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 낙타를 짜다
김경미(1959~ )

초겨울 비 오는 점집
그 옆 야채가게
부서진 의자 위에 새끼고양이 한 마리
아슬아슬하게 웅크려 잔다

그 몸 위에
술꾼 아저씨 비틀대며
커다란 배춧잎 한 장 주워다 가만히 덮어준다.

[시평]

점집이 있고, 야채가게가 있고, 부서진 의자가 있고, 그리고 고양이가 한 마리, 부서진 의자 위에 잠들어 있다면, 그곳은 도시의 변두리 어느 허름한 골목쯤이 분명하다. 도시의 변두리 허름한 골목.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이 얽히고설켜 오순도순 살아가는, 사람냄새가 풀풀 나는 그런 곳이리라.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이 골목, 그것도 초겨울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시간. 야채가게 앞에 놓여진 부서진 의자 위에 새끼고양이 아슬아슬하게 웅크린 채 잠을 자고 있는 고즈넉한 그 풍경 속, 낮술에 거나하게 취해서 이리 비틀, 저리 비틀, 벌건 대낮을 어슬렁거리던 아저씨.

웅크린 채 잠이 든 고양이에게 문득 다가가, 그것도 부서진 의자 위에서 아슬아슬 잠이 들어 허름한 골목의 한 풍경이 되어버린 어리디 어린 새끼고양이에게 다가가, ‘어이쿠! 이 놈 이렇게 잠이 들었으니 얼마나 춥겠노’ 하며 가만히 덮어 주는 커다란 배춧잎 하나. 참으로 따뜻하구나.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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