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제1차 비상경제장관회의 겸 물가관계장관회의를 하고 있다. 2024.01.18.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제1차 비상경제장관회의 겸 물가관계장관회의를 하고 있다. 2024.01.18.

정부가 설을 앞두고 ‘설 민생안정대책’을 내놨다. 지금껏 없었던 40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규모의 돈을 풀어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을 지원하겠다는 게 골자다.

좀 더 살펴보면 이번 대책에는 성수품 집중 공급을 비롯해 소상공인·자영업자 이자 부담 완화, 온누리상품권 확대, 취약계층 전기요금 인상 유예,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 등이 담겼다. 성수품 물가 안정과 민생 지원, 관광 활성화 등도 포함됐다. 상반기 중 약자 복지, 일자리,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등을 중심으로 65% 이상의 재정을 집중 집행하겠다고도 했다.

분명 서민들에게는 가뭄 속의 단비와도 같은 소식이다. 그러나 지난 설이나 추석 때 내놨던 대책과 크게 다르지 않다. ‘확대’라는 표현만 더해졌을 뿐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벌써부터 나온다.

그중에서도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는 더는 대책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의 단골 메뉴다. 명절 때마다 내놓는 온누리상품권 구매 한도 상향 등도 해마다 명절 대책으로 나왔던 사안들이다. 이번 대책이 새로운 것 없는 총선용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당정은 예년과 다른 명절 민생대책으로 2금융권 이자 부담 완화를 내세웠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에 대한 대출이자 경감을 제2금융권으로 확대하겠다는 건데, 진정 민심을 생각하는 정책인지 의구심이 든다.

그도 그럴 것이 고금리·고물가에 소비 부진까지 겹치면서 수많은 자영업자·소상공인들이 이미 빚더미에 나앉은 상태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말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3분기 말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1052조 6000억원에 달한다. 1년 전과 비교하면 38조 5000억원 늘었다.

특히 대출 연체율이 2022년 말 0.69%에서 지난해 3분기 말 1.24%로 빠르게 상승하면서 소상공인들의 금융 부실 우려가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폐업 공제금 규모가 처음 1조원도 돌파했다. 소상공인 금융 상황이 벼랑에 몰렸다는 의미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은행 대출이자를 깎아주겠다더니 이번에는 제2금융권이다. 생계 현장에 들어가 보면 2금융권으로도 안 돼 신용카드회사 등 3금융권과 사채에 이어 고리대금업체로도 번지는 사례가 적지 않다. 대출을 늘리기보단 취약층 기금을 조성하는 식의 직접적 지원이 이뤄지는 게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더욱 크게 들린다.

이 또한 시행시기는 설 연휴인 2월이 아닌 3월이라고 한다. ‘표’에는 도움이 될지 모를 일이지만 민생안정대책보다는 총선 대책을 떠올리게 한다. 명절 때면 꼬박꼬박 민생을 챙겨야 하는 정책의 어려움은 이해하나, 대책이라고 내놓는 게 매번 유사한 방식으로 되풀이되면 정책에 대한 신뢰도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다만 눈에 띄는 게 있기는 했다. 취약계층 365만 가구에 대한 전기요금 동결 등 복지 지원책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취약계층에 대해선 전기요금을 감면하는 게 아니라 인상을 유예했다는 말이 나온다. 총선 이후 전기요금 폭탄으로 나타나지 않을지 우려되는 대목이다.

정부는 민생 회복이라면 뭐든 다해보겠다는 정책적 의지를 갖추고 후속 조치를 속도감 있게 이행하겠다고 했다. 그러려면 현장에 임금이 밀리고 있진 않은지, 하도급 대금이 제때 지급되고 있는지 등을 면밀히 살펴야 한다. 경기 침체 악화를 막기 위해 부유한 이들과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돈을 쓰도록 하거나 소·중소기업 등 산업 경제계의 성장 발목을 잡는 각종 악성 규제를 풀어줄 필요도 있다.

많은 국민들이 고물가와 고금리, 고유가로 어려움을 겪는 만큼 ‘언 발에 오줌 누기’가 되지 않도록 총선을 앞둔 선심성 정책보다 진정 민생을 위하는 정책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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