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권 날씨에도 고인 추모분향소 열어
방씨, 올해 9월 ‘회사 갑질’ 못 이겨 분신
택시업체 해성운수 대표 정씨, 11일 구속
기사들 “안전 위해 완전월급제 도입해야”

[천지일보=이우혁 기자] 23일 오후 한 택시기사가 지난 9월 분신한 고(故) 방영환씨를 추모하기 위해 향을 피우고 있다. ⓒ천지일보 2023.12.23.
[천지일보=이우혁 기자] 23일 오후 한 택시기사가 지난 9월 분신한 고(故) 방영환씨를 추모하기 위해 향을 피우고 있다. ⓒ천지일보 2023.12.23.

[천지일보=이우혁 기자] 영하 12도까지 떨어졌던 23일에도 택시기사들은 ‘택시 완전 월급제’ 정착을 위해 분신한 동료을 기렸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는 23일 오후 서울 강서구청 사거리에서 ‘택시노동자 고(故) 방영환 열사 추모분향소’를 열었다. 분향소를 찾은 방문객들은 고인을 기리며 향을 피웠다.

현장에선 택시업체 해성운수의 모 회사인 동훈그룹에 대한 사죄 요청 및 전수조사를 촉구하는 방송이 이어졌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9월 26일 택시노동자 방영환(55)씨의 분신 사건이다. 방씨는 회사에 ‘체불 임금 지급’과 ‘택시 완전 월급제’ 정착을 요구하다 해당일 분신했다. 그는 병원에 이송된 지 열흘 만인 지난 10월 6일 사망했다.

현재 방씨가 근무하던 택시 회사 해성운수 대표 정모(51)씨는 그의 사후 74일 만에 법정에 섰다. 서울남부지검 형사6부(부장 이재만)에 따르면 정씨는 근로기준법·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모욕, 특수협박 혐의 등으로 지난 11일 구속됐다. 정씨는 지난 3월 24일 1인 시위 중인 방씨의 턱을 손으로 한 차례 밀치고, 8월 24일에는 화분 등을 던지려고 하며 위협하는 등 방씨를 폭행·협박해 분신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를 받는다.

'완전월급제 이행! 택시노동자 생존권 보장! 방영환 분신 사태 책임자 처벌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와 유가족이 11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앞에서 택시 노동자 방영환 분회장을 죽음으로 내몬 택시발전법 등 위반 관련 서울시 택시 사업장 전수조사 진정서접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3.10.11. (출처: 뉴시스)
'완전월급제 이행! 택시노동자 생존권 보장! 방영환 분신 사태 책임자 처벌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와 유가족이 11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앞에서 택시 노동자 방영환 분회장을 죽음으로 내몬 택시발전법 등 위반 관련 서울시 택시 사업장 전수조사 진정서접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3.10.11. (출처: 뉴시스)

검찰 조사 결과, 정씨는 부당해고를 인정받아 지난해 11월 복직한 방씨를 지속적으로 괴롭혔다. 정씨는 방씨가 복직 후 해고 기간 중의 임금 지급을 요구하며 1인 시위를 계속하자 폭행·협박했다. 또한 대표에게 보낸 사적 편지를 회사 앞에 확대·게시하기도 했다.

정씨의 직원 폭행은 이 뿐만이 아니었다. 지난 11월 3일 자신보다 20살이 많은 직원 A(71)씨를 구타했다. A씨는 이후 전치 4주 이상의 안와골절상을 입었다.

검찰은 정씨가 방씨와 A씨를 폭행한 것에 대해 형법이 아닌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폭행죄’를 적용했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폭행’은 징역 5년 이하, 벌금 5000만원 이하의 법정형이 적용된다. 형법상 폭행죄의 법정형은 징역 2년 이하, 벌금 500만원 이하다.

