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김민희·유영선·홍보영·홍수영 기자] ‘황금 토끼의 해’라고 불린 계묘년(癸卯年)도 어느덧 마무리되고 새해 경진년(庚辰年)을 코앞에 두고 있다. 다사다난했던 올해는 봄부터 전남지역에 역대 최악의 가뭄으로 시달렸는가 하면 교권침해 의혹으로 서울 서이초등학교의 새내기 교사의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지면서 전국 교사들의 교권 강화 운동이 일었다. 또 전세사기와 세계적인 행사인 새만금 잼버리 파행,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는 법원과 검찰을 오가는 게 일상인 해였다. 아울러 마약 사건이 그 어느 때보다 성행했고 흉기난동에 살인예고까지 잇따라 국민들의 공포가 확산하기도 했다. 본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던 2023년을 돌아보며 주요 이슈를 살펴봤다.

5일 오후 대전전세사기피해대책위(대책위)와 지역 피해자들 220여명이 대전 서구 둔산동에서 정부의 과실 인정 요구와 배상을 촉구하며 정부 여당과 대전시를 규탄하는 거리 행진을 하고 있다. 피해자들은 갤러리아타임월드 앞에서 대전시청 잔디광장으로 이동해 집회를 진행했다. 2023.12.5. (출처: 연합뉴스)
5일 오후 대전전세사기피해대책위(대책위)와 지역 피해자들 220여명이 대전 서구 둔산동에서 정부의 과실 인정 요구와 배상을 촉구하며 정부 여당과 대전시를 규탄하는 거리 행진을 하고 있다. 피해자들은 갤러리아타임월드 앞에서 대전시청 잔디광장으로 이동해 집회를 진행했다. 2023.12.5. (출처: 연합뉴스)

◆전국서 들끓었던 전세사기

올해는 전세 사기가 전국에 들끓었던 해다. 지난 20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전세사기특별법을 시행한 지 약 6개월 만에 특별법이 규정한 전세 사기 피해 사례는 1만건을 넘어섰다. 피해자의 대부분은 10~30대 청년층. 피해자 7명은 목숨을 끊었다.

전세 사기범들의 사기 규모가 상당해 ‘건축왕’ ‘빌라왕’이라는 별칭까지 붙었다. 일명 ‘건축왕’으로 불리는 건축업자 A씨는 인천 미추홀구 일대 아파트와 빌라 등 공동주택 563채의 전세보증금 453억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A씨는 바지 임대인, 공인중개사, 중개보조원 등과 함께 집단으로 전세 사기를 벌였다. A씨는 지난 6월 재판에 넘겨졌다.

A씨가 활동한 인천 지역은 전세 사기가 가장 심각했던 지역으로 꼽힌다. 지난 7월까지 인천경찰청에 신고된 전세 사기 피해자들은 800여명, 피해액은 1300억원에 달한다.

부산에는 임차인 118명으로부터 보증금 315억원을 가로챈 전세 사기범이 나타났다. ‘빌라왕’ B(31)씨는 부동산 매매계약과 비슷한 시기에 집값과 같거나 높은 가격으로 전세 계약을 체결했다. B씨는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받아 매매대금을 지불한 뒤 나머지는 분양대행업자 등에게 리베이트하는 수법을 사용했다. B씨는 이 같은 방식으로 돈 한 푼 없이 빌라 수백채를 매수했다. B씨는 1심에서 징역 12년형이 선고됐다.

이외에도 경기 화성 동탄신도시, 경기 수원 등으로 전세 사기가 뻗어갔다.

전국의 전세 사기 피해자들은 실효성 있는 특별법 개정을 요구하며 집회를 열고 있다. 피해자들은 ‘선구제 후회수’를 호소하고 있다.

◆기상관측 이래 최악 가뭄에 시달린 전남

지구 온난화가 가속화하면서 기후위기에 직면한 가운데 올해 특히 전남 지역에서는 가뭄으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전남지역은 지난해 말부터 올해 4월쯤까지 기상관측 이래 최악의 가뭄으로 주요 상수원인 주암댐 저수율이 20~30%에 그쳤고 농업용 저수지도 메말라 농업용수 부족에 시달려야 했다. 지난 3월 전국 농업용수 저수지 현황을 살펴보면 전남(54.7%)의 저수율은 제주(49.6%)에 이은 최하위권을 기록했었다. 전남 일부 섬 지역의 가뭄은 더 심각했다. 지난해부터 제한급수가 시행됐고, 일주일에 하루나 이틀만 수돗물을 사용할 수 있었다. 전남 완도군 보길도 주민의 경우 수돗물을 이틀 사용하면, 6일간 제한급수를 견뎌야 하기도 했다. 지난 5월 이어진 강수로 제한급수가 모두 해제되는 등 가뭄이 해소됐다.

