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 이후 분쟁 최다
가자 전쟁 중동 확전 우려 최고
러-우크라 협상 기미 안 보여
11월 美 대선 결과 전쟁 영향
서방 vs 反美 신냉전 재편 주목

지난 10월 7일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무장세력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향해 로켓을 발사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지난 10월 7일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무장세력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향해 로켓을 발사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천지일보=이솜 기자] 새해가 고작 일주일 지났지만 벌써부터 세계 곳곳에 피비린내가 진동한다.

전 세계적으로 전쟁을 종식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은 실패하고 어떤 분쟁들은 주목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더 많은 지도자들이 국가를 무기화하고 전쟁을 통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믿는 지도자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에 감소세를 보였던 전쟁은 2012년경부터 다시 증가하고 있다.

2011년 아랍권 봉기로 촉발된 리비아, 시리아, 예멘의 분쟁이 그 시초다. 리비아의 불안정은 남쪽으로 확산돼 사헬 지역의 장기적인 위기를 촉발시켰다.

ⓒ천지일보 2024.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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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을 둘러싼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의 전쟁, 몇 주 후 시작된 에티오피아 북부 티그레이 지역의 끔찍한 전투, 미얀마 군부의 2021년 권력 장악과 러시아의 2022년 우크라이나 공격으로 촉발된 분쟁 등 새로운 주요 전투의 물결이 이어졌다. 여기에 2023년에는 수단과 가자지구의 황폐화까지 더해졌다.

유럽과 중동에서 벌어지는 각각의 전쟁도 2024년 전후로 격화하는 양상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곧 3년째 전쟁을 지속하게 되며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전쟁은 언제 중동 지역 분쟁으로 확산할지 모를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올해도 전쟁으로 인한 무고한 희생자들의 눈물이 이어지겠지만 희망이 아예 없진 않다. 또 전쟁의 당사국뿐만 아니라 이들의 동맹, 적국들의 행보, 국제기구의 결단과 개혁도 주목할 부분이다.

외신과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한 올해 세계 곳곳 분쟁 전망을 살펴본다.

ⓒ천지일보 2024.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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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가자지구 누가 장악하는지 관건

“오늘날 중동은 지난 20년 동안보다 더 조용하다.”

작년 9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발언이다. 불과 일주일 후 하마스의 공습으로 전면전이 발발했다. 전쟁에 대한 미래를 예측하기가 결코 쉽지 않으며 심지어는 어리석어 보일 수 있음을 잘 보여주는 예시다.

올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의 전쟁에서 가장 우려되는 점은 광범위한 중동 분쟁의 위험이다.

이란의 지원을 받는 레바논 준군사조직 헤즈볼라와 이스라엘군 간의 국경 공습이 늘어난 가운데 최근 바그다드 주재 미국 대사관에 대한 공격과 같이 이라크에서 이란의 지원을 받는 세력의 대리 공격이 점점 더 대담해지고 있다. 지난 2일엔 하마스의 3인자인 살레흐 알아루리 정치 부국장이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서 이스라엘에게 살해당하면서 헤즈볼라가 복수를 경고하기도 했다.

또 이란의 지원을 받는 예멘의 후티 반군이 홍해와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 글로벌 운송 경로에 대한 추가 공격으로 에너지 가격이 치솟을 수 있다.

최근 미국의 지속적인 압박으로 이스라엘군이 앞으로 몇주간 가자지구에서 5개 여단을 철수한다며 ‘저강도 작전 전환’을 시사했지만 실제 저강도 작전이 전개될지는 불투명하다. 다만 이스라엘군이 최근 거듭 밝힌 것처럼 최소 몇 달이 걸리는 장기전이 전개될 전망이다.

5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남부 라파의 영안실 밖에서 아부 신자르의 가족들이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사망한 친척들을 애도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5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남부 라파의 영안실 밖에서 아부 신자르의 가족들이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사망한 친척들을 애도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이 지역의 다른 극단주의 단체들이 기회주의나 불만에 불을 붙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 10월 7일 이전에 성사될 것처럼 보였던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 간의 공식적인 관계 정상화는 이제 테이블에서 제외됐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에 대한 미국의 초기 분명한 지지는 인권과 국제법을 보장하는 국가로서의 이미지를 손상시켰고, 이는 기조 변화에도 단기간에 회복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게 가자지구의 막대한 인명 손실에 대한 인내심이 바닥나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그의 행정부는 군사 지원이나 무기 및 군수품 판매를 삭감하지 않을 예정이다.

중동 정세 전문 기자인 모하마드 알사핀은 최근 더 네이션 기고에 “이스라엘은 국제사회의 압력에도 하마스를 완전히 제거하겠다는 목표를 굳건히 지키고 있지만 몇 달 동안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결과는 군사력과 정치 운동 모두에서 하마스가 살아남는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렇다면 이제 관건은 이스라엘이 주요 목표를 얼마나 달성하는지와 휴전 여부, 연말에 가자지구를 누가 장악하게 될지다.

