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자·유족 신고 올해말까지
신고·접수된 건수만 7천여건
유족 인정된 건 345건 불과

정부 수립 초기 민간인 희생
여수·순천 희생자 가장 많아

[천지일보 여수=이봉화 기자] 지난 1일 여순사건 다크투어리즘에 참석한 관람객들이 문화해설사의 위령비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위령비 뒷면 비문에는 ‘……(말줄임표)’가 있다. “기가 막힌 죽음에 할 말이 없었다”고 문화해설사가 설명했다. ⓒ천지일보 2023.10.23.
[천지일보 여수=이봉화 기자] 지난 1일 여순사건 다크투어리즘에 참석한 관람객들이 문화해설사의 위령비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위령비 뒷면 비문에는 ‘……(말줄임표)’가 있다. “기가 막힌 죽음에 할 말이 없었다”고 문화해설사가 설명했다. ⓒ천지일보 2023.10.23.

[천지일보 여수=이봉화 기자] ‘여수·순천 10.19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여순특별법)’이 제정 공포된 지 약 2년이 흘렀다. 이러한 가운데 올해 말이면 희생자·유족 신고 접수가 마감되는 데다 제대로 된 진상조사 결과도 나오지 않고 있어 유족 발굴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 최근까지 신고·접수된 건수는 7000여건에 이르나 유족으로 인정된 건수는 345건에 불과하다. 진상규명 및 희생자·유족 신고·접수가 약 2달 남아 이러한 모든 과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서장수 여순여수유족회장은 “국가가 국방부, 육군정보단, 형무소, 미국 육군 보고서 등 직권조사를 병행해야 한다”며 “진상조사에 가장 큰 어려움은 신고자와 유족이 고령이라 조사 기간을 장담할 수 없고 빠른 조사를 위해서는 국가가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 반군·계엄군 충돌 중 민간인 희생

여순사건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초기 단계였던 1948년 10월 19일~1955년 4월 1일 사이에 일어난 민간인 희생 사건이다. 

여수에 주둔했던 제14연대 2000여명 군인이 제주4.3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하고 봉기를 일으키면서 시작됐다. 이 가운데 여수·순천·구례·광양·보성·고흥 등에서 반군과 계엄군이 무력 충돌하던 중 진압 과정에서 민간인 다수가 희생됐다.

[천지일보 여수=이봉화 기자] 지난 1일 제14연대 주둔지 무기고였던 지금의 신월동 지하 동굴을 다크투어리즘 관람객이 들어가고 있다. ⓒ천지일보 2023.10.23.
[천지일보 여수=이봉화 기자] 지난 1일 제14연대 주둔지 무기고였던 지금의 신월동 지하 동굴을 다크투어리즘 관람객이 들어가고 있다. ⓒ천지일보 2023.10.23.

전라남도가 1949년 10월 25일 세 번째 조사한 사망자는 1만 1131명이다. 여수지역사회연구소는 여수 약 5000명, 순천 약 2000명으로 추정했다. 사망자들은 반군에 의해 혹은 계엄군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해자가 가해자이자 또한 피해자가 되기도 했다.

2021년 7월 특별법 시행에 따라 진상규명 및 희생자·유족 신고·접수를 받기 시작했고 개정을 통해 신고 기간도 2023년 12월 31일로 연장됐다. 그러나 얼마 남지 않은 기간 동안 원활한 조사가 제대로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천지일보 여수=이봉화 기자] 지난 1일 여순사건 다크투어리즘에 참석한 관람객들이 형제묘의 사연을 들은 후 억울한 죽음을 당한 넋을 위로하는 묵념을 하고 있다. 형제묘 한쪽 추석 성묘객의 차례음식이 놓여 있었다. ⓒ천지일보 2023.10.23.
[천지일보 여수=이봉화 기자] 지난 1일 여순사건 다크투어리즘에 참석한 관람객들이 형제묘의 사연을 들은 후 억울한 죽음을 당한 넋을 위로하는 묵념을 하고 있다. 형제묘 한쪽 추석 성묘객의 차례음식이 놓여 있었다. ⓒ천지일보 2023.10.23.

◆ 형제묘·위령비·애기섬… 유적지 곳곳  

여수 곳곳에는 여순사건과 관련된 유적지가 남아 있다. 여수시는 이러한 현장을 직접 둘러볼 수 있는 다크투어리즘을 2021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가슴 아픈 사연이 절절히 맺힌 원한 가득한 곳 중 유독 눈에 띄는 곳이 있다. 만성리 형제묘와 위령비다.

