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도적 화력에 가자지구 초토화
문제는 미로같이 얽힌 지하도
“지상전 속도 못 내면 수렁에”

세계 최고 정보력 정말 뚫렸나
“모사드, 몰랐을 리 없다” 분석
‘팔 인종청소’ 등 각종 음모론

동료 장례식서 오열하는 이스라엘 군인들[예루살렘=AP/뉴시스] 10일(현지시각)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 군인들이 하마스의 공격으로 숨진 동료의 장례식에 참석해 흐느끼고 있다. 2023.10.11.
동료 장례식서 오열하는 이스라엘 군인들[예루살렘=AP/뉴시스] 10일(현지시각)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 군인들이 하마스의 공격으로 숨진 동료의 장례식에 참석해 흐느끼고 있다. 2023.10.11.

[천지일보=최혜인 기자]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에 대한 무자비한 기습공격으로 촉발된 전면전이 11일(현지시간)로 나흘째를 맞은 가운데, 이스라엘이 전투기 등 전략자산을 총동원해 가자지구 민간인 밀집 지역에 대규모 폭격을 가하고 있다.

그러나 로켓과 미사일 수천발을 쏘며 세계적 위용을 자랑하던 이스라엘 방공망 ‘아이언돔’과 지구촌 최고의 정보부대 모사드를 무력화시켰던 하마스의 기습을 지켜본 전문가들은 혼란에 빠졌다.

◆양 진영 모두에 있는 혼란 쟁점

이스라엘의 전쟁 선언 이후 며칠 지난 지금 다양한 의문이 나오고 있다. ‘하마스는 자신들의 숙원대로 가성비 세계 최고의 이스라엘군을 패퇴시키고 이스라엘을 지구상에서 몰아낼 수 있는 기습공격이라고 오판한 걸까’ ‘정말로 무고한 팔레스타인 주민들과 함께 완전히 학살당할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점을 몰랐을까’ 등이 그것이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심지어 지구상 최고 정보조직으로 평가받는 이스라엘 모사드가 대규모 물량·부피의 무기가 하마스 진영에 차곡차곡 진열되는 과정을 몰랐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센터장은 “하마스가 이번 도발을 이스라엘의 취약점을 뚫고 ‘지구상에서 이스라엘 제거’라는 자신들의 목표를 수행할 계기로 여겼다면 확실히 판단 착오”라고 스푸트니크에 말했다.

혼란의 쟁점은 양쪽 진영 모두에 있다. 전문가들의 혼란은 정세분석과 전망에도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이스라엘이 압도적 무력으로 하마스의 도발을 조기에 무력화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지만,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의 복잡한 미로 속에서 고전하다가 결국 하마스와 타협하게 될 것 전망도 있어 시나리오가 극명하게 갈린다.

◆반이스라엘 이슬람국 총공세 가능성은

지난 1987년 발족한 하마스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통치하고 있다. ‘파타’와 달리 기본적으로 이스라엘과의 공존을 원천적으로 배제한다. 통치 지역인 가자지구뿐 아니라 서안 지역에서 이슬람국가를 세우는, PLO가 지향하는 국가 건설에 반대한다. 이들은 국제사회가 원하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2개의 국가’를 지향하지 않는다.

반면 파타는 세속주의 성향으로 이스라엘과도 어느 정도 공존하려는 성향이 있다.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를 승계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 내 최대 정당이다. 파타의 마흐무드 압바스가 팔레스타인의 공식 자치정부 수반으로 인정된다. 팔레스타인엔 서안지구의 PA·파타, 가자지구의 하마스라는 두 별도의 행정부가 존재하는 셈이다.

전문가 분석에 따르면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지구상에서 없애려면 혼자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인접 레바논 기반의 반이스라엘 이슬람 무장정파 헤즈볼라가 합류해도 역시 역부족이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등 아랍 강국들은 물론 이란이 하마스와 일치단결해 이스라엘을 동시 공격한다면 일말의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크파르 아자=AP/뉴시스] 10일(현지시각) 이스라엘 크파르 아자에서 이스라엘 군인들이 팔레스타인 하마스군의 습격으로 숨진 희생자의 시신을 옮기고 있다. 이스라엘군(IDF)은 가자지구에 대한 공습으로 하마스 고위 간부 2명을 사살했다고 밝혔다. 2023.10.11
[크파르 아자=AP/뉴시스] 10일(현지시각) 이스라엘 크파르 아자에서 이스라엘 군인들이 팔레스타인 하마스군의 습격으로 숨진 희생자의 시신을 옮기고 있다. 이스라엘군(IDF)은 가자지구에 대한 공습으로 하마스 고위 간부 2명을 사살했다고 밝혔다. 2023.10.11
이스라엘 공습으로 폐허만 남은 자발리아[가자지구=AP/뉴시스] 11일(현지시각)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북부 자발리아 거리가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폐허가 돼 있다. 2023.10.11.
이스라엘 공습으로 폐허만 남은 자발리아[가자지구=AP/뉴시스] 11일(현지시각)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북부 자발리아 거리가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폐허가 돼 있다. 2023.10.11.

당장 중동 ‘수니파’의 맹주 사우디아라비아만 봐도 그렇다. 앞서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화해가 상당히 진척됐다. 이란과 사우디, UAE는 나란히 브릭스(BRICS) 회원국으로 합류해 새로운 경제 질서를 주도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이란과 사우디는 반인권 국가라는 국제사회의 따가운 눈총에서 벗어나 정상국가 이미지를 창출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양새다. 일련의 상황이 ‘반이스라엘 이슬람국가 총공세’라는 하마스의 의도에 부합할 가능성이 극히 낮다는 전망이다.

