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각기 힘자랑 벌이는 양상

국내 정치 활용하는 듯해 우려

北‘대내 결속’-南‘총선 세결집용’

미일엔 ‘관계 개선’ 의지 드러내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조선반도에서 압도적 힘에 의한 대사변을 일방적으로 결정하지는 않겠지만 전쟁을 피할 생각 또한 전혀 없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8~9일 중요 군수공장을 현지지도한 자리에서 "대한민국 족속들을 우리의 주적"으로 단정하면서 이같이 밝혔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0일 보도했다. 2024.1.10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조선반도에서 압도적 힘에 의한 대사변을 일방적으로 결정하지는 않겠지만 전쟁을 피할 생각 또한 전혀 없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8~9일 중요 군수공장을 현지지도한 자리에서 "대한민국 족속들을 우리의 주적"으로 단정하면서 이같이 밝혔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0일 보도했다. 2024.1.10

[천지일보=김성완 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연말 전원회의에서 남북 관계를 동족 관계가 아닌 적대 국가로 규정하며 ‘영토 평정’을 얘기하더니 10일에는 ‘대한민국은 주적’이라며 ‘초토화’를 거론하는 등 한층 대남공세 수위를 높였다.

남측의 주적 개념에다 초토화 계획(작계5015)에 맞대응하는 양상인데, 남북이 끊임없이 어금지금 맞서는 행태에 전문가들은 남북이 상호 적대적 의존성 관계에 매몰돼 있다고 지적한다.

‘적대적 의존성’은 서로 주먹 자랑을 벌이면서 서로 밀리지 않겠다는 것, 즉 그래야 자신의 위신이 올라간다고 믿는 양태로 결국은 이를 통해 남북이 각각 국내 정치와 연결 짓는 모습이라 우려도 크다.

북한은 대내 결속을 확보하고 남한은 총선을 앞두고 극우‧보수 세력 결집에 활용하려 든다는 게 전문가들의 강조점이다. 남측은 국방 수장이 나서 올해 4월 총선에 영향을 미치고자 북측이 의도적으로 긴장을 끌어올리는 것 같다며 정치적 해석을 할 정도다.

특히 북한이 지난 5∼7일 사흘 연속 서북 도서 북방 인근, 해상완충구역이지만 북방한계선(NLL) 북방 일대에서 방사포와 야포 등을 발사한 것도 연말 남측의 1주일간의 사격 훈련에 대한 대응 차원인데, 이를 쏙 빼놓고 북한 도발만을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 마치 북풍 기우제를 지내는 것 같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남북 대치 역시 어느 한쪽 탓이 아닌 상호 작용의 연속 차원이라는 설명이다. 깡패 국가에 대한 단속을 ‘잘 달래가며 관리를 하느냐’ ‘강대강 기조로 맞서느냐’는 정권의 대북정책과 맞닿아 있어 차후 역사가 판단하겠지만 한없는 자존심 싸움은 한반도 평화와는 멀어질 수밖에 없음은 분명하다.

◆김정은, ‘주적’ 규정하며 ‘초토화’ 위협

김 위원장은 8~9일 군수공장을 둘러보며 “대한민국 족속들은 우리의 주적”, “대한민국을 완전히 초토화해 버릴 것”, “전쟁을 피할 생각은 전혀 없다” 등 강경 발언을 쏟아냈고 조선중앙통신이 10일 보도했다.

이날 발언은 남한을 겨냥하기 위한 단거리 탄도미사일용 발사대 생산 공장을 시찰하는 현장에서 나왔는데, 특히 윤 정부의 주적 개념에 대응해 김 위원장이 직접 주적이라고 언급한 것은 처음이라 이목이 집중됐다.

전문가들은 지난해 연말 전원회의에서 김 위원장이 남북 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하고 대남노선 방향 전환을 선언한 데 대한 연장선으로 내부적으로 적개심을 고취시켜 주민들을 결속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통화에서 “북한은 경제난에 허덕이는 주민들을 단속하기 위해 한국에 대한 적대감을 활용하고 있다”면서 “한국 정부를 주적으로 간주하고 이전에도 남한 평정을 준비하라고 직접지시를 했는데, 그 연장선상의 발언이라고 생각한다”고 진단했다.