형제묘는 여순사건 부역 혐의자가 불태워진 자리를 흙으로 덮은 곳이다. 여순사건 부역 혐의자가 된 125명이 종산국민학교(중앙초)에 수용됐다가 제4차 고등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총살당한 후 이곳에서 불태워졌다. 이에 유족들이 시신을 찾을 수 없자 죽어서라도 형제처럼 지내라며 ‘형제묘’라 이름을 붙였다고 전해진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위령비가 자리하고 있다. 과거엔 큰 골짜기였던 곳으로 종산국민학교 수용자 중 수백명의 민간인이 집단 학살된 곳이다. 1948년 11월 초순경부터 학살하고 골짜기 속으로 던져 넣은 후 흙·모래·돌로 암매장했다. 

당시 마을 주민들은 억울하게 죽어간 이들을 위해 작은 돌을 던져 그들의 넋을 위로했다. 최근에는 작은 돌맹이에 동백을 그려 위령비에 올려놨다.

또 1949년 좌익 성향의 사람들을 ‘국민보도연맹’에 가입시켜 무차별 총살 후 수장한 사건도 있었는데 이들을 끌고 간 곳이 애기섬이다. 관계자 증언에 따르면 애기섬 희생자는 120여명으로 추정된다. 

1948년 10.19 사건 당시 인민재판으로 부역자를 심사하던 서초등학교 모습이다. “부역자다”하고 손가락으로 가리키기만 하면 바로 붙잡혀갔다. 가해자가 가해자이자 또한 피해자가 되기도 했다. (제공: 여수시) ⓒ천지일보 2023.10.23.
1948년 10.19 사건 당시 인민재판으로 부역자를 심사하던 서초등학교 모습이다. “부역자다”하고 손가락으로 가리키기만 하면 바로 붙잡혀갔다. 가해자가 가해자이자 또한 피해자가 되기도 했다. (제공: 여수시) ⓒ천지일보 2023.10.23.

◆ ‘연좌제’ 평생 따라다닌 꼬리표

살아남은 유족들은 여순사건이 지금도 진행 중이라고 말한다. 단순히 75년 전의 사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손병근(가명, 70, 순천)씨는 “평생 연좌제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며 “고위직 공무원 시험에 두 번이나 붙고도 3차 신원조회에서 연달아 고배를 마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평생을 남들보다 10배, 20배 더 열심히 살았다”며 “그 트라우마는 평생을 가도 잊을 수 없다”고 씁쓸해했다.

최기엽(가명, 78, 여수 돌산읍)씨 또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아랫동네 아주머니가 어릴 적 ‘빨갱이 새끼’라고 불렀는데 그 이유를 최근에 알았다”며 “아버지는 기억에도 없다. 어머니도 11살에 돌아가시고 조부모 손에서 온갖 구박과 살림에 농사일까지 하며 살았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그러면서 “아버지가 그렇게 억울하고 허망하게 죽지 않았다면 어머니도 오래 사셨을 것이고 나도 귀한 딸로 컸을 것”이라고 인생 얘기를 힘들게 털어놨다.

[천지일보 여수=이봉화 기자] 오동도에 임시로 설치된 여순사건 기념관 포토존. ⓒ천지일보 2023.10.23.
[천지일보 여수=이봉화 기자] 오동도에 임시로 설치된 여순사건 기념관 포토존. ⓒ천지일보 2023.10.23.

◆ 민간인 희생자 75년 만에 무죄

광주지법 순천지원 형사1부(허정훈 재판장)는 지난 19일 여순사건 민간인 희생자 고(故) 박채영·심재동·박창래·이성의씨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유족에게 “그동안 심적으로 많이 고생하신 것으로 안다”며 “무죄가 선고됐으니 그간의 원한을 푸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들 민간인 희생자는 1948년 여순사건 당시 제14연대 군인 등에 동조해 공중 치안과 통치 질서를 교란하고 폭동을 일으켰다는 이유로 영장도 없이 체포·수용됐다가 처형당했다.

특히 이날은 제75주년 여순사건 희생자 합동 추념식이 있는 날이었다. 이들의 무죄 선고가 첫 단추가 돼 진상규명 및 진상조사가 제대로 마무리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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