했으나 왕은 신하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이처럼 겸손한 인물이라면 백성들을 잘 다스렸을 것이 틀림없소. 쳐부실 이유가 없다.”

장왕은 손수 전군을 지휘하여 30리를 물러 선 다음 그곳에 머물렀다. 그렇게 정나라에 대한 예의를 갖춘 다음 화의를 받아들였다. 초나라에서는 대부 번왕이 나와 맹약을 맺고, 정나라에서는 정왕의 아우 자양을 볼모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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