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총장 “인도주의 휴전 절실”
미 “하마스 재정비될 것” 거부
“하마스 공격 그냥 된 거 아냐”
이, 사무총장 발언에 사임 요구
美 “이란 개입 단호 대응” 경고

2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공개 토론에서 이스라엘 측이 민간인 피해 사진을 든 채 발언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2023.10.25.
2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공개 토론에서 이스라엘 측이 민간인 피해 사진을 든 채 발언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2023.10.25.

[천지일보=최혜인 기자] 뉴욕 유엔본부에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열려 세계 각국들이 인도주의 위기에 처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주민들을 고려해 휴전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미국과 이스라엘의 단호한 반대로 ‘도돌이표’ 논의가 이어졌다. 인도적 지원을 촉구하는 결의안이 안보리에서 논의됐으나 미국의 반대로 채택이 무산된 지 일주일 만이다.

24일(현지시간) 미국·영국·프랑스·중국·러시아 등 5개 상임이사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모인 이번 안보리 회의에서도 이-팔 전쟁이 주요 화두로 떠올랐다. 이날 이스라엘-하마스 사이의 전쟁에 대한 국제적 우려가 커지며 휴전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주를 이뤘지만 상임이사국인 미국은 이스라엘과 함께 부정적인 입장을 거듭 밝혔다고 로이터 등 외신이 전했다.

먼저 유엔 사무총장인 안토니우 구테흐스는 “민간인의 고통을 덜기 위해 즉각적인 휴전이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이에 가자지구의 민간인 보호가 최우선이며, 인도주의적 휴전을 통해 구호 물품의 무제한 반입을 가능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리야드 알말리키 팔레스타인 외무장관이 2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천지일보 2023.10.25.
리야드 알말리키 팔레스타인 외무장관이 2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천지일보 2023.10.25.

그러나 이스라엘은 휴전 요구를 거부하며 하마스를 완전히 제거할 때까지 전쟁을 멈출 수 없다고 맞섰다. 엘리 코헨 이스라엘 외무장관은 “하마스와의 휴전은 불가능하다”면서 이번 전쟁이 ‘하마스의 절멸’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스라엘의 최우방국 미국도 휴전 요구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며 이스라엘의 자위권을 지지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조정관은 “지금 시점에서 정전은 오로지 하마스에 도움이 될 뿐”이라며 전날 미 국방부가 밝힌 것과 같은 입장을 보였다. 이와 관련 조 바이든 대통령은 같은 날 워싱턴 DC에서 호주 총리를 환영하는 자리에서 이스라엘에 지상전 연기를 촉구하고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즉답을 피했다. 대신 “이스라엘은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있다”고만 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안보리에서 “미국은 확전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서 “이란이나 이란 대리 세력이 미국을 공격할 경우 미국의 안보와 국민을 보호하겠다. 실수하지 말라”고 거듭 경고했다. 이에 주유엔 이란대사는 미국이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 책임을 이란에 잘못 돌리려 하다고 지적했다.

반면 아미르 사이드 이라바니 이란대사는 “중동 평화와 안정에 대한 우리의 약속은 변함이 없다”며 “미국은 무고한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희생시키면서 노골적으로 침략국과 동조함으로써 갈등을 더욱 악화시켰다”고 반박했다.

바실리 네벤자 주유엔 러시아대사. (타스/연합뉴스) 2023.10.25.
바실리 네벤자 주유엔 러시아대사. (타스/연합뉴스) 2023.10.25.

이날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와 중국은 이스라엘과 미국의 입장을 비판하며 팔레스타인의 건국 권리와 인권 침해가 이번 갈등의 원인이라고 꼬집었다.

유엔 사무총장의 발언을 두고 이스라엘의 반발도 있었다. 이스라엘의 보복공격을 두고 국제 인도법 위반을 주장하는 유엔 사무총장에 대해 이스라엘 외무부 대변인은 “터무니없는 발언에 대해 책임지고 사임해야 한다”고 BBC에 전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안보리에서 “하마스에 의한 공격이 그냥 일어난 게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도 중요하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지난 56년간 질식할 것 같은 점령을 당해왔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를 두고 이스라엘 측은 “팔레스타인인들의 불만이 하마스의 끔찍한 공격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즉각 반박했다.

리오르 하이아트 이스라엘 외무부 대변인은 “사무총장의 연설이 테러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했다”면서 “그는 (이스라엘인) 희생자들과 함께 서는 대신 홀로코스트 이후 우리가 본 적이 없는 만행을 희생자들 탓으로 돌린다”고 추궁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EPA/연합뉴스) 2023.10.25.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EPA/연합뉴스) 2023.10.25.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가자지구가 광범위하게 파괴된 가운데 아랍 국가들은 인도주의적 휴전 요구를 단호히 지지하고 있다. 사메 수크리 이집트 외무장관은 “우리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결의안을 채택하거나 휴전을 요구하지 못한 것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편 유엔은 현재 세계 193개 회원국이 참여하는 국제사회 최대의 포괄적 국제안보기구다. 그중에서도 안보리는 유엔의 6개 주요 기관 중 최고 핵심 기관으로 꼽힌다.

안보리 15개 이사국 중 5개 상임이사국은 항구적 지위가 보장된다. 그러나 15개 이사국들 중 9개 국의 찬성표가 있을 경우 안건이 통과될 수 있으나 상임이사국 1개국의 거부권 행사(veto)만으로도 안건의 통과를 막을 수 있어 각종 비판이 제기돼 왔다.

이처럼 진영이 나뉜 채 인도주의적 휴전이나 평화 협의가 번번이 무산되자 세계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기구인 유엔 등 국제기구가 유명무실해진 게 아니냐는 비판도 커져가고 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하마스를 상대로 가자지구 지상전을 예고한 가운데 관련 주요국들의 셈법이 복잡해졌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출처: 연합뉴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하마스를 상대로 가자지구 지상전을 예고한 가운데 관련 주요국들의 셈법이 복잡해졌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출처: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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