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우 부산환경교육센터 이사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가 ‘개 식용 종식을 위한 국민행동’ 기자회견에 참여해 “불법 개 식용은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며 정부 임기 내 ‘개 식용 종식’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여야도 모두 개 식용 금지 취지에 공감했다. 국회에 ‘개 식용 종식을 위한 의원 모임’을 출범시키면서 이번 정기 국회 내 법제화 가능성을 보였다. 그동안 주로 진보 진영에서만 주장해왔던 개 식용 금지 의제로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도 관련 법안을 발의하면서 개연정(개+대연정)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이에 따라 개 식용 금지법의 국회 본회의 통과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았다.

하지만 해당법은 국회 상임위원회의 문턱도 넘지 못했다. 국회는 추석이 지난 이후 연내 처리하겠다는 방침이지만, 21대 국회 내에 처리될 수 있을지 현재로선 의문이다. 현재 국회에는 개 식용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특별법안 4건이 상임위원회 심사를 앞두고 있다. 식용을 목적으로 개를 사육·증식·도살하거나 개를 사용해 만든 음식물 또는 가공품을 취득·운반·보관·판매하는 등의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이다.

개는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인간의 식구가 된 동물이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늑대의 사촌인 개가 가축이 됐는지는 아직도 명확하지는 않지만 개의 골격이 발견된 가장 오랜 구석기 유적은 1만 4200년 전의 것이다. 유전자 분석 연구에서는 개의 가축화 시기를 2만 7000∼4만년 전으로 추정한다. 적어도 1만 5000년, 많게는 약 4만년 전에 개는 늑대의 조상에서 갈라져 나온 셈이다.

개 유적지가 발굴된 위치까지 고려하면 개는 마지막 빙하기가 한창 절정이던 시기 유라시아 대륙 북부에서 가축 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과학저널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실린 논문에서는 빙하기 수렵 채집인이 남긴 고기를 늑대 새끼에게 던져 주던 데서 개의 가축화가 시작됐다는 주장을 폈다. 이를테면 먹고 남은 살코기를 먹이면서 고아가 된 늑대 새끼를 애완동물로 데려와 기르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아무튼 분명한 것은 식용을 목적으로 길렀던 다른 가축들과 달리 애초부터 식용을 목적으로 개를 사육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처음부터 반려동물로 또는 사역이나 사냥의 도우미로 인간과 맺어져 왔으며 가장 오랜 기간 인간과 교감하며 유대관계를 맺어온 동물이라는 점이다.

이렇게 떼려야 뗄 수 없는 인간과 개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이제 우리나라만 해도 반려견 인구 1000만 시대가 됐다. 대한민국 가구의 4분의 1인 약 26.4%가량인 591만 가구가 반려동물을 기르고 있으며 그들을 가족 또는 친구로 여기며 살고 있는 셈이다. 반려동물은 인간과 정서적 교감을 하는 생명체이다. 반려동물을 가족과 같이 여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개 식용은 사회적인 폭력이나 마찬가지다. 반려동물을 사회적으로나 법적으로 인정하자는 목소리가 확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개 식용 금지 검토는 바람직한 정책 방향이다.

그동안 명실상부한 선진국으로 자리 잡은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에도 불구하고 개 식용문제는 여전히 사회적인 논란이 되고 있었다. 이는 우리가 풀어야 할 사회적 과제였다. 개 식용을 단순히 야만적 문화로 치부하는 것이 아니다. 반려동물에 대한 잔인한 학대와 도살, 비위생적인 사육, 불안전한 유통구조를 개선하는 동물복지의 필요성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여당은 당초 개 식용 금지법의 당론 추진을 검토했으나 갑자기 이를 유보했다. 김건희 여사의 발언 이후 ‘김건희법’을 제정하겠다고 소리높여 외치고서는 이제는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는 것이다. 지지자들에게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법제화에 반대하는 여론이 높게 나왔기 때문이라는 후문이다.

하지만 개 식용금지 추진은 김건희 여사 이전에 문재인 전 대통령도 재임 중에 제기한 바 있는 사안이다. 당시 확실하게 법안을 추진해 임기 내에 매듭지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아무튼 전 대통령과 현 영부인의 인식이 궤를 같이하는 만큼 선언에만 그치지 말고 끝까지 챙겨야 할 사안이라는 점이다.

반려동물 복지는 곧 인간에 대한 복지다. 개 식용 금지와 반려동물 복지를 함께 고민하게 된다면 우리 사회는 지금보다 더 따뜻해지고 성숙될 수 있을 것이다.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행복한 대한민국, 좌우, 여야 할 것 없이 이제 함께 만들 때가 됐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