통일부는 이날 배포한 입장문에서 “북한이 대남 무력통일 야욕을 다시 한번 드러냈다”며 “북한이 전쟁 준비를 강조하는 것은 한미 확장억제 증강 등 억제력 강화에 대해 두려워하고 초조해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북한이 연초부터 무력 도발 위협 등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면서 “이런 북한의 망동은 북한 주민들의 대남 적개심을 고취시켜 북한 체제에 대한 불만을 외부로 돌려 내부 위기를 모면하는 한편 우리 사회를 흔들어 보려는 구태의연한 전술일 뿐”이라고 규탄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무모한 군사적 위협 책동과 대남 심리전을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北매체 신형 전술유도탄 공개 배경은

북한 매체들이 배포한 사진에는 김 위원장이 단거리 탄도미사일 이동식 발사대 차량 등이 수십대 진열된 공장에서 간부들에게 지시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전문가들은 사진상 무기가 북한이 2022년 4월과 2023년 3월 두 차례 발사했던 신형 전술유도무기 전선장거리포병부대용 근거리 미사일인 것으로 파악했다.

통일연구원 홍민 박사는 미국의소리(VOA) 방송에 “‘화성-11라형’으로 알려진 이 무기는 사거리가 150~200㎞이고 전술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지난 4일 장거리 탄도미사일 ‘화성-18형’ 발사대 차량에 이어 근거리 탄도미사일도 양산체계에 이미 돌입해 있다는 것을 과시하려는 의도”라고 언급했다.

아산정책연구원 양욱 박사는 VOA에 “북한의 전술핵 미사일인 KN-23을 약간 축소해서 만든 신형 전술유도무기로 전방부대의 대남 공격용 미사일”이라며 “사거리가 200㎞가 넘지 않고 특히 전방부대에 배치하지 않으면 상대적으로 의미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무기체계인데, 굳이 저것 앞에서 찍고 저 사진만 강조한 것은 이걸 전방에 갖다 놓고 우리가 너희들을 핵으로 공격할 수 있어 이걸 보여주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이 중요 무기체계들의 생산 과정에서 “새로운 생산기술 도입”, “생산공정 확립, 생산 능력 확장, 혁신적 개건 현대화”를 강조한 대목은 러시아와의 군사협력을 염두에 둔 발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홍 박사는 “북한이 러시아에 무기를 공급하면서 내부 군수 수요도 확충하는 일거양득의 대량생산체계 구축을 위해 러시아와 협력할 가능성이 있다”며 “북한 입장에선 자신들의 내부 군수 수요를 일정하게 이런 지원을 받아서 양산체계로 갖추는 기회로 삼을 수 있기 때문에 상당히 호기로 볼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미일 공조 흔들기 시선도

남측에 강경 발언을 쏟아내는 것과는 반대로 미국에는 비교적 발언 수위를 낮추고 일본에는 지진 위로를 하는 등의 최근 북한의 달라진 행태를 한미일 공조 흔들기라는 시선과 연관짓는 풀이도 있다.

북한의 ‘말폭탄’이 남측에 집중되고 상대적으로 미국에 대해서는 정제된 태도를 보이는 듯한 변화에 주목하는 시각이다. 올해 11월에 있을 미국 대선 결과에 기대감을 갖고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 최근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관영매체에서는 이전과는 달리 미 제국주의를 뜻하는 ‘미제’대신 ‘미국’이라는 국호를 사용하는 경우가 훨씬 많아지고 있다. ‘막무가내 비난이 여전하다’는 점에서 과한 해석이라는 일각의 지적도 있다.

다만 북한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기 위해선 끝내는 미국과 협상해야 한다는 점을 염두에 둔 포석 아니냐는 것인데, 도널트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들어설 때나 가능한 얘기다. 조 바이든 행정부 2기로 이어진다면 지금과 같은 ‘관리’에 방점을 둔 기조가 이어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트럼프 2기가 들어서도 북미 간 협상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핵미사일 고도화를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는 북한의 몸값이 하노이회담 때와는 천양지차여서 협상에 있어 난관에 봉착할 것이라는 견해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하면 북핵을 용인하고 핵동결이나 핵군축 협상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여전하다.

또 한편에선 북한이 일본과의 관계 개선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다는 점이다. 한미일 안보 협력을 느슨하게 만들어 보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는 의견과도 일맥상통된다. 지난해 북일 정상회담을 위해 실무협상까지 갔다가 결렬됐다는 소식에 이어 지난 6일에는 김 위원장 명의로 일본 기시다 후미오 총리에게 일본 지진 피해를 위로하는 서한에서 ‘각하’라는 표현을 쓴 데서 속내를 추정할 수 있다.

한 전문가는 “북한 경제 사정이 좋지 않다. 일본과의 과거사 등 협상을 통해 비용을 촉구하는 등 돌파구 마련을 위한 과정으로 보인다”며 “통미봉남에 이은 ‘통일봉남(일본과 통하고 남한을 봉한다)’ 전술의 일환일 수 있다. 일본과의 대화나 접촉을 진행할 북한 측의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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