광주·전남에 가뭄이 이어지는 상황에 19일 오후 전남 화순군 사평면 주암호 상류 일부 강바닥이 메말라 갈라진 채 모습을 드러냈다. (출처: 뉴시스) 2023.03.19.
광주·전남에 가뭄이 이어지는 상황에 19일 오후 전남 화순군 사평면 주암호 상류 일부 강바닥이 메말라 갈라진 채 모습을 드러냈다. (출처: 뉴시스) 2023.03.19.

◆한일관계 개선 위한 강제징용 해법 논란… 배상판결은 계속

윤석열 정부는 3월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일본 피고 기업 대신 국내 기업에게 지원을 받아 피해자들에게 판결금을 지급한다는 이른바 ‘제3자 변제’ 방식의 강제징용 배상책임 해법을 내놨다.

앞서 대한민국 대법원은 지난 2018년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주며 일본 기업이 배상해야 한다고 확정판결했다. 피해자 15명 중 11명 측은 배상금을 수용했으나, 남은 피해자들과 유족, 시민단체, 야당 등은 강하게 반발했다.

정부의 제스처에 일본은 화답했고, 관계 개선의 하나로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올해 7번이나 정상회담을 가졌다.

하지만 그사이 법원에선 강제징용 배상판결이 이어졌다. 대법원은 지난 21일 원고 승소 판결을 확정하면서 일본제철 등의 배상책임을 인정했다. 남은 재판은 또 있다.

◆전국 교사들의 외침으로 세운 ‘교권 보호 4법’

올 한해는 무너진 교권을 바로 세우는 운동의 한해였다. 그 결과 ‘교권 보호 4법’이 통과되고 학생생활지도 고시가 시행됐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7월 서울 서이초등학교 내에서 새내기 교사가 교권침해 의혹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하면서 시작됐다. 전국 교사들은 “수위는 다를 수 있지만 전국의 교사들이 비슷한 일들로 많이 고통받고 있다”고 공감하며 분노가 확대됐다. 전국 교사들은 폭염 속에도 매주 토요일 대규모 집회를 열고 서이초 교사를 추모하며 정당한 교육활동에 침해받지 않도록 교권확립을 위해 마음을 모았다. 교권 회복 운동 끝에 교사의 정당한 생활 지도에 아동학대 면책권을 부여하는 내용 등을 담은 ‘교권 보호 4법’이 지난 9월 국회를 통과했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12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일대에서 열린 서이초 교사 추모 및 교권회복 촉구 집회에서 교사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8.12.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12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일대에서 열린 서이초 교사 추모 및 교권회복 촉구 집회에서 교사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8.12.

◆새만금 잼버리 파행에 국가적 망신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가 부실하게 운영되면서 국가적 망신을 샀다.

무더운 여름인 8월에 열린 잼버리에선 폭염과 이에 따른 온열 질병, 창궐한 벌레 등으로 인해 청소년 스카우트 대원들이 속절없이 쓰러졌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잼버리 숙영 참가자 4만 3000명 중 누적 환자 수는 8500명이었다.

정부는 어떻게든 파행은 면하려 했으나, 태풍이 다가오면서 결국 대원들은 예정보다 일찍 숙영지를 떠나야 하는 운명에 다다랐다. 이를 만회하고자 정부는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잼버리 폐막식을 겸한 대규모 K팝 콘서트를 열고 잼버리 참가 대원들을 불러 모았다. 정부의 무능을 K팝 가수들을 차출해 덥는다는 비난이 이어졌다.

이후에도 여성가족부와 조직위원회, 전라북도 등 가운데 파행 책임을 두고 공방이 계속됐다.

4명의 사상자를 낸 '신림동 흉기난동 사건' 피의자 조선이 28일 오전 서울 관악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2023.7.28
4명의 사상자를 낸 '신림동 흉기난동 사건' 피의자 조선이 28일 오전 서울 관악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2023.7.28

◆흉기난동에 살인예고 속출… 공포에 떤 대한민국

도심에서 행인을 흉기로 공격하는 범죄가 잇따르는 등 시민들이 불안에 떤 한해였다.