◆하마스는 패배할 싸움 왜 걸었을까

그렇다면 하마스가 무엇에 희망을 걸고 있는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장지향 센터장은 “미개발 지역인 가자지구는 좁은 골목이 미로처럼 얽혀있는 곳이어서 이스라엘군이 지상전을 시작한다고 해도 최대한 빨리 끝내지 않으면 수렁에 빠져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군사전문가들은 가자 지구의 미로와 같은 지하도에서 하마스 대원 한명을 죽이기 위해 이스라엘군 10명이 희생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각 조직이 지하화되면서 전쟁이 장기전이자 게릴라전으로 치달을 거란 전망이다.

이와 함께 하마스는 이미 이스라엘을 향해 포격을 시작한 인접한 레바논 헤즈볼라, 시리아의 지원과 함께 사우디와 UAE, 이집트 등 아랍국가의 지원, 그리고 중국과 러시아 등의 지지 등을 기대하고 기습을 감행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각에서는 무장정파 내부의 알력을 제압하기 위해 무리수를 뒀다는 평가도 있다.

하마스의 오판이라면, 게다가 세계 최강 정보조직인 이스라엘 모사드가 알고도 기습을 허용했다면, 전혀 다른 ‘끔찍한’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민족을 지구상에서 아예 박멸하는 ‘인종청소’가 내밀하게 준비됐다는 ‘음모론’까지 나온다.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지난달 말 유엔총회 연설에서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 UAE, 이집트 등과의 평화협상을 언급했다. 그러나 평화의 필수 전제조건인 팔레스타인과 관련,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과 아랍(사우디)의 협상을 거부할 권리가 없다”고 강변했다. 이스라엘 국방장관도 가자 지구 팔레스타인인들을 ‘인간 동물(human animal)’로 규정, 이스라엘군 병사들에게 “어떤 전쟁규칙도 없다”고 선포했다. 그냥 보이는 대로 죽이라는 말이다.

◆‘동물’ 취급됐던 以 “하마스는 인간 동물”

이러한 발언은 이스라엘이 이번 하마스 기습을 빌미로 팔레스타인, 특히 하마스가 실효 지배하고 있는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을 완전히 ‘인종청소’ 하고 완전히 이스라엘 영토로 편입시키는 시나리오를 연상시킨다. 하마스의 오판을 오히려 기회로 활용하겠다는 이스라엘과 미국의 의지로, 하마스의 무기반입과 공격 준비를 이스라엘이 의도적으로 유도하고 용인했다는 음모론과도 연결된다. ‘음모론’은 지상전이 본격 시작되면서 곧 드러날 전망이다.

9일(현지시각) 가자지구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파괴된 건물 잔해에서 희생자 시신을 수습하고 있다. (AP/뉴시스) 2023.10.10.
9일(현지시각) 가자지구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파괴된 건물 잔해에서 희생자 시신을 수습하고 있다. (AP/뉴시스) 2023.10.10.

현재로선 이스라엘군은 11일 가자 지구 에너지와 수도 공급을 모두 끊고 관련 시설을 줄줄이 폭파한 것으로 전해졌다. 팔레스타인 주민 110만명에게 공급하는 물 시설 7개를 파괴하면서 유엔도 우려를 표했다. 이스라엘 공군이 11일 밤 가자지구에 융단폭격을 가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스라엘 입장에서 하마스와 팔레스타인 민간인을 구별할 수 없기 때문에 사실상 보호 대상이 아니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해영 한신대 글로벌인재학부 교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에서 “수십년 전 유태인들을 무차별 학살했던 독일 나치 세력들이 유태인을 ‘인간 이하의 동물(Untermensch)’, 즉 동물과 동급이라고 규정했던 사실과 교차된다”고 밝혔다. 이스라엘 내각 공동의장을 지낸 야당 지도자 벤니 간츠도 11일 “평화를 위한 시간과 전쟁을 위한 시간이 있다. 지금은 전쟁을 위한 시간이 맞다”고 말했다.

이스라엘군이 가자 지구의 미로에서 힘겹게 게릴라전을 치르다가 결국 하마스와의 협상할 것인가, 아니면 게릴라전 대신 융단폭격으로 인종청소를 감행할 것인가 등의 전망이 나온다.

앞서 하마스는 이스라엘이 포격을 중단하지 않으면 그간 잡아 온 인질 1명을 처형한 뒤 이를 방영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바 있다. 분노가 극에 달한 이스라엘은 대외적으론 이를 무시하는 듯하면서도 자국민들뿐 아니라 미국·영국·독일 등 다양한 서방 국가 국민들이 잡혀 있는 만큼 인질의 안전을 고심해야 하는 딜레마에 처하게 됐다.

한편 전날 기준 분쟁 발발 닷새째 만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 사망자는 2100여명으로 늘어났다. 사상자 집계와 별개로 이스라엘군이 하마스 무장대원 시신 1500구를 발견한 데다 가자지구 공습도 이어지고 있어 희생자 수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국내 거주 아랍인들과 노동자연대 회원들이 11일 오후 서울 중구 파이낸스빌딩 앞에서 팔레스타인 지지 집회를 열고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을 규탄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2023.10.11
국내 거주 아랍인들과 노동자연대 회원들이 11일 오후 서울 중구 파이낸스빌딩 앞에서 팔레스타인 지지 집회를 열고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을 규탄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2023.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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