이후에는 가자지구 ‘전후 논의’가 본격화할 수 있다.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는 가자지구의 통제권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넘기는 ‘두 국가 해법’을 권유한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에게 이는 논외 절충안이다. 네타냐후 총리는 전쟁이 끝난 후에도 자신의 군대가 가자지구에서 ‘무기한’으로 전반적인 안보 책임을 유지할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이 전쟁은 이미 세계 곳곳 올해의 정치 지형을 재편하고 있으며 오는 11월 미국 선거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하마스에 억류된 이스라엘 인질들의 가족과 지지자들이 석방을 촉구하는 집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출처: 뉴시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하마스에 억류된 이스라엘 인질들의 가족과 지지자들이 석방을 촉구하는 집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출처: 뉴시스)

◆“러시아 대선 후 軍 동원 전망”

오는 2월이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3년째로 접어든다.

러시아나 우크라이나 모두 양립할 수 없는 목표를 달성하거나 타협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생존, 영토 보전, 주권을 위해 싸우고 있는 반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비무장화, 그리고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및 기타 서방 기구 가입을 막으려 하고 있다.

이에 2024년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교착 상태에 빠진 해가 될 수도 있다.

발레리 잘루즈니 우크라이나군 총사령관은 지난달 전쟁이 어느 정도 교착 상태에 이르렀다고 인정하며 전장에서 중대한 기술적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한 “깊고 아름다운 돌파구는 없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또 “러시아가 발표한 올해 국방비 지출이 공산주의 붕괴 이후 처음으로 국내총생산(GDP)의 6%를 넘어선 것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을 조만간 끝낼 의사가 없음을 보여준다”고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은 분석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올해 전년보다 더 자신감있게 한 해를 시작했다.

우크라이나는 작년 목표했던 기세를 되찾지 못했다. 러시아는 이란과 북한에게서 전쟁 비축 물자를 받고 있다. 또한 올해 병력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을 우크라이나와 달리 세계 최대 면적의 러시아는 병력 면에서 항상 수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

더 인터프리터는 푸틴 대통령이 오는 3월 재선 이후 본격 군 동원을 할 수 있다고 예측했으며 아직 계엄령 속에 있는 우크라이나는 올해 선거를 강행할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유럽은 우크라이나에 공급할 수 있는 탄약과 군사 장비가 제한돼 있으며, 자체 재고도 고갈된 상태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가장 우려했던 자국 지원에 대한 서방의 단결 균열도 현실화하고 있다.

올해 미국과 유럽연합(EU)는 모두 큰 선거를 치르면서 국내 문제를 우선시할 것이기 때문에 올해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경제적 지원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다만 우크라이나가 올해 정식으로 EU 회원국이 된다면 전쟁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또 분쟁의 미래는 우크라이나의 가장 큰 재정적, 군사적 지원의 원천인 미국의 주도권이 누구에게 있느냐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 러시아는 올가을 공화당의 유력 주자인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복귀를 선호한다.

우크라이나 육군 장교 바실 메드비추크의 어머니가 지난달 29일 우크라이나 크라스닉 마을에서 아들의 장례식을 치르며 오열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우크라이나 육군 장교 바실 메드비추크의 어머니가 지난달 29일 우크라이나 크라스닉 마을에서 아들의 장례식을 치르며 오열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신뢰 바닥난 유엔 안보리 개혁 주목

동유럽과 중동에서 벌어진 전쟁에서 볼 수 있듯 세계는 지정학의 변곡점에 서 있다.

서구 패권주의의 분열이 현실로 다가왔다는 평가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의 일극 체제를 노리고 있다.

지정학적 힘의 축이 느슨하게 재편되면 미국과 EU가 한 축을 이루고 중국, 이란, 러시아, 북한으로 구성된 반(反)미 지역이 다른 축을 이루게 된다. 이로 인해 더 위험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환경이 조성되는 양상이다.

올해 확실히 이런 변화는 가속화할 예정이다. 비동맹 국가들의 태도와 브릭스(BRICS)와 같은 경쟁 블록의 부상은 변수 중 하나다. 영토 분쟁과 국수주의도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서 가장 많은 분쟁이 발발한 지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거부권 사용 증가로 초국가적 기관의 능력에 대한 신뢰가 추락한 문제도 올해 지켜볼 부분이다.

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가 열렸다. 이날 홍해에서의 예멘 후티 반군의 공격에 대해 논의가 이뤄졌다. (출처: 뉴시스)
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가 열렸다. 이날 홍해에서의 예멘 후티 반군의 공격에 대해 논의가 이뤄졌다. (출처: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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