검찰은 “정씨는 사건 이후 ‘아무런 책임도 미안한 감정도 없으며 유족에게 사과할 생각도 없다’는 등 일말의 반성도 하지 않았다”며 “방씨 사망 후에도 다른 노동자를 구타하는 등 폭력성과 노동자 멸시 성향도 확인됐다”고 밝혔다.

한편 방씨 사망 이후 ‘택시완전월급제’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방씨가 분신까지 불사하며 1인 시위를 한 이유 중 하나도 완전월급제이기 때문이다. 완전월급제란 운임료 전체를 회사에 납부하고 근로 시간에 비례해 임금을 받는 방식을 말한다.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가 20일 서울 영등포구 서울고용노동부 남부지청에서 '방영환 열사 사태  해결 촉구' 농성을 하고  있다. 방영환 씨는 택시업계의 '편법 사납금제'와 임금 체불에 항의하며 분신 후 지난 6일 숨졌다. 2023.10.20. (출처: 뉴시스)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가 20일 서울 영등포구 서울고용노동부 남부지청에서 '방영환 열사 사태 해결 촉구' 농성을 하고 있다. 방영환 씨는 택시업계의 '편법 사납금제'와 임금 체불에 항의하며 분신 후 지난 6일 숨졌다. 2023.10.20. (출처: 뉴시스)

현재 서울시 소재 법인택시에만 적용하고 있다. 부산 등 지역은 오는 2024년 8월부터 본격 도입된다. 지역에선 월급제의 이전 단계 격인 ‘전액관리제’가 시행 중이다. 

전액관리제란 택시기사가 수익금 전액을 소속 회사에 준 뒤 그 일부를 노사 합의로 정한 비율에 따라 받는 제도다. 이는 지난 2019년 택시운송사업의 발전에 관한 법률(택시발전법) 개정으로 기존 사납금제가 폐지되면서 생겨났다.

기존 사납금제는 택시기사가 당일 수입의 일부를 회사에 내고 남은 초과금을 회사와 분할해서 가져가거나 모두 가져가는 제도다. 택시기사의 과로, 과속, 사비 부담 등 부작용이 심했다.

지난달 1일 국회에서 열린 ‘택시 완전월급제 시행 사업장 증언대회’에선 택시기사들이 완전월급제 체험담을 밝히기도 했다.

17년 차 택시기사 고영기씨는 급여 지급 제도가 바뀐 덕에 사납금을 채우기 위해 무리하게 운전하던 관행에서 벗어났다고 밝혔다. 다른 기사들도 월급제 시행 후 안전이 보장됐고 수익까지 늘었다고 전했다.

6일 서울 중구 서울역 택시승강장에서 시민들이 택시를 타고 있다. 2023.09.06. (출처: 뉴시스)
6일 서울 중구 서울역 택시승강장에서 시민들이 택시를 타고 있다. 2023.09.06. (출처: 뉴시스)

한편 택시회사들은 월급제를 도입하는 대신 ‘변종 사납금제’를 운영하고 있다. 초과 수익금을 기사와 배분하겠다는 명목으로 ‘기준금’을 설정하고, 이를 충족하지 못할 경우 기사의 고정임금이나 상여금을 삭감하는 식이다.

택시회사들은 월급제가 도입될 경우 ‘택시기사의 도적적 해이’가 발생할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다만 택시기사의 난폭·졸음운전 등 안전 문제로 떠오르면서 완전월급제 도입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10년 차 택시기사 강순수씨는 “기존에는 하루 12시간씩 일했지만 현재는 7~8시간 일한다”면서 “기사들 사이에서 과속·신호위반·과로가 없어졌고, 지난 1년간 사고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나래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는 “지난 2020년 경기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법인택시의 교통사고 규모는 100대당 12.2건”이라면서 “개인택시 100대당 3.8건보다 3.2배나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택시 노동자의 건강을 위협하는 극도의 장시간 노동, 야간 노동을 없애고 줄이기 위해 월급제 이행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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