조선(33)은 지난 7월 21일 오후 서울 관악구 신림역 인근 골목에서 흉기를 휘둘러 20대 남성 1명을 살해하고 30대 남성 3명을 다치게 했다. 조선의 범죄 이후 유례없는 흉악범죄가 이어졌다. 최원종(22)은 지난 8월 3일 오후 5시 56분~오후 6시쯤 경기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 AK플라자 백화점 앞에서 차를 몰고 인도로 돌진해 시민 5명을 덮치고, 백화점 1~2층에서 소지한 흉기를 시민 9명에게 무차별 휘둘렀다. 차량에 치인 A씨(60대·여)와 B씨(20대·여)는 연명치료를 받다 숨졌다. 같은달 17일 최윤종(30)은 신림동 관악산생태공원과 연결된 목골산 등산로에서 피해자 C씨를 성폭행하려 철제 너클을 낀 주먹으로 무차별 폭행하고 최소 3분 이상 목 졸라 살해했다. 이후 온라인상에 ‘살인 예고’글이 마치 유행처럼 확산됐다. 신림역 흉기 난동 이후 한달여간 살인 예고 글 476건이 발견됐고 그중 235명이 붙잡혔다. 경찰은 특별치안 활동을 선포하고 거리에 특공대와 장갑차를 배치하기도 했다.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에 참가한 영국 대원들이 지난 6일 전북 부안군 야영장에서 철수를 위해 짐을 옮기고 있다. (사진출처: 연합뉴스)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에 참가한 영국 대원들이 지난 6일 전북 부안군 야영장에서 철수를 위해 짐을 옮기고 있다. (사진출처: 연합뉴스)

◆법원·검찰 1년 내내 들락거린 이재명 대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올해는 법원과 검찰을 오가는 게 일상인 해였다. 연초인 1월 10일부터 이 대표는 검찰에 출석했다. ‘성남FC 후원금 의혹’ 때문이었다. 민주당 대표가 된 뒤 첫 출석이었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는 올해 6번이나 검찰에 출석했다. 같은 달 27일과 2월 10일엔 대선전부터 이 대표를 괴롭히던 대장동 의혹과 위례 개발비리 의혹으로, 8월 17일엔 백현동 개발 특혜 의혹으로 검찰 포토 라인에 섰다.

9월엔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으로 2차례 검찰을 찾았다. 이때 이 대표는 단식 중이었다. 일본 오염수 방류와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논란 등에 근거한 ‘윤석열 정부 비판’이 이유였다.

이 대표는 구속의 위기도 겪었다. 2월 16일 검찰은 위례·대장동 의혹과 성남FC 의혹으로 첫 번째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9월 21일엔 대북송금과 위증교사 등 혐의도 적용돼 청구했다. 두 번 모두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부결됐다.

◆‘필수 지역의료’ 붕괴 직전… 힘 받는 의대증원

소아과·외과·응급의학과 등 필수 의료 분야는 붕괴 직전에 이르렀다. 응급실을 전전하다 환자가 사망하고, 부모들이 소아과 앞에서 긴 줄을 서는 ‘오픈런’이 전국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이에 올해 의료계 안팎에선 ‘필수 의료를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다. 지난 7일 마감된 내년도 전공의 지원에서 ‘빅5’로 불리는 대형병원에서도 필수 의료 분야는 대부분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정부는 올해 10월 ‘필수의료 혁신 전략’을, 지난달 21일에는 의대 정원 수요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정부가 전국 40개 의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오는 2025년까지 현 정원인 3058명 대비 2배에 달하는 최소 2151명에서 최대 2847명을 추가 증원하기로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한의사협회 등 의사단체는 “의료수가와 의료전달체계 등 근본적인 제도 변화 없이 의대 정원을 늘린다고 필수 지역의료가 살아날 수 없다”며 총파업 등 강경 대응을 예고하는 등 진통이 이어지고 있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추진에 반발하는 대한의사협회가 전체 의사 회원을 대상으로 총파업 찬반 투표를 시작했다. 사진은 11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의에 의대 증원 반대 촉구 현수막이 걸려 있는 모습. ⓒ천지일보 2023.12.11.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추진에 반발하는 대한의사협회가 전체 의사 회원을 대상으로 총파업 찬반 투표를 시작했다. 사진은 11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의에 의대 증원 반대 촉구 현수막이 걸려 있는 모습. ⓒ천지일보 2023.12.11.

◆‘마약과의 전쟁’ 선포에도 역대 최대 또 경신

윤석열 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음에도 불구하고 유례를 찾기 힘들 정로도 마약으로 몸살을 앓은 한해였다. 경찰이 검거한 마약류 사범 수는 또 역대 최다 기록을 갈아치웠다. 경찰청은 올해 1~11월 마약류 소지·투약·유통 등 사범을 1만 7152명 검거했다고 지난 18일 밝혔다. 12월 수치가 빠졌는데도 기존 기록인 지난해 1만 2387명 훌쩍 넘어섰다. 무엇보다 마약은 이제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생활 속에 깊게 파고들었다. 가장 가파른 증가세를 보인 10대 마약사범은 올해 3배 이상 급증했다. 다크웹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쉽게 마약을 구할 수 있게 되면서 젊은 마약사범이 크게 증가했다. 톱스타의 마약 스캔들도 연달아 터졌다. 배우 유아인씨가 마약 투약 혐의로 기소된 데 이어 배우 이선균씨도 마약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그룹 ‘빅뱅’ 출신 가수 지드래곤(35·본명 권지용) 마약 투약 의혹이 제기됐으나 혐의를 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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